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제작 스태프로 도전한 통산 11번째 싱글 『미 아모레』는 작곡과 어레인저로 퓨전계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인기가 높았던 마츠오카 나오야를 맞이한 작품이었다. 단, 제작현장은 새로워졌지만 작품적으로는 『북쪽 윙』으로부터의 「여정 시리즈」를 계승하는 형태로 작사에 강진화를 기용, 라틴 사운드를 베이스로 한 악곡이 되었다.
"아키나의 재능은, 어떤 악곡이 오더라도 자신 안에 흡수해내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작품을 써주어도 아키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만다. 게다가 그녀는 가창력도 물론이지만, 실제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뛰어난 감정표현에 힘입는 점이 컸다. 노래의 주인공이 되고야 마는 재능을 겸비했다는 것입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더 베스트텐』에서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을 가창했을 때, 알아채고 보니 가사를 틀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정되지 않고, 그녀는 같은 노래라도 기복이 심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불식시켜버리고 만다... 즉 노래는 잘하지만 항상 불안정이라는 상반되는 점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녀의 매력이 되었다고 생각하네요."
어떤 음악관계자는 아키나의 매력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새롭게 담당 디렉터가 된 후지쿠라 카츠미(현 음악 프로듀서)는 "한마디로 말하지만, 아키나는 감성이 풍부한 겁니다. 특히 시각적인 부분에서, 디자인은 물론 그녀의 관점은 다른 사람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그것이 사운드의 표현에도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맨처음에 2, 3패턴을 노래시키고, 그 다음에, 어느 패턴이 좋은가 결정합니다만, 그녀는 사운드를 들은 단계에서, 자신의 보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가, 게다가 시류에 맞춘 것을 순간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의견을 내고 악곡은 결정했었지만, 솔직히 디렉션적으로는 세간이 말하는 만큼 어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었으니까"라고 되돌아본다.
1985년 3월 8일에 발매된 『미 아모레』는, 3월 18일부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 첫등장 1위에 랭크되었다. 한편, TBS의 차트 음악방송 『더 베스트텐』에서는 10위로 첫등장. 그 후 2주에 걸쳐 3위가 이어지지만, 등장 4주째인 4월 11일 방송에서 1위에 빛났다.
워너 파이오니아(현 워너 뮤직 재팬)에서 아키나의 담당 프로모터였던 타나카 요시아키는 말한다.
"『미 아모레』는 출하 베이스에서는 100만장을 넘어, 세일즈로서는 85년 오리콘 연간 싱글 차트에서 2위(1위는 체커즈 『줄리아에게 하트브레이크』)에 빛났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양악에서 이동해 온 후지쿠라 씨와 아키나의 센스가 훌륭하게 적중했다고 생각해요. 이런 말도, 결과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작품으로서도 시마다 (유조) 디렉터에게는 마지막이 되고 만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의 세일즈를 넘어, 명실공히 『세컨드 러브』에 뒤잇는 대표작이 되었으니까요."
이 작품에서 특필해야 할 점은, 작사의 강진화가 『미 아모레』의 멜로디에 완전히 다른 가사를 실은 12인치 싱글 『붉은 새 도망쳤다』를 데뷔 기념일인 85년 5월 1일에 발매한 것이다.
"기본적인 어레인지는 같습니다만, 가사를 바꾸면서, 마츠오카에 의해 인트로나 간주에 퍼커션을 강조시킨 라틴 롱 버전으로 완성했습니다. 후지쿠라 씨 특유의 아이디어로, 팬에게의 서프라이즈적인 요소도 있었지만, 이 기획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고참 음악관계자)
이 곡은 오리콘 싱글 차트에서는 첫등장 12위(5월 6일부)였지만, 2주째인 5월 13일부에서 당당히 1위에 랭크되었다. = 경칭생략
연예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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