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구』에 이어서 1984년에 발매하는 싱글이 나카모리 아키나의 터닝 포인트가 될 작품이라는 것은 워너 파이오니아(현 워너 뮤직 재팬)에서 제작선전에 관여하는 누구나가 느끼고 있었다. 음악관계자는 말한다.
"그때까지의 6작품은, 콘셉트로서 한 사람의 여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의미에서는 만들어내어진 나카모리 아키나였던 것이다. 더 말하자면, 키스기 에츠코와 키스기 타카오 콤비의 『세컨드 러브』는 팬 사이에서도 특히 인기가 높았지만, 매스컴은 우리노 마사오의 "불량 노선"에 아키나상(像)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키나의 이미지를 이제부터 어떻게 불식해 갈 것인가. 데뷔 3년차의 작품으로서 승부곡이었던 것은 확실해요."
그런 가운데, 7번째 작품에 대해 아키나는 작사가 강진화와 작곡가, 편곡가 하야시 테츠지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 것이다. 그것도 발매예정의 거의 3개월 전, 9월 중순의 일이었다. 당시를 하야시 테츠지는 회상한다.
"확실히 제작담당의 디렉터로버퉈, 레코딩 중이었던 스튜디오에 연락이 왔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맨처음은 우리노 씨가 나를 추천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우리노 씨가 가사를 쓰는 건가 생각했지만, 그 후에 아키나 씨 본인으로부터의 요망이라고 들었습니다. 강 씨와 저로 (스기야마 키요타카와) 오메가 트라이브 같은 작품을 써 주었으면 한다고. 그녀는 『SUMMER SUSPICION』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하야시는 70년대에 싱어송라이터로서 데뷔. 한편으로 작곡, 편곡가로서 주목받았다. 그 중에서도 타케우치 마리야 『SEPTEMBER』(79년)은 대히트. 마츠다 세이코에게도 83년의 앨범 『Canary』에 2작품을 제공했다.
"아키나 씨는 데뷔 2년차였지만, 이미 마츠다 세이코 씨와 인기를 양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아이돌의 양 1인자였기 때문에, 곡을 의뢰받았을 때는 솔직히 어떤 곡이 좋을까 압박이 있었습니다. 디렉터로부터는 불량 소녀와 부드럽고 순진한 부분을 가지는, 그 정가운데의 노선으로...라고 복잡한 이미지를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저로서는, 어느 쪽이냐고 하면 애수감을 감돌게 한 멜로디어스한 작품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락도 아니고 발라드도 아닌 작품이 좋겠다고."
덧붙여 악곡에는 가사에 곡을 붙이는 "가사 먼저"와, 곡에 가사를 붙이는 "곡 먼저"가 있지만 하야시는 후자인 "곡 먼저"였다.
"곡은 빨리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사가 난항으로... 어쨌든 가사 속의 여성상을 그리는 것에 시간이 걸렸다고 할까, 좀처럼 납득이 가는 가사가 되지 않고, 나까지 스튜디오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강 씨가 써 온 가사가 길었던 거예요. 너무 기니까, 좀 더 정리해서 컴팩트하게 해달라는 일이 되었지만, 깎는다고 해도 간단하게는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때야말로 기타도 들어가 가사의 한가운데를 조정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곡의 의뢰를 받고 나서 1개월. 완성한 것이 『북쪽 윙』이었다.
"당초의 타이틀인데, 강 씨는 『미드나이트 플라이트』라고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가사를 다 쓴 시점에서 이미 타이틀은 붙어있었어요. 그런데 그 타이틀을 『북쪽 윙』으로 바꾸고 싶다고 디렉터로부터 급하게 이야기가 왔습니다. 물론 들었을 때는 반대했어요. 왜냐하면 너무 직구스러워서, 어딘가 스마트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미드나이트 플라이트』 쪽이 좋겠다고. 하지만 나중에 타이틀은 아키나 씨의 의향이었다고 들어서... 그렇다면, 이쪽도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돌이켜보면, 아키나 씨라고 할까, 아티스트의 직감은 대단한 것이 있다고 새삼 실감하네요." = 경칭 생략
연예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유지
https://www.zakzak.co.jp/ent/news/210413/enn2104130002-n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