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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퀘어 홍백으로 보는 쇼와의 대스타들(....심심해서 주절주절 스압)
2,980 21
2021.01.28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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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도 썼지만 심심해서 한 번 적어봤어! 다들 재미로 봐주길 ㅎㅎ


많은 히트곡을 불렀거나 꾸준한 연예활동으로 아주 유명하고 

지금까지도 이따금씩 방송에서 네타로 쓰이는 에피소드를 가진 유명한 가수들만 골라서 모아봤어. 


덬질로 얻은 소소한 얘깃거리와 예전 홍백에 대한 소소한 얘기를 ㅎㅎ

그리고 쇼와 후기의 밴드나 락 가수는 나도 잘 모르고 출장을 많이한 것은 아니라서 엔카 가수가 많으니 주의!!  


지금도 많이 불리고 방송에 나오는 대표곡은 밑줄을 그어놨어. 

그리고 몇 장 팔렸는지 100만매, 200만매, 80만매... 등등 있는데 확실하지 않은 것도 많아서 그냥 적지 않았어. 찾아보기도 어렵고 ㅠ

곡은 내가 잘 알고 갖고 있는 곡도 있지만 모르는 곡도 있고 발매연도도 잘 몰라서 위키 참조했어! 






1951년(쇼와26년) 백가합전 제1회 출장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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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菅原都々子 스가와라 츠즈코(1927~)


이른바 엘레지의 여왕.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음방에 출연해서 특색 있는 창법을 보여주신 분이야.

음색이 특이하지는 않지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창법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데

개인적으로는 70세 80세의 연세에도 비교적 목소리를 잘 유지하셔서 정말 대단하시다고 생각해. 

다만 연로하시면서는 그 독특한 창법이 좀 더 강해져서 쿠세가 심해졌다고 할까.


무척 순하고 상냥한 성격인데 조용하고 침착한 편이라 옛날부터 토크방송은 자주 출연하지 않았지만 음방엔 자주 출연셔.

노래에 대한 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은, 홍백가합전 1회 출연자 중 마지막 생존자이자 내가 아는 일본 예능계의 최고 원로 가수.


쇼텐(세계에서 가장 오래 방송된 예능방송) 사회자로 유명했던 라쿠고가 카츠라 우타마루(1936-2018)의 형제자이자 스승이었던 4대 카츠라 요네마루(1925~)가 원로 예능인으로 대표적인 인물..  이분도 현역이셔, 일본 연예계에서는 스가와라 츠즈코, 일본 전통예능계에서는 요네마루상. 

원래 만담가로 우치무라 등과 같은 사무소였던 마세키 소속인 우츠미 케이코(1922-2020)가 최고령이었는데 작년 돌아가셨어, 콤비게닌인 나이츠가 자주 네타로 삼았었던 분이시지 ㅠㅠ




히트곡↓

月がとっても青いから (1955. 이 곡만 부르는 대회도 존재.....)


連絡 (1951. 한국에서 장세정이 번안하여 발매, 연락선은 떠난다

江の島悲歌 (1951. 영화화되어 히트,  

일본은 쇼와 초기부터 노래를 주제로 삼아 영화화하거나 영화에 맞춰 곡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가수가 배우를 겸업하는 경우도 아주 많았음.)

トラジ, アリラン(도라지, 아리랑. 1950. 한국 민요 맞아. 도라지는 미소라 히바리도 커버한 일본에 비교적 잘 알려진 한국 민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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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菊池章子 키쿠치 아키코(1924-2002)


원래 이분은 비파를 연주하시던 분인데 노래를 잘해서 오디션을 받아 데뷔하셨어

이분도 개성적인 음색과 뚝뚝 잘라내는 듯한 창법이 특징적인데 히트한 대표곡 두 곡의 가사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고 해.


첫 번째 히트곡인 星の流れに는 매춘에 종사하던 여성을 노래한 곡으로 가사가 당시 일본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곡이 발매할 당시 미군정 시기라 미국에 대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검열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히트한 곡이야.

특히 후렴구가 こんな女に誰がした로 세 번 반복되는데 유흥가 여성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었다고 해. 

그리고 이때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본 엔카계에서는 특히 여성팬이 큰손으로 수요가 많았는데 

키쿠치 아키코나 미소라 히바리 같은 당찬 여장부들이 많은 여성팬을 거느리고 국민적인 인기를 구가하게 됐어. 


두 번째 히트곡은 岸壁の母라는 곡.

실존인물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는데 바닷가 절벽에 서서 전쟁에 끌려간 아들이 언제 돌아오나 오매불망 그리는 노래야

일본 패전 후에 국민들이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도 극에 달했었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들의 심정이 큰 감동을 일으켜서 순식간에 히트했어.

곡을 커버한 사람들도 많은데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후타바 유리코라는 로쿄쿠시(로쿄쿠는 나니와부시라고 해서, 한국 판소리 영향을 받았다는 일본 전통예능 중 하나야.)가

70년대에 리메이크해서 공전의 히트를 쳤어. 리메이크 중에는 10분이 넘는 긴 곡도 있는데 그 곡의 대사 중에는 대놓고 내 아들을 돌려달라고 소리치는 대목도 있어. 

부모가 자식의 생사도 모르는 일이 어떻게 된 일이냐면서 반전운동에도 영향을 줬다고 해. 


히트곡↓

星の流れに(1947)

岸壁の母(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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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東海林太郎 쇼지 타로(1898-1972)


대체 東海林太郎라는 이름이 어떻게 쇼지 타로로 읽히는 건지 이해가 안돼. ㅋㅋㅋㅋ

원래 성악을 하시던 분으로 클래식을 하던 사람인데 가요계로 들어오면서 부르는 노래는 바뀌었지만 성악가처럼 차렷하고 서서 연미복에 안경,

사진 속의 모습 그대로 모든 공연을 해내면서 저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로 굳어졌어.


저 모습을 다른 가수들이 똑같이 따라하면서(모노마네)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어. 

일본 6-70년대.. 아님 80년대까지도 포함될지 모르겠지만 신인 가수들은 자기 노래를 거의 부르지 못하고─사실상 신인가수들은 히트곡이 없으니까─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을 먼저 부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좀 더 유머러스하게 재밌게 하면서 많이 패러디된 분이기도 해. 

목석처럼 비브라토도 없이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무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면 쇼지 타로 모노마네구나, 하고 못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

근데 패전 직전인 1940년대에는 군가도 많이 부른 어두운 면도 있어. 쇼와 시기 가수 중에선 사실 군가를 한 번쯤은 다 불러봤다고 해야되고..... 커버한 사람도 많아. 난 아예 그런 제목이면 안들어서 좋고 나쁜진 모르겠지만. 


히트곡↓

赤城の子守唄(1934)
国境の町(1934)
旅笠道中(1935)
野崎小唄(1935)
むらさき小唄(1935)
すみだ川(1937, 훗날 시마쿠라 치요코가 커버해서 대히트.)
名月赤城山(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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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藤山一郎 후지야마 이치로(1911-1993)


일본에서 미소라 히바리에 필적하는 유일한 남자가수, 국민영예상을 수상했어.

이분도 앞의 쇼지 타로처럼 서양음악을 배워서 음대생 출신의 성악가였는데 지휘자의 이미지가 강해. 홍백가합전에서 매년 지휘자를 맡았었기 때문이야.

홍백이나 다른 음방이 요즘은 녹음된 음원을 재생시켜서 노래를 부르지만

옛날엔 밴드를 대기시키고 라이브로 생연주에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홍백가합전의 밴드 지휘를 도맡아서 했었고 

연로한 뒤에도 방송 종료 직전에 다같이 합창하는 호타루노히카리 지휘를 맡으면서 쇼와의 홍백에서는 빠질 수 없는 분이었어.


그리고 앞의 쇼지 타로가 꼿꼿한 차렷 자세로 유명했다면 후지야마 이치로는 갖고 있는 음색도 남성적이고 부드러운,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바리톤에 반드시 정장, 정확한 발음과 정확한 음계를 지키면서 악보대로 노래를 부르는 게 이분의 개성이자 특징이라면 특징이었어.

또 교가나 응원가를 많이 남겼고 이분이 특히 발음을 중시해서 가사의 의미를 잘 전달해줘야 프로 가수라고 할 수 있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어서 

그후로도 일본 엔카 가수들은 발음을 많이 신경 썼고, 엔카나 쇼와시대의 노래는 일본어 발음을 잘 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편이야 

야마구치 모모에의 아들인 미우라 유타로도 어머니 곡을 커버하겠다면서, 어머니인 모모에에게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지 조언을 구했더니

발음을 잘 해야한다, 비탁음을 신경 써라. 그렇게 얘기해줬다고 해. 



히트곡↓

丘を越えて(1931)
酒は涙か溜息か(1931)
影を慕いて(1932)
東京ラプソディ(1936)
男の純情(1936)
青春日記(1937)
青い山脈(1949)
長崎の鐘(1949) 





1952년(쇼와26년) 백가합전 제2회 출장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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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久保幸江 쿠보 유키에(1924-2010)


이분은 게이샤 출신 가수로 처음 전국적인 히트곡을 연달아 불렀어.

이때 일본이 전후 고도성장, 특히 한국전쟁으로 인해... ^^ .... 한국은 정말 힘들고 역사적으로도 비극적인 시기였지만

일본은 반대로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해서 이자나기 경기니, 진무 경기니 하는... 어부지리로 현대 일본의 기초 경제기반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그에 따라서 유흥문화도 발달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노는 게 일상이 되었어.

쿠보 유키에가 부른 노래는 일본 전통 민요조에 쿵짝쿵짝하는, 박수로 박자만 맞춰줘도 어디서나 부를 수 있고 어렵지 않은 노래라 

대중에게 친숙해지면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고 이때 점점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미소라 히바리보다 더한 인기를 얻었어


이분이 히트하기 전부터 일본 게이샤들 중에서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은 가수활동을 했지만 이분이 가장 먼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서

게이샤 출신 가수들이 활동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해줬어. 아카사카 코우메나 카구라자카 항코, 이치마루, 코우타 카츠타로.... 등등등등


히트곡↓

ヤットン節(1952)

トンコ節(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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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笠置シヅ子 카사기 시즈코(1914-1985)


일본문화 덕질을 하다보면 반드시 들어봤을 노래, 도쿄 부기우기나 캉캉무스메를 부른.. 부기의 여왕.

여배우로도 활동하면서 영화에도 자주 출연했었는데 

미소라 히바리가 이분 노래를 입버릇처럼 불렀었고, 이분의 모노마네를 하면서 데뷔했어.

활기 가득찬 밝디 밝은 노래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때의 활짝 웃는 포스터 사진이 지금 보기에는 너무 과하게 웃는 것 같아서 괴기스럽다고도 하는데

일본은 전후에 히로뽕이 사회에 만연해서.... 정말 약빨고 찍은 사진 아니냐고도 해.


그런데 여왕답게 자기 자신의 직업인 가수에 대한 긍지가 높은 분이라 히트곡의 유행이 사그라들고나서 

중년으로 접어들어갈 무렵에 춤과 노래로 보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줄 수 없으니, 즉각 노래를 그만 부르겠다고 

딱 노래를 접어버려서 콧노래도 부르지 않고 다른 예능활동에 전념했다고 해

아마 전후, 현대 일본 가요계에서 깔끔하게 용퇴를 결심한 건 이분이 처음이 아닐까 싶어. 


앞에 적진 않았지만 이분과 같은 세대의 가수 중에 나미키 미치코라는 분이 계신데 リンゴの唄라는 노래를 불렀어.

아카이링고니 쿠치비루요세테~ 하는 노래인데 들어보지 않았으려나. 

그분은 저 노래의 그림자가 너무 커서 다른 곡은 잘 히트하지 못했는데 카사기 시즈코도 비슷한 케이스였어.

대신 앞서 후지야마 이치로의 아오이산먀쿠, 나미키 미치코의 링고노우타, 카사기 시즈코의 도쿄 부기우기가 

전후 일본을 상징하는 3대 악곡이야. 



히트곡↓

東京ブギウギ(1948)
買物ブギー(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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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越路吹雪 코시지 후부키(1924-1980)


샹송의 여왕.

엔카 가수는 아니고 프랑스 샹송을 번안해서 많이 불렀는데 이분은 출신이 비범해

다카라즈카 극단 남자배역으로 먼저 탑스타가 되었어

다른 동기들(즈키오카 유메지, 오토와 노부코, 얼마 전 돌아가신 오오지 미치오 등)도 가수활동과 배우활동을 겸업했는데 이분이 가장 대성하셨어.

코시지 후부키는 남자배역으로 이름을 알리고 영화출연을 하면서 다카라즈카에서 나왔어.

다카라즈카에서 유일하게 술담배를 즐기는 불량한 일면도 있어서 이걸로도 영 안좋게 유명세를 얻기도 했대.

그런데 사람들 돌봐주길 좋아하고 돈씀씀이도 넉넉해서 후배들이 많이 따랐다고 해.

비록 다카라즈카에서 퇴단했지만, 전후에 극단이 어려워져서 모두 퇴단하는데 동기들과 남아서 극단을 일으켜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존경도 많이 받고 무척 유명해서

지금도 탑여배우인 아마미 유키가 코시지 후부키를 연기한 적이 있었지.


남편 되는 분께선 코시지 후부키 밴드에 속한 피아니스트라서 항상 따라다녔는데 둘이서 부부 사이가 정말 좋았다고 해

DVD나 무대 영상을 보면 노래하다가 피아노에 다가가서 윙크하고 장난치면 웃으면서 받아주는 장면이 있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였고 

여장부 같은 분이셨지만 남편 앞에서는 얌전하고 남편 말이라면 꿈뻑 죽었다고.... ㅎㅎ 

아 나카모리 아키나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이 사람 한국에도 팬이 꽤 많아진 것 같은데... ^^ 

아키나의 어머니가 코시지 후부키의 광팬이라, 아키나도 코시지 후부키 노래를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

산마의 아내였던 오오타케 시노부가 이 사람이 부른 사랑의 찬가를 부르면서 홍백에 출장하기도 했었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가수 중에서는 무척 걸출한 사람이야

다카라즈카답게 드레스를 입고 무대를 거의 뛰어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퍼포먼스도 엄청나서 팬이 많았어. 



히트곡

愛の讃歌(사랑의 찬가)
ラストダンスは私に(Save the Last Dance for Me)
サン・トワ・マミ(Sans toi ma mie)
ろくでなし(Mauvais Garçon) 





1953년(쇼와28년) 백가합전 제4회 출장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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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淡谷のり子 아와야 노리코(1907-1999)

블루스의 여왕
일명 아와야 센세. 
각 부문마다 여왕이 많지 ㅎㅎ 블루스, 샹송, 엔카, 등등..... 그런데 아와야 노리코는 대중에게 음악으로 잘 알려지기보다도
모노마네 방송의 심사위원으로 사람들한테 많은 인기를 얻었어. 
특히 독설가라서 요즘 가수들은 쓰레기다, 대체 호흡을 어떻게 하는거냐, 그렇게 노래 부르면 목 다 상한다..... 등등
심한 말을 뱉으면서 사람들한테 사이다를 제공해주셨는데, 마츠토야 유미의 매운맛이라고 하면 되려나.
원래 부잣집 출신에 장녀였고 성악을 전공했던 소프라노 출신이라 고음에 능했고 독특한 음색으로 많은 곡을 내셨어.
그런데 어..... 블루스를 크게 유행시키고 잘 알린 것은 맞지만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가 너무 예전이라
곡이 많이 유통되지도 않고 나도 잘 들어보진 못했어.
모노마네 방송에서 인자하게 웃으시다가 정색하고 독설을 뱉는 모습이 익숙해.
또... 고로케나 시미즈 아키라 같은 사람들이 모노마네하면 잘 받아주고 여유롭게 웃고 장난치는 모습에 팬도 많지만
안티도 정말 많던 분이야. 군가를 싫다고 해서 사람들한테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엔카도 싫고 미소라 히바리도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 게 아니라 카사기 시즈코 모노마네로 데뷔했다고 해서 싫어했었어. 안티가 많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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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小畑 実 오바타 미노루(1923-1979)
평양 출신의 한국인 가수로 본명은 강영철. 
 
한국,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선 출신인 이분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와서
어렵게 어렵게 음악을 배워가며 가수가 되었는데 일본사회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실력으로 많은 걸 꺾어 누르고 재일한국인이 세운 방적회사 임원이 되기도 했어. 한국에서도 활동하셨다는데 자세한 것은 잘 몰라. 
그렇지만 조선 출신을 숨기고 자기를 아키타현 출신이라고 한다던지.... 피나는 노력을 하셨다고 해.
일찍 돌아가신 탓에 남겨진 영상 자료가 많지 않아서 정말 안타까워.
대표곡이라고 할 만한 잘 알려진 히트곡이 세 가지 있는데 지금까지도 많이 부르고 커버도 엄청나게 되고 있어.
그중에 칸타로즈키요우타는 최근 버라이어티에도 자주 나오는 우메자와 토미오가 부르고 다녔다던가, 어려서부터 소속되어있던 극단에서 이에 맞춰 무용을 췄다던가.... ^^ 
고전 엔카라고 할까, 40년대의 일본 엔카 중에서는 손꼽히게 많이 불리는 노래를 몇 곡 내셨어. 

湯島の白梅(1942)
勘太郎月夜唄(1943)
星影の小径(1950)
ああ高原を馬車は行く(1951)



1954년(쇼와29년) 백가합전 제5회 출장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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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美空ひばり 미소라 히바리(1937-1989)

노래 좀 하는 생선가게 딸내미가 가희로, 엔카의 여왕으로, 가요계의 여왕에서 전설로.
위 사진은 베스트 앨범 커버 같은데 어떤 사진보다도 가장 미소라 히바리라는 사람을 잘 나타낸 것 같아서 골랐어. 다른 가수들 사진은 적당히 골랐지만... 

미소라 히바리는 데뷔하게 된 과정부터 다른 사람들하고는 달랐어
아버지가 징병 당해서 전쟁에 끌려가기 직전 열린 송별회에서 노래를 한 곡 뽑아 불렀더니 모인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고
귀국한 아버지가 집안의 돈이란 돈을 긁어모아서 딸을 위한 악단을 세워 8살에 데뷔시켰어
KBS 전국노래자랑과 거의 같은, NHK 노도지만이라는 방송에 나갔더니 
어린 애가 노래를 너무 잘하니 기분이 나쁘다, 어울리지도 않고 교육에 좋지 못하다면서 악평을 쏟아냈어. 
한국에서도 너무 어린 애들이 트로트같은 성인가요를 잘 부르면 조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곤 하잖아.

그래서 일본의 전설적인 작곡가인 코가 마사오에게 직접 찾아갔지
노래를 들어보고 생각 좀 해달라고 부탁하자 코가 마사오가 히바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해서 
노래자랑 같은 방송에 나올 수준이 아니다, 격이 다르다면서 곡을 써주기 시작했고 
이후에 순행공연을 다니다가 트럭 전복사고가 일어나서 같이 탔던 사람들이 모두 죽고 히바리도 기절했는데
회복한 뒤 아버지 어머니가 더 이상 가수활동을 그만하자고 설득했더니 가수를 그만 둘거라면 죽겠다면서 화냈다고 해.
히바리는 영화배우 활동과 가수 활동을 같이 하면서 성장했는데 한 번 히트하기 시작하니까 흥행이 멈추지 않았어.

히바리는 가끔 라이브 중에 어렸을 때 부른 노래를 부를 때면 꼬맹이처럼 연기하면서 여유롭게 노래를 불렀는데 
엔카의 엔카라는 말을 풀어보면 연기하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노래를 부르지 말고 이야기해라, 카타루.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도 히바리가 부르는 노래마다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로 
상황에 맞는 연기를 곁들여서 노래를 부르다보니 엔카는 미소라 히바리가 완성시켰다고도 하더라.
곡에 따라서는 눈물 연기도 보여주고 일본 전통무용도 사범 자격을 가졌을 만큼 
충분히 단련된 연기력과 기술로 청중을 만족시켰어. 

후배 가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히바리는 노래는 내가 제일이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인데
히바리는 기교가 화려하다거나 자신만의 개성이 강해서 변칙적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라 
노래 자체는 부르기가 어렵지 않으나 히바리처럼 부르기가 어렵다고 해.
히바리는 다른 엔카가수에 비해서는 비브라토를 많이 쓰지 않고 깔끔하고 예쁘게 노래를 불러내는데
비브라토. 사실 이 꺾기는 호흡이나 성량, 고음이나 저음이 딸리는 가수들이 약점을 가리기 위해서 쓰는 도구이기도 했어
그런데 히바리는 다른 가수들보다도 천부적인 음역대가 엄청나게 넓어서 
가성을 이용해 고음을 내거나 때론 남자처럼 진성으로 저음을 내면서 다양한 노래를 거침없이 자신있게 불러냈고
아무리 다른 가수들이 히바리의 곡을 커버하더라도 히바리를 따라갈 수가 없는 게 이러한 재능과 분위기,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곡마다 변하는 그 능력이 히바리가 일본 가요계의 전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해.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대단해. 

히바리는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자기가 유명한 것도, 대단한 것도 잘 알았어.
어느 날은 집에 돌아가려고 택시를 잡았는데 그때 술을 마셨다고 했던가. 
집에 도착했는데 지갑을 미처 갖고오지 않아서 당황한 히바리는 내가 미소라 히바리인데, 잠깐만 기다려라. 그럼 가서 돈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더니 기사는 못 믿겠다, 니가 미소라 히바리면 내가 뭐겠냐면서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당황한 히바린 그럼 노래를 부를테니 들어봐라. 들어보면 내가 히바리인지 아닌지 알 것 아니냐! 
이때 링고오이와케를 들려줬더니 택시 기사는 돈은 필요 없고 그냥 가라고 했다지만, 집에 가서 돈을 챙겨주려고 갔다 왔더니 그새 택시는 가고 없었다고... 
토크쇼에 나와서 자기가 직접 이야기했었던 건데 히바리를 모르다니 좀 어이가 없었나봐. 사회자는 택시 기사가 계탔다고 말했던 것 같네.

그리고 글이 홍백 주제인 만큼 홍백 이야기를 해보면 히바리는 홍백에 17번 나가서 13번 토리를 했어.... ㅋㅋㅋㅋ..... 
하나 추가해서 특별코너로 5분 넘게 3곡 메들리를 했으니 생전 홍백 출연은 18회야.
이것만 봐도 범접할 수 없는 가수인 것 같은데 히바리는 홍백하고 대결한 유일한 가수라고도 해. 
히바리는 남동생이 야쿠자와 관련됐다는 보도가 파다해지면서 방송 출연이 어려워졌어. 
남동생은 히바리의 밴드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히바리는 남동생을 잘라내지 않고 계속해서 같이 활동했고 

결국 NHK와 관계가 틀어져서 10번 연속 출장을 사퇴하게 됐는데 NHK 홍백가합전을 사퇴한 대신 
4년간 아사히테레비에서 홍백가합전과 똑같은 시간대에 미소라 히바리 원맨쇼를 생방으로 편성해서 방송한거야.
홍백가합전에 히바리가 없으니 시청률도 떨어지고 사람들의 항의도 많았다고 해, 히바리가 홍백에 나오지 않는다니 말이 되느냐면서, 미소라 히바리는 홍백 사회도 맡았거든.
NHK는 히바리와 틀어진 관계를 고쳐내보고자 노력했지만 히바리는 자존심을 꺾지 않고 계속 싸우다가 NHK에 빅쇼라는 원맨쇼 음방이 있었어. 
한 유명 가수가 나와서 자기 노래만 계속 부르는 방송이었는데 인기는 물론이고 히트곡이 없는 가수는 출연할 수도 없던 방송이라 
시청률도 높고 인기도 많았는데 NHK에서 히바리에게 빅쇼 출연을 제의하면서 화해하게 됐고
홍백 30회 특집에서는 홍조를 대표하는 가수로 백조는 후지야마 이치로가 나와서 메들리를 해서 완전히 화해했다고 해.

히바리는 홍백가합전을 하면서 일본의 대표적인 배우이자 토크쇼 사회도 봤던 모리 미츠코와도 친해졌고 쿠로야나기 테츠코하고도 친해졌는데
두 배우는 홍백 사회를 자주 맡아서 홍백이 잘나가던 시기의 사회자라 하면 저 두 여배우가 MC를 보던 시기라고 해.
그러나 이 두 사람도 히바리의 팬이지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쟈니즈의 메리 키타카와와도 연이 깊었어.
근데 맛치가 히바리를 보고서 노래 잘하는 아줌마라고 면전에 냅다 뱉었던 사건은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사건인데
히바리가 농담으로 받아줬으니 망정이지 불쾌하게 생각했다면 쟈니즈가 망하지 않고서야 버틸 수 있었겠느냐고도 해.
한국에서도 음방하기 전에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처럼 일본도 그러한 문화가 예전부터 익히 있었는데 인사도 없이 리허설에서 저런 말을 하고 말았으니... 
물론 그 뒤에 쟈니즈에서 사죄하러 갔으니 유하게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일본 예능계에서는 예절을 중시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아마 이 일을 꼬투리 잡고 늘어졌다면 일이 커졌을 거라고 해.
그나마 라쿠고계에서는 공연하면서 스승이나 선배 제자들을 디스하고 욕하고 해도 웃으면 그게 멋이라면서 넘어가곤 하지만, 뒤에선 다른 업계보다 더욱 철저하게 예의를 차리곤 해서 
일본 연예계에서 예의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니까.. 데가와 테츠로도 수년간 비호감 연예인으로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방송국과 선후배간의 의리가 있어서 잘 챙겨주고 예의가 있다는 정평이 나서 호감 연예인으로 성공하게 된 케이스니까.

히바리가 NHK와 관계를 회복한 뒤에는 좋아하던 술 때문에 병도 심해지고 가족들도 연달아 떠나면서 많이 힘든 시기를 겪었어.
투병중에도 방송에 자주 출연하려고 했는데 히바리는 민간요법으로 감량요법(?)이었나, 절식 금식을 병행하면서 몸을 정화시킨다는둥 하는 요법으로
체중을 많이 감량했고 몸도 약해져서 목소리에도 조금 변화가 찾아오게 됐어. 
히바리는 전처럼 굵은 저음도 잘 내지 못했고 가늘고 높은 소리가 많아졌어. 
음역대를 바꾸는 것도 어려워해서 전처럼 기량이 좋진 못했지만.... 이때는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히바리라는 이름대로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노래를 했다고 해, 시오야미사키 같은 곡을 들어보면 정말 그렇지.    
유명 작곡가인 후나무라 토오루는 히바리가 말년에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굴러가면서 꺾일 때에 뭐에 걸리면서 앞으로 확 치고 나와줘야 하는데 
힘이 없고 공회전하는 것 같은 바람 빠진 소리가 나는 것 같다면서 이야기하더라.
그래도 히바리는 히바리라서 자신의 악기인 목소리에 맞춰 고음을 많이 쓰는 노래를 부르고 히트시켰어.

히바리가 생전 가장 마지막으로 낸 곡이 川の流れのように인데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곡이고 합창도 많이 하는 유명한 곡이지.
히바리는 이 곡으로 자신의 커리어의 방점을 찍어서 여왕에서 전설이 되었어. 
바닷가의 마도로스를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면서 일본조(日本調)라고 하는 일본 민요를 접목시킨 엔카를 부르던 가희가 엔카의 여왕이 됐고 
1964년 柔라는 곡을 부르면서 레코드 대상을 받아 가요계의 여왕으로 호칭이 바뀌었어.
히바리는 작사도 하고 그림이나 서도에도 능했는데 다양한 재능을 가졌고 이렇게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면서 성장한 캐릭터라 아이돌의 원조라고도 해.
남성팬도 많았지만 여성팬이 훨씬 많아서 콘서트마다 쫓아다니는 여성팬도 있었다고 하고
한쪽 어깨를 훌렁 까고 몸에 문신을 그린 야쿠자 영화에서 남장을 하기도 했고, 남자 입장에서 부르는 노래도 많아서 여성팬이 많지 않았을까 싶어. 
요즘 생각하는 아이돌의 원조라고 할 만한 분이 있다면 히바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히바리는 아니고 아마치 마리가 텐넨캐릭터의 시초이자 아이돌 시조가 아닐까 하는데.... 
반응이 괜찮으면 이 뒤에도 이어서 써볼게, 엔카가 거의 시들어간 홍백 40회까지만 해도 한참 남았다. 
읽어줘서 고마워! 

+미소라 히바리 히트곡은 400개에 달하는 싱글 중에서 내가 대충 생각나는 것만 해도 30 40곡 이상이라 너무 많아서.... 생략할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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