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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누가 아프다는 소식을 보면 괴로운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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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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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아주 잘 살고 있는데 가끔 나를 괴롭게 하는 몇 가지 트리거가 있어 

어디든 얘길 하고싶은데 익명게시판에다가 던져놓으면 좀 후련할까봐 아무렇게나 쓰는 거야 두서없어도 이해해줘 


나는 몇 년 전에 병 진단을 받았어 정말 충격이었는데 한편으론 납득했어 

그전까지 너무 치열하게 살았거든. 과속 중인 버스에 타고 있는 느낌이었어. 적당히 부저 누르고 알맞은 정류장에 하차해야 하는데 버스가 미친듯이 속도를 올리는 바람에 부저 누를 타이밍도 내릴 타이밍도 없이 마냥 달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언젠가 사고가 날 걸 예감하면서 불안불안하게 손잡이만 움켜잡고 사는 느낌? 진짜 생활을 갈아넣어서 일을 했거든.

몸에 이상이 생겨서 본가 내러간 김에 근처에 있는 나름 큰 병원에 갔는데 거기 의사선생님이 조금이라도 시간 지체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지금 당장 큰 병원 어디든 응급실로 들어가라. 

그 말을 따라서 다음날 새벽에 부모님이 다 나를 데리고 서울로 갔거든. 근데 부모님이 너무 멘붕해서 고속도로까지 나와놓고 어디로 가??? 어떻게 해야해??? 갈피를 못 잡으시더라구... 그 와중에 ㅎㅎ 내가 내 예상되는 병 검색해서 ㅠㅠ 유명한 병원 찾아서 여기로 가야된다고 알려줬어. 그 병원 지금도 다니는데 의사 선생님들 너무 좋더라. 응급실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나 1순위로 진료 받고 초진하자마자 의사 하나가 바로 종이 몇 장 들고 붙어서 이 병으로 의심이 되는데 사실상 거의 확정일 것 같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을건데 절차는 이렇고 지금 정말 절망스럽고 괴롭겠지만 완치되는 그 날까지 우리들이 옆에서 함께하겠다, 희망을 가져달라. 그렇게 얘기하더라. 나 그 때 지금 내 앞에서 돌아가는 꼴이 이해도 안 되고 기가 차고 내 인생 존ㄴㅏ 시발이다 싶어서 의사 얼굴 보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멍때리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해주시는 거 다 듣고 있었어. 근데 그 뒤로 검사가 너무 힘들어서 나 그 시절이 잘 기억이 안 나... 부모님은 매일밤 옆 침대에서 코드블루가 떠서 잠을 설쳤다는데 진짜 난 기억이 안 나. 아무튼 중간에 지랄맞았던 치료과정 다 뛰어넘고 중간부터 얘기하면 나 ㅎㅎㅎㅎ 항암 약 2년 만에 다시 집에서 독립해서 다시 일 시작했어...

천운으로 겉으로 티가 안 나는 병이기도 했고... 병원에 거짓말 했어... 가족들 반대도 별로 없었어. 뭐라고 하지 그 심리가... 가족들이 충격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극심했거든. 엄마랑 아빠 둘 다 우울증이 생긴 거 같아. 그게 집에 있는 나를 볼 때마다 더 깊어지는 것 같더라구... 익명이니까 대놓고 얘기할게. 내가 간병을 받아야하는데 내가 오히려 나를 간병해주는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있었어. 그게 너무 숨막혀서 뛰쳐나왔어. 나 독립해서 살다가 몸에 문제가 있어서 새벽에 세브란스 응급실 들어갔는데 보호자 주민번호를 대야 병실 입실이 가능하다하더라구.. 부모님한테 연락하기 싫어서 밤새 버티다가 새벽 여섯시에 결국 엄마한테 전화해서 주민번호 받아서 입원했었는데, 엄마는 아직 그때 얘기하면서 나한테서 너무 뜬금없이 전화가 오면 식은땀이 나면서 너무 무섭대 ㅠㅠ 그 얘길 너무 반복적으로 여러번 하더라구...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일이 생겨도 부모님한테는 가급적 통보하지 않거나 축소해서 얘기하고 있어. 부모님이 나를 보내준데는 너무 사랑한 나머지 차라리 눈 가리고 아웅하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해. 


병 진단 받기 전에 정말 치열하게 살았는데... 병 진단 받고 치료하다가 다시 돌아간 삶이 더 치열하더라구... 

지금 직장에선 나 아픈거 거의 몰라. 나 프리랜서로 들어가있거든... 내 사정을 알고 뒤를 봐주시는 분이 계시긴한데 그래도....

그런게 부담스러워. 안 아플 때 독감이나 뭐 조금 아픈 병에 걸리면 당당하게 '나 아파요 일 못해요' 하고 병원 갓다가 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픈걸 드러내는 게 너무 공포스러워. 나 아픈걸 알면 사람들이 "일은 할 수 있겠어요???" 하고서 날 자르려고 하니까ㅠㅠ 난 자꾸 안 아픈 척을 해

지난 달에 병원비로 백만원 쓰고도 나 요새 근육이 너무 아픈데... 아프다고 얘기 못하겠어... 팀장이 나 먹는 약을 봤는데 내 병을 눈치챈 거 같아... 

자꾸 핵심찌르는 질문을 하는데 아닌 척 하고 있지만 무서워... 


그리고 연애도 마음 같지가 않아. 병 생긴 뒤에 연애나 결혼은 거의 포기하고 살고 있었거든. 

그러던 중에 만난 남자친구가 나 먼저 세상을 떠났어. 한동안 죄책감이 너무 심했어. 죽을병 걸린 나는 살아있고 멀쩡한 그 친구는 세상에 없다는 게... 

비행기를 타면 공중 높이 있으니까 지평선이 되게 까마득하게 보이잖아. 되게 멀리까지 보이고... 근데 그렇게 광활해서 무슨 일이 생겨도, 무엇이 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땅에 그 한사람만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마음이 이상하더라고. 진짜 이상하잖아. 걔가 유니콘도 아니고 빅풋도 아니고 용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ㅎㅎ 그 평범한 사람 하나를 이 광활한 땅덩이 위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이해가 가지 않는거야... 가끔 달을 볼때도 이상해. 저기에는 살 법하지 않을까? 근데 살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 우주가 그렇게 넓다는데 우주가 얼마나 넓던간에 걔는 그냥 없는 거라는게 너무 이해가 안 가.

한동안은 그게 괴로웠어. 내가 너무 아득바득 살고 있다는 생각... 자연의 법칙으로 따지면 나는 몇년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인데 이치를 거슬러서 꾸역꾸역 살고 있는 것 같고... 걔는 죽었고... 그래서 정말 한동안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어. 너 뻔뻔하게 살아있니?? 그렇게 나를 비난하는 기분이었어. 침대 옆에 옷장이 있는데 한동안 거기다가 목을 매면.... 이런 나쁜 생각이 들더라고. 죽고 싶어서 죽으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내가 살아있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었어. 

정신과 상담 당연히 받았어.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일주일 뒤인가, 내가 완전 미쳐돌아가니까 친구가 아는 분에게 다급하게 연락해서 진짜 응급실 들어가듯이ㅎㅎ 관리 받았어.고향에서 친구들도 엄청 올라와서 내가 이상한 생각 할까봐 주변 엄청 맴돌고.... 내가 인복이 좀 많아 


열심히 이겨내면서 살고 있어. 정말 노력 많이 하고 있어 내 병도 나를 두고 남자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도. 지나가면 과거가 된다. 그런 말이 가장 괴로워. '어떻게 버텼어?? 나라면 못 견뎠을 거야.' 그 말은 꼭 견뎌낸 내가 이상하다는 것처럼 들려. 그 뜻은 아니겠지만... 어쩔 수없어 이런 저런 일을 겪고 나니 내 마음과 정신은 남들과 조금 다르게 흘러가거든.  그게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이라는 걸 배워서 그냥저냥 대처하는 것이지 상처는 받아... '힘든 일을 겪고도 버텨내다니 너 대단해, 멋있어' 라는 뜻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나라면 못견뎠을거라는 말이 '보통 사람은 그렇게까지 아득바득 안 살아 병신아 양심있으면 알아서 눈치껏 뒤져' 막 이런 식으로 들려. 

이성으론 그게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 정말 이성에 매달려서 살고 있어.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이야... 


암튼 최근에는 정말 노력한 끝에 멘탈도 정말로 많이 회복되고 후배들에게도 잘하고 나름 신임도 얻고 나 진짜 돈도 요새 잘 벌었거든 몇달간 부모님 형제자매 나한테 명품 뿌리는데 달마다 몇백 쓰고도 생활비 넉넉하게 쓰고 적금도 넉넉하게 쓸 정도로 벌어. 세상 암환자 중에 나처럼 건강하고 돈 벌고 활동적인 사람 없을거야 

그런데 

그런데 가끔 여전히 아직도 흔들리면서 괴로워 내 주변 사람이 아니라도 누가 시한부다 말기암이라더라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면서 자꾸 무너지게 돼...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고 헤매는 내가 너무 부끄럽고 싫고 괴로워 이런 괴로움을 언제까지 지고 살아야할지 생각하는 한편 '니가 그렇게 니 불행을 확대하고 거기 빠져들려 하니까 문제인거야'라고 나를 혼내는 내가 있어. 나를 동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끔은 사는 게 좀 버거워. 제발 누가 아프고 죽고 이런 소식은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네. 다른 사람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내가 혐오스러워 그런 나새끼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괴롭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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