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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나는 왜 나이 드는 게 두려웠을까?.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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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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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이 드는 게 두려웠을까?

시간이 지난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과 동의어다 .

2017 . 04 . 06


돌아보면 20대의 나는 유난히 나이에 민감했다. 중고딩 시절, 나이 먹는다는 것은 ‘스물’이라는 행복한 목표(?)를 향해 한 살씩 가까워지는 일이었다(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그랬다. 현실을 몰랐지…).



하지만 스물에서 두세 살만 더 먹어도 ‘헌내기’ 취급을 당했고, 스물다섯이 가까워오면 ‘반오십’이라느니 ‘꺾였다’느니… 재미도 없는 농담을 들어야 했다. 누구도 ‘서른’을 행복한 목표로 보지 않았기에, 나 역시 달갑게 나이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대망의 스물아홉을 맞이했다. 나는 차라리, 빨리 서른이 되길 바랐다. 만나는 사람마다 “곧 서른이네?” “이제 30대구나. 어떻게 하냐” “좋은 시절 다 갔다” 등등, 바라지도 않는 오지랖을 부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혹은 몇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단지 숫자일 뿐인 ‘스물아홉’은 그 자체로 놀림거리가 되었다. 그 말들에 큰 악의가 없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게 별생각 없이 내뱉는 고정관념이야말로 사회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는 법. 고백하자면 나 역시 발버둥 치면서도 그 고정 관념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스물아홉 내내 빨리 서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 방황은 20대 내내 계속되어오던 것이어서 더욱 무거웠다.



“또 하루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막걸리 집에서 흘러나온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웅얼웅얼 따라 부르다가, 급기야 울음이 터진 날을 기억한다. 가장 좋은 시절이 내 곁을 떠나간다는 슬픔이 울컥 쏟아졌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름 절절했다.



나는 그때, 내가 가진 모든 가능성이 가장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서른이 지나면 그것들이 서서히 사라질 거라 믿었다. 그 착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20대의 삶은 정말이지 가능성의 나날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뭔가가 이뤄진 게 아니라 가능성’만’ 있다는 것에 괴로워하는 순간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30대에는 내가 가진 선택지가 한정될 것만 같았다. 직업도, 직장도, 내 수입이나 사는 곳도, 함께하는 사람들도 정해진 채로 큰 변화 없이 늙어가기만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서른을 통과하면서 깨달았다. 30대는 가능성이 줄어드는 시기도, 선택지가 좁아지는 시기도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삶과 관계없는 질문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단계가 오는 거랄까.



고백하자면, 나는 좀 쫄보다. 소심한 건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늘 삶이 두렵다고 느꼈다(하기야 그 누가 사는 게 수월할까). 어릴 때는 두려움이 사방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토익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까? 외국어를 더 배워야 하나? 이 대외 활동이 도움이 될까? 그 사람도 날 좋아할까? 살을 더 빼야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모든 것에 쫓기고, 모든 것에 욕심났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에서 두려움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 어떤 부분의 나는 망해도 되거나 혹은 이미 망해 있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 부분은 ‘나’라는 사람의 삶에는 필요 없다는 걸, 이젠 알거든.



20대는 많이 다치는 시절이다. 어린 살결에, 여린 마음에 처음 겪어 보는 상처들이 생기는 날들의 연속이다. 나는 첫 인턴 생활에서, 무턱대고 ‘나와 잘 어울릴 것’라고 생각했던 일이 예상과 달라 실패감을 맛보고 방황했다. 첫 눈에 반한 사람이 가장 지독한 상처를 안겨주기도 했고,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니 ‘X새끼’였다는 걸 깨달은 일도 있다. 급격히 가까워졌던 친구들을 그만큼 갑작스레 잃었고, 서서히 다가온 친구들과는 천천히 닮아가며 지냈다. 무수히 많은 ‘처음’들이 스쳐간 시간들은, 마치 맨몸으로 거리를 굴러다니는 양 생생하고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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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내게 묻은 시간의 흙먼지들을 훌훌 털고 들여다본다. 유난히 흉터가 많은 곳 이 있는가 하면, 별로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여전히 아픈 곳도 있다. 내가 어떤 것에 예민하고 어떤 것에 무딘 지, 어떤 면이 못됐고 어떤 면이 착한 지,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이렇게 살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10대와 20대 내내 붙들고 있었던 이 질문들이 서른을 지나며 서서히 바뀌었다. 내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어떤 모습이지? 내가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뭐지? 내 삶에서 뭘 빼야 하지? 어떻게 하면 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나다운 것만 남길 수 있지?



이런 질문들이 이어졌을 때, 나는 감히 마흔의 나를 그려볼 수 있었 다. (으아앗. 마흔이라니!) 20대 때는 서른이 다가오는 게 마냥 두려웠고, 상상해보려 해도 잘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30대는 뒤돌아볼 10년이 있기 때문에, 추억이자 동시에 반면교사 삼을 내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또 10년을 살아가면 40대에는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희미하게나마 그려낼 현실감도 있다.



스무 살부터 스물아홉 살까지의 삶이 서른의 나를 만들었던 것처럼, 아마 마흔의 나는 그때까지 살아간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게 핵심이다. 시간이 지난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과 동의어다. 내가 쌓아가는 모습은 생길 것이고, 내가 지우려고 애쓰는 모습은 천천히 흐려질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이 나를 만들었고 또 만들어간다는 걸, 30대에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김윤아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Girl Talk’라는 노래를 아낀다. 그 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열일곱, 또는 열셋의 나. 모순 덩어리인 그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조근조근 말하고 싶어.” 여전히 방황했던 스물일곱, 스물셋의 내게도 같은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너는 반짝이는 작은 별. 아직은 높이 뜨지 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 거야.” 모두들 혼란해도 아름다운 길을 지나 서른까지 무사히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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