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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거다
/이해인, 봉숭아
한지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정원의 풀숲을 걸으며
지질시대 구분표를 암송했다
하지만 그 암송도 한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애는 지질시대의 모든 시기마다 숨쉬고 있었다
지구가 처음 생겨났을 때에도,
지구에 단단한 지표면이 없었을 때에도,
육지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도,
그 애는 그저 거기에 있었다
/최은영, 한지와 영주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겨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편지
당신을
누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일상(日常)의 가식을 벗고
당신의 둘레에서
나 하나만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 놓고
당신이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자리쯤에
떨리는 마음으로 서 있다가
당신을 이름 하여
불리어진 이름들이 모두 지워지고
나의 침묵이
당신을 위한 언어로 바로 서는 순간
수줍은 모습으로
당신 앞에 다가가
나는 당신을
누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서주홍,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
당신이 나의 들숨과 날숨이라면
그 사이 찰나의 멈춤은
당신을 향한 나의 숨 멎는 사랑이어라
/서덕준, 호흡
너를 좋아해
어느 밤에 소녀가 문득 중얼거렸다
옅어진 육체만큼이나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고, 달이 뜨고,
주변에 소음이라고는 없이 고요한 허공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였다
너를 좋아해
소녀는 분명히 해두겠다는 듯이 한번 더 똑바로 말했다
소년은 기쁨에 사로잡혔지만 즉시 겁에 질렸다
이 고백이 남아있을 그에게 지옥을,
소녀가 없는 세계에서 소멸을 맞기까지
그리움의 지옥을 불러일으킬 주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성중, 허공의 아이들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왕국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
/정현종,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무리를 쫓지 못한 실타래 바람이
네 머리를 쓰다듬고 갔다
커튼을 관통한 빛의 집중 공격에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런데
이상하지
햇빛이 닿는 곳은 차고 넘치는데
왜 너만 반짝이는 거야
/백가희, 통로
한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거다
/이해인, 봉숭아
한지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정원의 풀숲을 걸으며
지질시대 구분표를 암송했다
하지만 그 암송도 한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애는 지질시대의 모든 시기마다 숨쉬고 있었다
지구가 처음 생겨났을 때에도,
지구에 단단한 지표면이 없었을 때에도,
육지 동물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도,
그 애는 그저 거기에 있었다
/최은영, 한지와 영주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겨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편지
당신을
누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일상(日常)의 가식을 벗고
당신의 둘레에서
나 하나만 부를 수 있는
당신의 이름을 지어 놓고
당신이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자리쯤에
떨리는 마음으로 서 있다가
당신을 이름 하여
불리어진 이름들이 모두 지워지고
나의 침묵이
당신을 위한 언어로 바로 서는 순간
수줍은 모습으로
당신 앞에 다가가
나는 당신을
누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서주홍,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이름
당신이 나의 들숨과 날숨이라면
그 사이 찰나의 멈춤은
당신을 향한 나의 숨 멎는 사랑이어라
/서덕준, 호흡
너를 좋아해
어느 밤에 소녀가 문득 중얼거렸다
옅어진 육체만큼이나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고, 달이 뜨고,
주변에 소음이라고는 없이 고요한 허공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였다
너를 좋아해
소녀는 분명히 해두겠다는 듯이 한번 더 똑바로 말했다
소년은 기쁨에 사로잡혔지만 즉시 겁에 질렸다
이 고백이 남아있을 그에게 지옥을,
소녀가 없는 세계에서 소멸을 맞기까지
그리움의 지옥을 불러일으킬 주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성중, 허공의 아이들
나는 그 여자가 혼자
있을때도 울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혼자 있을때 그 여자의
울음을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여자의 울음은 끝까지
자기의 것이고 자기의 왕국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러나 그 여자의 울음을 듣는
내 귀를 사랑한다
/정현종, 그 여자의 울음은 내 귀를 지나서도 변함없이 울음의 왕국에 있다
무리를 쫓지 못한 실타래 바람이
네 머리를 쓰다듬고 갔다
커튼을 관통한 빛의 집중 공격에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런데
이상하지
햇빛이 닿는 곳은 차고 넘치는데
왜 너만 반짝이는 거야
/백가희, 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