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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끌올? 부끄럽지만 삭제후 다시 올리는 펭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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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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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하기도 하고 심사에 문제생길까 글을 지웠는데 더 민망하게 같은 글 다시 올립니다ㅋㅋㅋㅋ왜냐! 나도 펭수같은 욕망덩어리거든요ㅋㅋㅋㅋㅋㅋ


영원한 10살 펭수의 생일을 축하하며

몇 년 전 이탈리아에 사는 60세 넘은 남자가 호적상 나이를 20년 줄여달라며 소를 제기했다. 자신의 신체나이는 20대인데도 호적상 나이 때문에 연애나 경제활동에 제약이 많고, 성별도 바꾸는 세상에 나이 바꾸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냐는 주장이었다. 남자의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별 주책이네 하고 넘겼던 이 이야기가 생각난 것은, 펭수를 생각하며 즐거움보다 걱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자각하던 어느 때였다. 아마도 펭수가 싱글 음원을 발매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단순히 이 프로젝트가 흥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즐겼던 펭수의 세계관 자체가 균열하는 것이었다.

펭수를 처음 접한 것은 구독자가 만명도 되지 않았던 때, 이육대 영상을 통해서였다. 한 마디로 충격적이었다. 항상 착하고 지루한 메시지만 전할 것 같은 EBS에서 반칙을 무릅쓰고 이기라는, 저녁은 지옥에서 먹으라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선배라는 뽀로로에게 공공연하게 시기와 경쟁심을 드러내는 캐릭터라니. EBS라는 가장 상업적이지 않은 방송사에서 내놓은 캐릭터가 누구보다도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낸다. 그 괴리감이 신선했고 충격적이었으며 웃겼다. 그러면서도, 어른처럼 위선을 떨거나 의뭉스럽게 계략을 쓰지도 않고 직설적으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펭수를 보며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래, 인생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쉬는 날 카톡하면 죽는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비싼 거 먹고 싶을 때엔 사장님을 부르는, 그것도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펭수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막 살면서도 펭수는 처음에는 허언처럼 보이던 백만 구독자, 방탄과의 무대 등 불가능해 보이던 바람들을 하나하나 이뤄갔다. 마치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린아이가 천방지축인 모습 그대로 정말 대통령이 돼버리는 것 같았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도 자기 방식을 굽히지 않는 미숙한 존재가 그 거대한 욕망을 하나하나 이뤄가는 과정은 엄청난 쾌감을 주었다.

그렇게 펭수의 구독자가 점점 늘어가며 조금씩 어떤 위화감이 내 안에서 느껴졌다. 삼성과의 콜라보는 그런 점에서 내가 다시 보기 싫어하는 몇 안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모의 면접에서 자신들 역시 취준생인 삼성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면접관으로서 고용주 측에 빙의하여 야근을 할 수 있겠냐, '일개' 사원이 사장에게 상사의 비리를 알릴 수 있느냐며 펭수에게 질문하고 공격한다. 이에 펭수는 여느 때처럼 야근은 서로 안하는 게 윈윈이다, '일개' 사원이 아니라 '무려' 사원이라며 시원하게 받아친다. 면접관들은 이를 듣고 웃지만 그 웃음은 자이언트 펭 TV에서 전에 보지 못한 애매하고 개운하지 못한 웃음이었다. 나 역시 펭수의 대답에 폭소를 터뜨렸지만 어딘가 모르게 무거워지는 마음을 느꼈다.

펭수의 말은 맞다. 야근은 서로 안하는 게 윈윈이고 사원은 사장만큼 귀한 존재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면접관에게 감히 펭수처럼 말할 수 있는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우리는 그러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펭수가 이렇게 면접에서 지르는 게 예능이 되기 위해서는, 다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면접에서 떨어지는 결과가 예상되지 않아야 하고, 떨어지더라도 괴롭지 않기 위해서는 펭수는 영원히 10살이어야 한다. 우주대스타가 되고 싶지만 입에 발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 계략을 쓴다면 그것은 하얀거탑이지 자이언트 펭TV가 아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야망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한다. 모두가 다 보고 웃을 수 있는 방식만으로는 결국 실패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실패를 보고도 또 웃기 위해서는 영원히 집값 걱정, 가족부양 걱정, 노후 걱정이 없어야 한다. EBS의 소품실을, 사실은 그냥 창고를 대기업이 지어준 삐까뻔쩍 러브하우스보다 더 좋아해야 한다. 영원히 늙지 않아야 한다. 앞날이 두렵지 않아야 한다. 잃을 것이 없어야 한다. 영원히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히 데뷔하지 않고 영원히 연습생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세계관은 유지된다.

하지만 타이거 JK라는 거물급 아티스트와 함께 음원을 낸 펭수를 연습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나 요즘 자이언트 펭TV에서도 펭수를 연습생으로 부르는 장면을 찾기 힘들다. 결국 펭수는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쇼비즈니스의 링 위에 필연적으로 오른 것이고 그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제작진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할 때 지금까지 내가 읊은 지점을 고민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언트 펭TV는 지금까지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좌충우돌 분투하는 펭수의 서사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더더욱 불가능해 보이는 빌보드 진출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이 과정에서 많은 스타들과 협업하며 그들의 팬덤을 펭수에게 끌어올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1+1=2와 같은 물리적 시너지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당신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낄지 모른다. 무슨 애들 보는 테레비 가지고, 고작 펭귄 한 마리 가지고 이렇게까지 장황설을 늘어놓는지. 이를 설명하는 원리는 투사다. 펭귄 한 마리를 펭귄으로 보지 못하고 나 자신으로 보기 때문에 더더욱 열렬히 지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스타들과 달리 펭수는 짧은 날개, 오랜 활동과 더위에 취약한 체질, 감정 변화를 알기 어려운 오묘한 마스크 등의 특징 때문에 잘생기고 멋지고 이쁘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것으로 어필할 수 없다. 물론 그의 귀여움, 연주 실력, 노래, 말솜씨는 팬덤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잘난 존재들이 세고 쏐으며 그의 탁월함은 펭클럽의 열광적 지지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펭수의 욕망, 미숙하고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이뤄내려는 분투, 이게 어떻게 먹혀버렸다는 기막힌 서사가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게 살고 싶던 우리 동년배들에게 펭수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더 응원하고 싶고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변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이룰 수 없 벗는 것을 이뤄 온, 이뤘으면 하는 크고 아름다운 새를 바라보면서 펭클럽은 점점 걱정이 많아진다. 펭수의 활약에 환호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에도 조회수를 걱정하고 구독자수를 신경 쓴다. 마치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순간에도 언제 그만두게 도리지 염려하는 것처럼, 오랜 짝사랑 끝에 이루어진 연인의 손을 잡으면서 이 손을 놓는 순간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랑스러운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버린 동년배가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러다 보니 솔직히 요즘은 펭수의 굿즈와 펭수가 광고한 상품을 사고 스트리밍을 돌리고 동영상을 반복 재생할 때에도 예전 같은 순수한 즐거움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냥 보고 싶어서,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물건이 많이 팔려야 펭수가 돈을 많이 벌고, 자이언트 펭 TV가 계속 제작될텐데 라는 걱정 때문에 동영상을 보고 ㅁ루건을 살 때도 있다. 사실 이런 모습을 10살 펭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러라고 존재하는 펭수가 아닌데, 기쁨을 주는 펭수를 보며 근심하는 펭클럽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원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자기 방식대로 쟁취하는 펭수를 사랑하면서도 그만큼 소중해진 펭수를 잃는 것을 다시 두려워하고 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해야 한다. 그것이 펭수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것. 펭수의 넘치는 재능을 새롭게 발견할 때마다 전율하고 환호하면서도, 저 재능을 다른 이름으로, 보다 자유로운 다른 모습으로 펼치고 싶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에, 결국은 찾아올 이별을 예감하며 가슴 아파한다. 구독자가 줄고 조회수가 줄고 있는 현실은 언젠가 펭수가 남극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슬픈 상상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피하고 싶던 것이, 가끔은 상상조차 못한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슬픔을 두려워할 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그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만큼 강해지지는 않았다. 아마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연약해지는 우리가 그 슬픔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우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비장하게 반복하는 게 우습지만 당연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비장한 각오와 용기가 필요하다. 주저함 없이 도전하고 도전에서 패배해도 패배가 나를 규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 패배와도 싸워 이기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두려움이 우리를 잠식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며 선물같이 찾아온 기쁨을 온전히 누리고 매 순간 충실하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펭수를 사랑한 것도 그 모습 때문이었다. 뒷일을 걱정 않고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며, 넘어져도 여전히 자신을 아끼는 모습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10살이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영원히 10살'인 이 펭귄의 정체성에서 '10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히'가 아닐까. 앞날에 대한 두려움의 전제는 유한성이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기회,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손에 가진 것을 내려놓는 모험을 한다. 그러고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이미 가진 것을 잃을 뿐이기에 겁쟁이가 된다. 하지만 펭수는 영원히 10살. 자기가 가진 것의 유한함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의 무한한 가치를 바라보기에 두려움이 없다.

8월 8일은 펭수의 생일이다. 영원히 10살이라는 펭귄의 생일이 산타도 안 믿는 동년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7월 말부터 펭클럽들은 축제 분위기다. 8월 8일은 지날 것이고 변덕스러운 어른들이 앞으로 몇십 년 펭수의 생일을 축하할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순간 함께 해준 사랑스러운 펭귄의 존재에 대한 넘치는 감사와 기쁨을 가슴속에만 묻어두는 것은 어리석다. 하루는 영원이란 시간 속에 지극히 0으로 수렴하지만, 그 하루를 충만한 기쁨으로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이 끝나고 많은 것이 변해도 우리에게 무한한 의미를 줄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을 영원에 둘지, 아니면 한계에 둘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그러니까, 다들 펭수 보고 행복해지세요. 펭수야 생일 축하하고 너의 매일을 축복해! 펭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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