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더쿠에서 성장과정의 상처 때문에 결혼도 출산도 꺼려진다, 또는 포기했다는 글이 있어서 써 봐.
가장 흔하게 나오는 심리 치료 이야기 중에
내 안의 상처받아 자라지 못한 아이를 안아주라는 말 많이 들어봤을거야. 어린시절의 상처받은 나를 성인이 된 내가 돌봐주란 이론인데... 그거랑 비슷해.
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고,
가난 때문에 어쩔수 없이 거칠고 황폐해진 엄마에게서 상처가 많아. 아 지금와서 엄마를 원망하고 어쩌고 하는 글은 아니야. 엄마가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았는지는 내가 아니까. 근데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맘 속 상처는 여전히 있지.
구체적인 내 성장과정을 쓰진 않을게.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기도 하려니와,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그런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지.
덬들 그런 말 들어봤니. 공자님 말씀인데,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 말의 변형을 적용했어. 내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받고 싶었던 대로 아이를 키웠어. 우리 엄마가 되길 바랐던 모습의 엄마가 되려고 애를 썼고.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나도 처음엔 생각했지.
근데 아니더라.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그 나이의 내가 받았던 상처들이 치유되는 걸 느껴. 그 치유의 힘으로 엄마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기도 하지만 이건 부차적인 거고. 그냥 난 내가 많이 평온해지는 걸 느끼고 있어. 물론 나도 완벽히 잘하는 엄마는 아니고 우리 앤 무슨 생각을 할지, 우리 애가 내 나이가 되어선 또 무슨 생각을 할진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엄마고 운운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좋은 엄마네 나쁜 엄마네 그런 이야기도 메인은 아니구.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입은 상처 때문에 엄마됨을 포기하진 말라는 거야. 엄마가 되는 건, 내가 입은 상처를 치유할 거대한 기회를 얻는다는 말도 되더라구.
나는 나야. 나와 엄마는 다른 사람이지. 미워하며 닮는다는 말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더란 거야. 타산지석, 반면교사란 말도 있잖니. 내가 엄마에게 입은 상처를 아이에게 똑같이 물려주게 될까 지레 겁먹지 마.
그 말이 하고 싶었어.
아이 시험 준비 같이 하다 아이 먼저 재우고 문득 써 봤어. 나 좀 자란 뒤에 우리 엄마가 공부하란 말만하고 방에 밀어넣고 (가둬놓고?) 거실에서 tv보며 웃는 대신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애 공부하는 뒤에서 뜨개질 하거나 책 읽는 엄마였으면, 한 걸음 더 나가 공부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했거든. 거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tv 소리에 난 참 외롭더라. 아이 공부를 돌봐주며 그 외로움이 잊혀졌어. 그냥 그런 거야. 내 상처가 치유되더라고. 애 공부 돕는데.
혹시 거슬리는 덬 있다면 미리 사과할게. 훈계하고 가르치려 쓴 건 아니야.
가장 흔하게 나오는 심리 치료 이야기 중에
내 안의 상처받아 자라지 못한 아이를 안아주라는 말 많이 들어봤을거야. 어린시절의 상처받은 나를 성인이 된 내가 돌봐주란 이론인데... 그거랑 비슷해.
난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고,
가난 때문에 어쩔수 없이 거칠고 황폐해진 엄마에게서 상처가 많아. 아 지금와서 엄마를 원망하고 어쩌고 하는 글은 아니야. 엄마가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았는지는 내가 아니까. 근데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맘 속 상처는 여전히 있지.
구체적인 내 성장과정을 쓰진 않을게.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기도 하려니와,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그런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지.
덬들 그런 말 들어봤니. 공자님 말씀인데,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 말의 변형을 적용했어. 내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받고 싶었던 대로 아이를 키웠어. 우리 엄마가 되길 바랐던 모습의 엄마가 되려고 애를 썼고.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나도 처음엔 생각했지.
근데 아니더라.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그 나이의 내가 받았던 상처들이 치유되는 걸 느껴. 그 치유의 힘으로 엄마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기도 하지만 이건 부차적인 거고. 그냥 난 내가 많이 평온해지는 걸 느끼고 있어. 물론 나도 완벽히 잘하는 엄마는 아니고 우리 앤 무슨 생각을 할지, 우리 애가 내 나이가 되어선 또 무슨 생각을 할진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엄마고 운운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좋은 엄마네 나쁜 엄마네 그런 이야기도 메인은 아니구.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입은 상처 때문에 엄마됨을 포기하진 말라는 거야. 엄마가 되는 건, 내가 입은 상처를 치유할 거대한 기회를 얻는다는 말도 되더라구.
나는 나야. 나와 엄마는 다른 사람이지. 미워하며 닮는다는 말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더란 거야. 타산지석, 반면교사란 말도 있잖니. 내가 엄마에게 입은 상처를 아이에게 똑같이 물려주게 될까 지레 겁먹지 마.
그 말이 하고 싶었어.
아이 시험 준비 같이 하다 아이 먼저 재우고 문득 써 봤어. 나 좀 자란 뒤에 우리 엄마가 공부하란 말만하고 방에 밀어넣고 (가둬놓고?) 거실에서 tv보며 웃는 대신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애 공부하는 뒤에서 뜨개질 하거나 책 읽는 엄마였으면, 한 걸음 더 나가 공부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엄마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했거든. 거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 tv 소리에 난 참 외롭더라. 아이 공부를 돌봐주며 그 외로움이 잊혀졌어. 그냥 그런 거야. 내 상처가 치유되더라고. 애 공부 돕는데.
혹시 거슬리는 덬 있다면 미리 사과할게. 훈계하고 가르치려 쓴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