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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번역] BAILA 2016년 11월호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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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5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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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판, 증간 2PM 특장판으로 발간됐는데 사진만 다르고 내용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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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앞을 향하고, 재회를 맹세하며

2PM과 나의 6년 간
─함께 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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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큰 정열을 가슴에 품고 일본에 찾아온 여섯 명의 청년들.
자신의 꿈과 서로를 믿고 한결같이 노력하는 그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해 갔다.
시간이 지나, 지금. 그들은 팬의 큰 사랑을 받고 눈부신 빛을 계속 발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10월 26, 27일의 도쿄돔 공연을 기점으로 여섯 명이 함께 하는 일본 활동을 일단 휴지한다는 발표.
잠깐의 이별을 앞두고 일본에서의 6년, 2PM으로서 걸어온 8년에 관해서 돌아보았다.
그들이 걸어온 길을 보고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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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young

「멤버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자극이 생겨나서
신선한 기분이 된다」


일본활동에 대한 불안은
여섯이 대화함으로써
불식할 수 있었다

유연하고 정열적인 노래와 댄스. 라이브 MC에서는 소년처럼 까불거린다. 그런가 싶더니 한 걸음 떨어진 데서 멤버를 지켜보는, 올라운더 우영. 그가 생각하는 2PM의 유대감의 비밀은.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저희는 20대 때 배웠어요. 지금이야 2PM의 팀워크는 대단하지만, 데뷔 당초는 같이 살기도 했어서 자주 싸웠으니까요. 같이 지낸 시간 동안 저희도 어른이 되고 자연히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나 양보하는 마음이 생겨났죠. 그러니까 지금 저희가 이곳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본국에서의 인기를 확실히 한 여섯 명은 대대적으로 일본에 진출. 하지만 마음속은 뜻밖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한다는 건 비교적 빠른 단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한다는 단계가 되니까 갑자기 무서워졌죠. 해외진출 같은 건 물론 처음이고 말도 문화도 배워야 하고. 우리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무모한 도전에 그치는 건 아닌지 하고. 가수로서, 음악에 뜻이 있는 사람으로서 일단 한다면 제대로 결과를 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번이나 여섯이 모여서 얘기를 하면서 불안을 떨쳤습니다. 다행히도 회사나 레코드사 스태프가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해서, 저희는 큰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가질 수 있었어요」

용기는 자신감과 감사로 변한다.

「라이브 MC 때도 자주 얘기하는데요, 팬과 스태프 여러분은 저희와 함께, 하나의 팀이에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저희의 목소리에 하나하나 답해주신 결과가 "지금의 2PM"이니까. 저희가 자랑하는 좋은 팀워크는 저희를 믿고 따라와준 여러분이 쌓아준 거예요」

겁먹었던 그는 더이상 없다.

「그 뒤로 6년이 지났어요. 일본에서 지내는 시간에 두려움도 없고, 오히려 정말 즐거워요. 일본의 주요 도시나 작은 지역에도 어떤 가게랑 음식이 있는지 지금은 아니까 시간이 있으면 "잠깐 구경다니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 이 취재 뒤에 시부야에 가고 싶기도 하고요.(웃음) 그런 식으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건 좋은 거겠죠」

그의 행동범위, 교우관계는 최근 1년 사이에 훅 넓어졌다. 해외에서의 거리 구경과 레코드 수집, 예술 관계의 일을 하는 친구들의 전시회나 발표회에도 정력적으로 출석하는 등, 에너지가 넘친다.

「저에게 중요한 건,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하는 거. 아무리 그분이 유명인이더라도 제가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친해질 수 없어요. 무슨 일에도 열심히 임하는 사람이구나,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은 사람에게 끌립니다. 그런 분을 접하다 보면 서로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또 만나고 싶어지죠. 최근 사교적이 된 건, 그런 만남이 이어진 덕일지도 몰라요」

사교성뿐 아니라, 만사를 보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몇년 전에 개인적으로 일을 세이브한 시기 덕분에 제 시간을 충실히 할 수 있었어요. 그랬더니 일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당연했던 게 새롭게 보이게 된 거죠. 말하자면, 제가 다시 태어나는 듯한 감각이 됐어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그 감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멤버들을 만났어도 오늘 또 만나면 새로운 에너지와 자극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데뷔 9년째지만, 지금도 병아리예요.(웃음) 신선함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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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K

「다섯 명이 곁에서
날 지탱해줘서
괴로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2PM에서 배운 건
"상대를 즐겁게 하려면
내가 먼저 즐겨라"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가슴 앞에 두손을 모으고 온화한 미소를 띠면서 스튜디오로 들어온 준케이. 그 표정은 실로 환하다. 한국 솔로 데뷔의 반응 때문일까.

「올여름에 한국에서 솔로 활동할 생각은 없었는데요, 멤버들이 "한국에서도 해야 한다"고 기회를 만들어줬어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최근 자주 생각하는데, 일본에서의 솔로 활동이 없었다면 제 음악은 새로운 첫걸음을 디디지 못했을 거예요. 일본에서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좋을대로 하게 해주시고 결과가 좋았으니까 한국에서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죠. 팬 여러분께는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데뷔 8년 째에 본국 솔로 데뷔라는 건 결코 이르지는 않다. 그 자신에게 초조함이나 갈등은 없었을까.

「초조함 같은 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이미 꿈을 이뤘으니까. 중3 즈음에 결심한, "음악의 길로 나아간다"는 소중한 꿈을. 조금 부끄러운 얘기인데요, 고향인 대구에 있었을 때 보름달이 뜨면 매번 옥상에 올라가서 "저를 음악의 길로 나아가게 해주세요"라고 굳게 소원을 빌었어요」

꿈을 바라는 것은 쉬워도, 이루는 것은 어렵다.

「큰 뜻을 품고 대구에서 서울로 오긴 했는데, 첫 단체생활, 특히 사회생활에는 많이 당황했죠…. 데뷔하기 위해서 잘보이려고 하는 사람, 윗사람한테 아양 떠는 사람도 있고. 당시의 저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저 나름의 정의가 있어서 그런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할 수 없었어요. 그러는 사이에 오해받는 일이 늘고, 모처럼 데뷔 후보에 발탁돼도 흐지부지해지거나. 그런 일이 너댓 번 이어져서 이제 포기하자, 내가 갈 일은 여기가 아닌 거야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요」

무너질 뻔한 꿈을 그에게 붙들어매준 것은 은사의 말이었다. 

「제 꿈을 응원해주셨던 중학교 교감선생님과 때때로 연락했거든요. 그런 상황을 얘기했더니, "남자가 칼을 한 번 뽑았으면 가령 상대가 물이더라도 끝까지 칼을 휘둘러라. 한계까지 견뎌야 한다. 너라면 할 수 있다"고 해주셨어요. 저를 믿어주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기뻐서…. 힘들 때는 항상 그 말을 떠올렸죠」

데뷔 후도 수많은 큰 파도, 작은 파도가 그와 그들이 가는 길을 방해한다.

「상상도 못할 만한 괴로운 일도 있었어요. 선생님의 말씀이 있어도 마음이 꺾일 것 같은.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었죠. 힘든 시기에 여섯이 서로 곁에서 대화하고, 받쳐주고, 존재 자체가 힘이 되어 더 강하게 맺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큰 파도가 우리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가족으로 만들어준 거예요」

유대가 깊어진 2PM은 새로운 땅, 일본에서의 활동을 개시한다.

「양국국기관, 그립네요. 그때는 바라신다면 불 속에도 뛰어들 기세로 춤췄죠(웃음)」

그 뒤로 6년. 수많은 팬을 사랑하고 사랑받아온 2PM은 어떻게 변했을까.
 
「제일 변한 건 라이브일지도 몰라요. 전에는 "관객이 이렇게 생각할 테니까 이렇게 하자"고 꾸몄는데, 지금은 "우선 우리가 진심으로 즐기자"는 걸 중요시하면서 만들고 있어요. 우리가 즐기는 모습을 봐주시면, 자연히 여러분도 즐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10월 도쿄돔 공연도 그렇게 준비하고 있어요. 여러분, 기대해주세요」

꿈꾸는 소년은 새로운 가족을 얻고 다정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보름달은 지금도, 그의 머리 위에서 계속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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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hkhun

「8년 사이 얻은 건,
"너라면 할 수 있다"고
나를 믿어준 동료」


다른 사람들과의
압도적인 차이에 괴로워한
연습생 시절

모델 같은 외모와 비율, 감도는 기품이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하는 닉쿤. 현재, 케이팝 그룹에 재적하는 외국인 멤버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선구자인 그의 노고는 어지간하지 않았을 터.

「데뷔 당시, 한국 연예계에는 외국인이 적어서 그만큼 예능 방송에 곧잘 출연하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말이 서툴던 시기였던 데다 같이 출연한 분들은 말이 빠르고 사투리도 써서 너덜너덜…. 긴장해서 굳어있는 저를 보고 시청자 분들도 "한국말을 못하는데 왜 나온 걸까"라고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고립무원. 멤버가 없는 곳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자기뿐이었던 닉쿤은 정신이 없었다.

「그때의 저는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못하는 대로 즐겼으면 그게 매력적으로 비쳤을지도 모르는데, 실패가 무서워서 말을 삼키고 있었거든요. 지금이라면 못해요, 몰라요 라고 오히려 뻔뻔하게 나갈 수 있지만요. 후회라는 의미로는, 그때 좀 더 택연이한테 한국어를 배웠으면 좋았을걸. 당시 영어로 대화하거나 자진해서 통역해주는 등 정말 고마웠지만…우수한 택연 강사의 수업을 받지 않은 게 아쉬워요. 공짜였는데(웃음)」

그의 고독한 노력은 계속된다.

「한국에 가기 전에는 평범한 미국 학생이었기 때문에, 한국어는커녕 노래도 춤도 뭐 하나 못했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 기초 중의 기초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진짜 장난 아니게 못했어요. 매일 "왜 못해" "왜 안 늘어"라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만 했어요. 사방에서 오는 압박감에 지쳐서 솔직히 틀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어느날, 깨달았죠. 한국행을 결단한 건 나 자신. 이대로 포기하면 난 나한테 져버린다고」

해외 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12살에 태국의 부모 곁을 떠나 생활했던 그의 자기 룰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말 것"이었다.

「여기서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가면 부모님을 걱정시키게 되잖아요. 그건 제 룰을 깨뜨리는 거예요. 그것만은 절대로 싫었어요. 그 뒤로는 생각을 고쳐먹고 혼날 때마다 더 열심히 연습하게 됐죠」

인내와 노력으로 다져진 일상을 보내온 그가 왜 평온할 수 있는가.

「저희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정말로 잔소리가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성장해서 뭔가 벽에 부딪혔을 때 제일 먼저 떠올린 건 그 잔소리였죠. "이때를 위해 부모님이 끈질기게 말했구나"하고 납득한 동시에,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마음이 진정됐어요」

수도 없이 찾아온 위기 속에서,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었다고 한다.

「뭔가에 도전할 때, 저는 누군가에게 이기려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제의 저보다 잘하고 싶다거나, 좀 더 상냥하고 싶다거나, 계속 좋은 사람이고 싶다거나. 이기기 위해서는 제가 납득하는 수밖에 답이 없죠. 다만 그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정말로 피곤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요. 저에게는 "너라면 할 수 있어"라고 자신감을 주고 좋은 방향으로 등을 밀어주는 동료가 있으니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동료와 함께 닉쿤은 계속 달린다.

「앞으로도, 어디에 있든. 저희 여섯 명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해갈 거예요」

그건 마치,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맹세의 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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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sung

「문득
떠올리는 건
여섯이서 살았던 나날의 일」

 


내 본격적인 인생은
2PM의 탄생에서
시작되었다

서글서글한 막내 멤버 찬성. 타고난 몸을 살려 아크로바트의 토대를 담당하거나 탁월한 일본어 능력으로 라이브의 MC와 토크를 지탱해왔다.

「2PM 활동을 돌아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Heartbeat』('09년)의 음악활동. 한국에는 연말에 TV 음악방송이나 가요대상 방송이 많아서 굉장히 바쁜데요, 그 시기는 3주 정도 침대에서 잔 기억이 없어요. 방송과 그 준비 때문에 차 타고 이동해서 준비하고, 녹화하고. 다시 차를 타서…의 반복. 하루의 마지막에 샤워만을 위해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다른 멤버가 샤워하는 시간이 우리의 수면타임이었죠」

게다가, 이런 적도.

「방송국에 있었는데 우리 곡  『Tik Tok』이 디지털 음원차트 1위가 됐다는 연락이 왔거든요. 들어보니까 아무도 레코딩한 기억이 없는 곡이라서.(웃음) 단순히 너무 바빠서 저희가 기억 못했을 뿐이지만…. 그때 "이 곡 뭐였지?"라는, 모두의 놀란 얼굴이 지금은 왠지 그리워요」

가혹한 추억을 실로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는 찬성.

「저 혼자서 일했으면 괴롭겠지만, 모두 같이, 같은 고생을 했으니까요. 바쁠수록 서로 웃긴 농담을 해서 힘든 걸 웃어넘겼어요」

라이브의 MC, 취재의 빈 시간. 서로 농담하는 모습은 지금도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천진한 소년들이다.

「깨닫고 보니, 시끄러운 게 저희의 일상이 됐어요. 요즘도 문득 떠올리거든요. 여섯이 숙소에서 살았던 순간을. 기억 속의 저희도 역시 시끌벅적해서 곤란해요.(웃음)」

당시와 현재의 본인들을 비교했을 때 변한 점은 무엇일까.

「음악적인 능력이나 패션센스, 연출능력일까요. 여러 모로 업그레이드는 했지만, 본질적인 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착한 성격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섯 명이 다 갖추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대화는, 쌍방이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성립하잖아요. 그런데 개중에는 상대의 의견을 "그건 틀렸어"라고 딱 잘라버리는 사람도 있죠. 그렇게 되면 대화는 거기서 멈춰버려요.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죠. 그러니까 이야기도 통하고, 상대를 인정할 수도 있어요. 이런 멋진 사람들, 어디를 찾아봐도 없을 거예요」

2PM 멤버처럼 어릴 때 만나서 친밀한 관계성이 무너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도 드물다.

「제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PM부터라고 할 수 있고, 지금 현재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2PM이에요. 가족이자, 동료이자, 친구이기도 한. 그게 저에게 있어서의 2PM이에요」

지금은 인생의 대부분을 2PM에 쓰고 있는 찬성이지만, 원래는 연예인 지망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쓰라고 했을 때, 옆자리 애가 썼던 "대통령"을 따라 써서 제출했을 정도로 장래에 관해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진 않았고. 다만 자유분방한 성격이라서 어떤 형식에 맞춰져야 하는 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막연히 생각한 정도. 그러다가 우연히 길에서 스카우트돼서 오디션 방송에 나갔더니 떨어지고(웃음), 그 인연으로 지금 기획사의 연습생이 돼서 멤버들과 만났어요. 이건 일종의 운명이죠」

운명의 여신은 무욕의 찬성에게 미소지은 모양이다.

「요즘의 저는 여유가 넘치는 느낌이 들어요. 일은 즐겁고, 최고의 동료가 곁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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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o

「멤버들과 함께 결정한 목표를
완수함으로써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를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다섯 명을
놓지 않을 것이다

비할 데 없는 웃는 얼굴과 퍼포먼스, 세심한 팬서비스로 팬을 매료하는 준호. 올여름에 진행된 네 번째 전국 솔로투어도 대성황으로 막을 내렸다.

「너무 바빠서 성공할 수 있을지 불안해진 시기도 있었지만, 팬 여러분 덕분에 무사히 성공시킬 수 있었어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가 2PM으로 화려한 일본 데뷔를 장식한 것이 6년 전. 근미래적인 의상을 몸에 걸친 덩치 좋은 여섯 명이 큰 소리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저희도요.(웃음) 항상 하는 얘긴데요, 데뷔곡 『Take off』부터 응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바칩니다. 그런데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그때 저희의 어디에 매력이 있었는지. 그걸 알면 사랑받는 포인트를 강화해서 더 노력할 텐데」

현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2PM의 매력 중 하나. 다만,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멤버들의 막대한 노고도 있었다.

「제 원점은 연습생 시절에 있어요. 16살이나 17살 때려나. 저보다도 실력이 있는 연습생들이 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각자의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 무서워졌거든요. 언젠가 나도 꿈을 포기해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이럴 때 참고 끝까지 견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저에게 엄격하게, 실력을 붙이기 위해서 연습에 매진했어요. 누가 봐도 "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하지 않으면 데뷔 후보조차 될 수 없으니까. 경쟁에 끝까지 이기기 위해서 매일 필사적이었어요」

죽자사자 붙잡은 데뷔는 그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당시 아크로바트를 섞은 댄스 팀은 저희뿐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퍼포먼스를 보이면 많은 분들이 놀라주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기뻤고 보람과 자부도 있었어요.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어서…. 어려운 댄스였기 때문에 데뷔 사흘만에 몸을 다쳐버렸어요. 그래도 당시는 몸을 생각해서 퍼포먼스를 세이브할 수가 없었죠. 좋아서 하는 일이고, 신선하고, 재밌고…신인이라는 것도 있어서 무서울 게 없었어요」

그는 멤버와의 공동작업으로 잇따라 목표를 달성해간다.

「멤버들이랑 얘기해서, 우선은 눈앞에 있는 걸 하나씩 완수해가자, 라는 목표를 설정했어요.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한다,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받는다. 콘서트라면 전국투어, 아시아투어, 월드투어 이렇게. 이뤄나가는 사이에 10대 때에는 없었던 자신감을 조금씩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뭔가 짐이 늘면 걱정거리도 늘어가는 법.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제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나 전작보다도 좋은 걸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전보다 늘었어요. 이전의 저라면 혼자서 끌어안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달라요. 멤버들이나 의지할 수 있는 스태프랑 주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다만, 도저히 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누군가에게 상담해도 소용없으니까 얼른 자요.(웃음) 자고 일어나면 뭔가가 변해 있으니까. 다음은 주문처럼 "괜찮아.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라고 저를 타이르죠」

8년 전, 멤버들과 잡은 손을 준호는 지금도 놓지 않는다.

「단체생활과 사회생활을 2PM이라는 활동을 통해서 배워왔어요. 거기서 많은 경험을 쌓은 게 제 기둥이 됐어요. 그러니까 다른 다섯 명이 없는 생활은 상상이 안 가요. 저는 지금의 매일에 행복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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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cyeon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한다.
그것이 우리의 유대의 강점」


이 멤버들을
만나게 해준 것을
하늘에 감사해야 한다

「하하하!」. 언제나 호쾌하게 웃는 택연은 미남에다 알맹이도 하이스펙.(토익 만점 보유자이자, 명문대학원 재학중) 2PM이 되기 전에는 "의사"를 목표로 했다는 소년은, 십수 년 후 가수가 되었다.

「지금도 이 일이 저한테 맞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의사가 적성에 맞을까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요….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바로 지금의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거. 새 앨범을 내거나 새로운 작품에 임하는 등 처음 하는 경험에는 실수가 따르는 법이지만, 그때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 점에 재미를 느끼거든요」

실수가 재미있다니….

「2PM으로 지내는 건 매일 수능 시험을 치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연습생 시절은 잔뜩 연습했다든지 노력했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데뷔해서 프로가 되면, 우선은 어떤 현장에서도 결과를 요구받아요. 지금은 실수를 포함해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저 나름의 노하우를 쌓고 있는 시점이죠」

그래도 매일이 수능 시험이라는 나날의 중압은 상당할 터.

「다행히 저에게는 뛰어난 부분이 있었고,(웃음) 많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극복했습니다」

유머가 넘치고, 또한 냉정하다. 그런 그에게도 당황한 경험이.

「스케줄의 공백 부분을 처음 봤을 때예요. 데뷔부터 몇 년이나 쉬지 않고 계속 일해서 예정이 꽉 차 있는 게 저희의 일상이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텅 비어 있었어요. 순순히 "쉰다!"라고 생각하면 될 텐데, 심각한 워커홀릭이었던 저는 공허해져서 로마로 여행을 떠났어요. 기왕이면 한 적이 없는 일을 하려고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했는데…굉장히 즐거웠어요.(웃음) 여행지에서 SNS를 올리면 멤버들이 재미있어 해줬고」

그가 긍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다른 다섯 명의 존재가 있다.

「뭔가 큰일이 있으면, 멤버 중 누군가가 "얘기 좀 하자"고 말을 건네서 자연히 대화하게 돼요. 각자의 생각은 다르지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위기를 극복하면서 유대를 다져왔습니다. 데뷔 후로 8년이나 이어지고 있는 이 인연을 하늘에 감사해야죠」

택연과 멤버들이 만난 뒤로 벌써 10년이 지났다.

「저는 예전부터 단기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를 합리적으로 조합해서 세워왔어요. 데뷔 당초는 "음악방송에서 1위가 된다". 그걸 이룬 뒤로 다음은 "대상을 탄다". 그 다음은 "미국의 친구들에게 직접 내 무대를 보여준다"라든가. 일본 데뷔 때 세운 목표 중 하나인 "일본어로 가사를 써서 곡을 낸다"도 이뤘죠. 그렇게 해서 목표를 착실하게 이뤄왔다고 생각하면 참 신기하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해준 멤버들이나 스태프들, 팬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요. 덧붙여서 말하면 "택연아, 잘했어, 대단해"라고 제가 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웃음)」

착실하게 꿈을 이뤄온 그의 10년 후의 목표는.

「아무리 그래도 결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겠지만, 어떨까요?(웃음) 틀림없이 나이에 걸맞는 어른의 여유를 갖고 새로운 목표나 길을 찾고 있을 것 같아요. 멤버들이랑 같이」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울고, 함께 서로를 지탱한 동료와의 미래를 상상하며, 그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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