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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스압주의] 짠내나는 하현우의 인생사 (조선대, 한예진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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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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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 조선대강연, 한예진특강 및 인터뷰를 토대로 시간상에 맞게 재조립한 글입니다.

중간에 삽입되는 그림은 거의 의미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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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프로필사진



저는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고요, 7살쯤 안산으로 왔어요. 안산에서 초중고를 다 다녔는데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초등1학년 때 꿈이 많았어요. 제가 워낙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그중에 그림을 그리는걸 좋아해서 만화가가 꿈이였었어요.

그리고 제 음악이 사실 어려워요. 불안한 요소들도 있고. 제가 지금 보면 살짝 잘 생겨 보일 수 있어요.

하얗고 동안이고. 하지만 사춘기 때는 이 모습이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나이 들어서 정리가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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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시절




어릴 적엔 결핍이라는 게 강했어요. 저는 사춘기를 굉장히 격정적으로 보냈어요.

초라함. 무력감. 패배감. 제가 늘 불량품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몸도 약했고 공부도 잘 못했고 키가 크거나 힘이 센 것도 아니었고... 굉장히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중학교 때 절정이었죠. 친구도 없었고. 구석에서 만화 그리는 제 모습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굉장히 소심했었고. 가족과 대화도 많지 않아서 제 안에 갇혀서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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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우 그림

고등학교 친구피셜 그림은 잘그렸다고한다.  



그러다가 고2때 만나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인천 남자랑 바람이 났어요. 순간 생각을 했죠. 

왜 나는 다른 남자에게 여자를 뺏긴 걸까?. 제 인생 최초의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잘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더니 하나도 없었어요. 매력적인 건 발목밖에 없었어요. 얼마나 슬픈지 아세요?

귀도 작고 눈썹도 없고 손목도 얇고. 너무 별로였어요. 전 제가 싫었어요. 타고난 건데... 

이대로 현실에 무릎을 꿇을 것인가 아니면 내 자신을 튜닝을 해서 내 삶을 개선시킬까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화가가 꿈이셔서 아버지 몰래 저를 미술 학원을 보내주셨어요.

어느날 미술학원 선생님이 ‘넌 남자가 제일 멋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나처럼 한가지 일에 몰입하고 있을때 남자는 제일 멋있는 거야.’라고 하시는데 정말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뭔가에 몰입해야지 했죠. 그런데 그림은 여자들에게 못 보여 주잖아요. 그럴 수 있는 건 노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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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우 자화상 그리부이(Gribouille: 바보)

항상 선생님처럼 말하는 말투와 합쳐

팬들은 하현우를 '그쌤'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노래방 가는 걸 싫어했어요. 고1때 노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하기 싫어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첫소절을 정말로 흥얼거리기만 하다가 그냥 나와 버렸어요.

 그 정도로 남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데 여자에게 받은 상처와 자신을 갱신해야겠다며 일주일에 다섯번 노래방을 가서 3시간 4시간씩

심지어 피를 토할 정도로 노래했어요. 예전에는 제가 있었는지도 몰랐었을꺼에요. 

중학교때는 친구가 한명밖에 없었고 고등학교 1학년,2학년때까진 활발하지도 않고 내성적인 성격이였거든요. 

항상 구석에서 그림만 그리고 있고 그림그리는게 유일한 낙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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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시절




▲ 그는 지금의 목소리를 녹슨칼이라 하고
예전의 목소리를 떨어지는 물방울에 비유한다.




소리 지르면서 노래 부르니까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했어요.

소리가 너무 잘나와서 내 목소리에 내 귀가 먹을뻔한 적도 있어요. 그정도로 제가 주체할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가 막 뿜어져 나오는거에요. 그래서 친구 누나가 성악을해서 노래를 잘부르려면 어떻게 해야하냐 물어봤었어요.

선생님이 배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니까 괜찮아졌다는 말에 교실에서 책상에 책이랑 반에 한명씩 배에 올려놓고

노래를 부르고 그랬었어요. 노래를 잘 부르게 되면서 사람들도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저를 멋있게 보는 거예요.

노래를 부르면 여자애들이 말도 저한테 걸고 그러더라구요. 

아예 모르는 여자애인데 나중에 잘되면 연락해달라고 하더라구요.

 아 그래서 노래라는게 예술이고 뭐고 떠나서 여자에게 사랑받을수 있구나 하는걸 느꼇어요.

노래로 상도 많이타고 노래대회에서 금도받고 가전기기도 받고 다받았었어요.

그러다가 학교 축제 때 난리가 났었어요. 

그때 멋에 취해 있어서 일부러 넥타이 풀고 슬리퍼 끌고 올라가서 쉬즈곤을 불렀어요.

그 때 처음 환호성을 받으면서 '역시 사람은 미친 듯이 뭔가 하나를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하지만 부모님들이 으레 그렇듯이 대학을 가야한다고 생각하셨고 음악은 반대가 심하셨어요.

 어머니 꿈이 원래 화가였어서 미술 쪽으로 가는 건 긍정적이셨어요.

저도 그림 좋아했고 어릴적 꿈이기도 해서 미술쪽도 좋았죠.

 아버지는 미술도 반대하셨지만 결국 그림으로 대학을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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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길 (현 국카스텐 드러머)

하현우를 노래하게한 장본인

에너지는 넘치는데 잘안씻고 사고뭉치인걸로

하현우에게 매일 구박당하며 산다

하현우도 노래 권유한 업적은 인정하는듯 (그것만)




대학교 들어가서 노래에 대한 애착은 접고 그 에너지를 그림에 모조리 쏟아부었어요.

별에별 그림을 다 그렸던거같아요. 누드도 그려보고. 제일 기억에남는게 누드거든요 너무 행복했던거같아요 (웃음).

그러다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는데, 1학년 초에 대학교 앞을 걸어가는데 거지 같이 생긴 사람이 말을 거는 거예요.

저한테 앵벌이를 하러오나? 거북이알 아이스크림 빨면서 제 티셔츠에 아이스크림 뭍히고 말이죠.

 저는 그때 녹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너바나 티를 입고 녹색 바지에 녹색 신발에, 이상하게 하고 다녔어요. 

그 사람이 ‘혹시 음악 좋아하세요?'

 '노래 부를 줄 아세요?'

'스쿨 밴드하는데 펑크 음악인데 노래 잘 못 불러도 된다' 고 해서

(펑크음악이 자기멋에 취해하는거라 특별한 테크닉 필요없이 그냥 아무나 잡고 하려고 했었나봐요)

 밴드 오디션을 봤는데 의외로 잘 불렀던 거죠. 소리만 지를 줄 알았는데 제 노래를 듣고는 저에 대한 욕심이 생겼겠죠?

이때 만난게 지금 저희 밴드에서 드럼치는 이정길이에요. 그리고 저도 막 하다가 밴드가 너무 좋은거에요

이 악기가 그냥 볼대는 물건이다가 잭꼽고 손으로 비비면 비빈다고 좋다고 소리가 나고 또 쌔게치면 막 쎄게 소리가 나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감정이 있는것처럼 이게 죽어있는 물건인줄 알았는데말이에요. 그래서 와 밴드 죽인다! 해서

그때부터 1년동안 공연을 미친 듯이 했어요. MT공연만 8번을 갔을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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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었을적의 하현우

이때까지 안경은 안쓰고 다녔나보다





그런데 선배가 계속 얼차례를 주고 술을 먹였어요. 나는 진짜 음악을 하고 싶은데... 

고교 미술부 써클할 때도 많이 맞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 선후배 관계가 싫었어요.

 ‘나와서 진짜 음악 한번 해볼까?’하며 드러머랑 놀이터에서 컵라면과 소주를 먹으면서 고민했어요.

드러머에겐 제가 믿음직했었겠죠.

걔는 드럼 자체가 아니라 무대 위에 뭔가를 하는 게 좋아서 밴드를 하는 이상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드럼을 치다가 자기 흥에 못 이기면 드럼 뽑아서 쟁반 춤추고. 걔한텐 음악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만약 학교 관두면 나도 너 따라서 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딱 보니까 내가 결국 그림을 안그릴꺼같다. 나는 음악을 해야만 할것같은 내가 음악을하면 잘될꺼같은

그런 확신이 있었어요. 어디서 그런 확신이 나온지는 모르겠어요. 무모하고 멍청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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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랑은 상관없는 국카스텐 초기때

으악...후줄근해..




 20살 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잖아요. 물론 여기 계신 20살은 나름 세계관이 있으시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그 때가 귀엽게 느껴져요. 20살 때 가지고 있던 나만의 세계, 

내가 가늠하고 있는 정도의 영역, 

사회생활도 몰랐을 때였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를 휩쓸고 지났었고,

 사춘기 때의 패배감, 무력감, 두려움이 더해져서

 결국 저는 그 바로 다음날 자퇴를 하고 나왔어요. 휴학을 했어도 됐었는데 일부러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고 멍청해서 그런 결단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멍청한 게 참 무서운 게, 멍청해서 과감할 수 있었어요. 

1년 만에 학교를 관두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나 학교 자퇴서 냈다.' '왜?' '나 음악할꺼다...' 어머니가 실망을 많이 했죠. 

제가 어머니였더라도 정말 황당했을꺼에요.

그리고 어머니가 걱정이 심했을 거예요. 이해해요. 

 그때 부모님이랑 사이가 너무 안좋아져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한동안 집에 못 들어가고 친구 집에서 자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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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관련없는 국카스텐 초기때 사진

으악...진짜 후줄근해..



그 기간이 길어지니까 친구들도 귀찮아서 점점 연락을 안 받고 문도 안 열어 주더라고요. 

그때부터 막 살기 시작했어요. 20살의 나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게 됐죠.

이제부터 노숙을 시작하게 된거에요. 그때가 한 겨울이였는데

잠바안에 티셔츠를 한 8장을 끼워입고 그래서 매일 제일 안에있는 티셔츠를 돌아가며 겉에꺼랑 바꿔입었어요.

씻어야하는데 겨울이라 어디 뜨듯한물 나오는곳도 없고 찬물로는 힘들고.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씻는것도 귀찮아지고

못씻게됬어요. 머리는 떡지고 양말도 쭈글쭈글해지고 양말을 벗었는데 그 모양대로 쑥 벗어졌었어요.

 드러머는 원래도 되게 더러워요. 처음 만났을 때도 아이스크림 먹다 얼굴에 묻히고 흰 티도 누래졌고 슬리퍼에... 

그런데도 그 친구랑 껴안고 추운 겨울을 났어요. 

한 달 반 동안 씻지도 못해서 목욕도 해야 하니까 짜장면 알바나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죠. 

그렇게 20대 초반을 거의 건설현장에서 보냈어요. 심지어 안산 YMCA건물을 제가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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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현우 오른팔의 문신

랭보의 '영원'이라는 시 이다.

정형성에서 탈피해있고 이미지가 형상화되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낀것 같다.





그때 제가 느낀 건, 제가 저에게 내리는 형벌 같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결정한 일이나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노동의 힘듦과 추위, 불안함 속에서도 조금은 쾌락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뭔가 시원하게 한 대 맞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에게 채찍질 하는 느낌이랄까. 

제가 되게 게으르고 능동적이지 못해서, 제 스스로 절벽 위에 모는 경험도 필요했던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잘 선택했던 거죠. 

더 이상 무거운 짐을 나르지 않고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삶을 상상만 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이렇게 된 건 무모하고 멍청했던 스무살의 하현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무모하고 가치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보면 그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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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현우 왼쪽팔의 문신

자신의 곡 '거울'의 악보를 새겼다.




그렇게 방황을 하다 드디어 서울을 오게 됐어요. 밴드 동아리에는 편지 한 장 남겼어요.

 ‘진짜 음악을 하기 위해 떠납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도망치듯 떠났어요. 

드럼과 보컬 밖에 없으니 기타가 필요해서 멤버를 찾았죠. 

인터넷에서 모집했는데 ‘우리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

죽이는 음악을 할 큰 포부를 가진 뮤지션은 와라’고. 연락이 많이 왔었는데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전화가 너무 많이 오는거에요. 난 진짜 학교도 때려치고 모든걸 걸고 왔는데 취미인 사람이랑 같이하면

저의 에너지량을 감당 못할거 같아서, 이건 불공평하다 모든걸 다 내던질 사람이 필요하다 했는데

 그때 어떤사람이 강원도에서 전화가 왔어요. 자기가 이제 군대에 전역을 했는데 한번 만나보자고.

명동에서 처음 그사람을 봤는데 만난 사람이 지금 기타 치는 전규호씨예요. 

고속도로 터널 뚫고 받은 돈으로 기타를 사서 상경했던 형인데, 처음 만나서 합주했는데 아무것도 안됐죠.

 전 C코드도 몰랐으니까. 그 형이 충격을 받고 가려던 걸 억지로 붙잡았아요. 

형이 기타를 치는데 손이 안 보이는 거예요. 어떻게든 잡아야겠다 싶어서 같이 합숙을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유명한 곡을 카피했어요. 하드코어, 랩, 발라드, 서태지 등 여러 음악을 접해보고, 

홍대에서 다른 뮤지션들 보며 우리도 클럽에서 공연하고 싶다 얘기하면서요. 

밴드 이름이 뉴언발란스였는데, 그때 뉴발란스 신발을 좋아했는데, 그걸 뉴언발란스라고 얘기하고 다녀서

 장난으로 지은 거예요. 무대 위에 서고 노래 부르는 거 자체가 좋았던 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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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규호 (현 국카스텐 기타)

처음에는 정말 황당했을꺼같다



그러다 1-2년이 지나면서 점점 재미로만 끝나기엔 현실의 무게가 다가왔어요. 

음악적으로 성숙한 것도 아니고 고민도 없이 즐거움, 유희만으로 밴드를 하기에는 지쳤어요. 

너무 일을 많이 했거든요.

 20대 때 경험도 중요하지만 20-21살을 먹은 하현우가 그걸 감당하기엔 힘들어서 정신적으로 지쳤어요.

 결국 밴드를 없애고 멤버를 교체하고 더컴이라는 밴드를 다시 만들었어요. 

더 컴퍼스 오브 뮤직, 음악의 나침반이 되자는 뜻인데 멋있는 말 같아서 지었어요.

이제 와서 말하지만 지네들이 뭐라고 음악의 나침반이니 뭐니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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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마른 전규호와 장발 하현우





그때는 돈도 너무 없어가지고 우선 지하철은 무임승차가 기본이였고 근데 저만 그런게 아니라 멤버들 다 그랬었어요.

그러다가 무임승차 걸려서 방송에도 나왔었어요.

막 홍대에서 공연할때 담배피고 싶으면 막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100원씩 받아서 그걸로 담배피고.

그정도로 막 살았었어요. 맨날 삼각김밥에 뽀글이먹고 넷이서 라면 한봉으로 물 많이 넣고 끓여서

밥말아 먹고 남은 국물 얼려서 다시 먹고 그러다 급성신장염, 역류성 식도염같은 병도 걸렸었어요.

그러면서 망가져가고 정신도 점점 지쳐가고. 그 와중에 저희는 끝까지 음악의 끈을 놓치않았어요.

왜냐하면 이게없으면 더이상 답도없고 아무것도 없을꺼 같은거에요.

이것도 성공을하든 말든 이게없으면 안될꺼같은 생각이였어요.

아무튼 이제는 밴드를 좀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막연히 재미가 아니라 음악적으로 고민을 해보자 해서 자작곡을 만들었어요.

  내가 경험한 건 방황하고 놀고 즐긴 것뿐이었는데 가사를 쓰려니 난관에 부딪혔어요.

 처음으로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기 시작했죠. 사춘기 때는 ‘나는 왜 이럴까, 왜 태어났을까’ 생각했다면, 

가사를 쓰면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세상에 대해 쓰기에는 세상을 잘 몰라서 안 될 것 같고, 내가 가장 잘 알고 경험한 건 내 자신이니까

 내 자신만큼 좋은 소스는 없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막상 쓰려니까 정작 내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하현우란 사람이 누구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 더컴시절 썼던 나침반이라는 곡
그 당시 하현우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곡이다.
군대에서는 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곡이고
지금은 부를때마다 울컥한다고 한다.

내게 넌 말하네    이 길은 구원이라고   그의 그 마술에 모두 눈이 멀었네   넌 주문을 걸고 그게 정답이라며  
너의 회색빛 웃음 속에   점점 식어간 내 눈을   긴 어둠이 널 기다리고    내 눈은 점점 식어가고    넌 길을 잃어버리고
   넌 절벽으로 떨어지네   줄께 네게   줄께 네게   보이지가 않아도   숨을 쉴지 못해도   웃지 너는   날 보며  
긴 어둠이 널 기다리고   내 눈은 점점 식어가네    넌 길을 잃었네   넌 길을 잃었네




그런데 생각할수록 점점 미궁에 빠지더라고요. 늘 내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내 친구를 아는 것보다 내 자신을 아는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심적으로 방황하고 도움을 요청할 데가 필요했는데, 
주변에는 기타 치는 전규호와 뇌가 없는 드러머 이정길밖에 없어서 물어볼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때 처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나에게 책이란, 어려운 말이 적힌 종이에 불과했어요. 
글이란 게,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이 해주고 싶은 최고의 얘기를 오랜 기간 정리해서
 중요한 말을 추려서 쓴 거잖아요.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작가와 대화하며 조언을 얻을 수 있겠다 싶어 책을 읽었죠.
 사실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았어요. 단어도 어려웠고요. 
내면이 뭔지 자아가 뭔지 다 미지의 세계였어요. 나도, 책도.
그러는 순간에 계속 영장은 날라왔어요. 전 계속 책만 읽고싶고 노래만들고 싶고 글만 쓰고 싶었어요.

그렇게 20대 초반을 다보내고 군대를 가게 됐어요.

군대 가기 전까지 제 20대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힘들기만 하고. 

뭔가 열심히 땀도 흘리고 뭔가를 찾고 하고 있긴 한데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공허함, 무기력함이 저를 떠나지 않았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기력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과감하게 던지고 실패라도 했으면 실패의 흔적이라도 남았을 텐데. 도전도 제대로 못해보고. 

그저 어설프게 유령처럼 그 시간을 보냈어요. 그 젊은 나이 때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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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현우 가슴의 문신

펜로즈 삼각형 3차원으로는 절대 못만들지만

2차원 평면에는 가능한것처럼 그려놓은거





 그리고 군대를 가게 됐어요. 22살 때 음악학원 차량 운전 기사를 한 경험으로 운전병이 됐어요. 

운전병이 됐는데 길치여서 어리바리하다고 많이 혼났어요. 

소리 하난 잘 지르니까 축구할 때 응원을 시키기도 했어요.

부모님에게 편지도 썼었는데 저는 아직도 정신 안차리고 음악하겠다고 썼어요.

나가수 나가기 전까지 정신차려라 라는 말을 수없이 들은거 같아요. 

그러다 기타 치다 걸려서 노래나 무대에 나가는 게 금지되니 기타에 대한 욕망을 다른 쪽으로 돌렸어요. 

글을 쓰는 걸로요. 군대 2년 동안 평생 읽어야 할 것들을 다 읽은 것 같아요. 

거기에 있던 책은 다 읽었는데, 심지어 동의보감도 읽었어요. 

정리도 안 되고 다듬어지지도 않았지만 그저 글을 썼어요. 

그러다 상병 쯤 가을에 바람이 부는 연병장에서 수첩에 글을 쓰고 있었어요. 

(시인이 꿈이기도 해서 시 쓰는 거 좋아했었거든요) 

그때 바람이 싹 지나가는데 순간 바람이 저에게 말을 걸더라고요. 

(이상하게 생각하진 마시고요. 뭔 헛소리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의 진실된 경험이에요.

 이런 얘기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잘 안하긴 하는데...) 

그때 바람이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얘기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때 거기에 나밖에 없었거든요.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모든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로써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걸.

그 전에는 글을 쓸 때 내 안에서 뭔가 끄집어내려 했는데, 그때 사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한 후에는,

 사물과 나를 바꿔보기도 하고 비교해보기도 하고 변신해보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제 생각이나 정체성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흥분되어서 더 미친 듯이 글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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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강원도 하숙집에서 찍은듯의 사진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제대로 배운 게 단 한 번도 없어요. 

노래 만드는 것도 배운 적이 없어서 곡을 만들 때 시간이 오래 걸려요. 기본 3일 이상이에요.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 짧은 가사 하나 쓰는데 A4 4-5장을 써서 추리고 추려서 써요. 

사람들이 봤을 때 '이게 뭔 소리야, 허세병 걸린 애처럼 이상하게 쓴다'고 하면 허무해요. 난 치열하게 썼는데...

 그 사람들 말이 맞을 수도 있어요. 완성된 상태에서 내 음악을 표현하고 만든 건 아니니까. 

음악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걸 내보이면서 또 성숙해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아요. 

그 과정을 지켜봐주시면서 변화하는 것들을 함께 느끼는 것, 그게 예술이고 멋있는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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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카스텐 만들어질때 합류한 김기범 (베이스)

하현우 고등학교 후배이고 음악학원 다닐때 계속 합류시킬려고 꼬셨다.

처음 밴드 들어왔을때는 밴드 분위기가 안좋았었다고...



전역 후 별에별 일을 다 배웠어요. 팀도 해체되고 음악을 접을 생각을 하고있었거든요. 

중장비 자격증도 따서 굴삭기 운전도하고 도자기를 배우기도 했는데

 전규호 형이 정말 마지막으로 음악을 해보자 해서 강원도로 갔어요.

이때 만들어진게 지금의 국카스텐 프로젝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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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이나 산을 엄청 좋아한다

취미가 등산일 정도





 거기서 1년 반 동안 곡을 미친 듯이 만들었어요. 공연도 하면서요.

곡을 만들면서, 체계적으로 표현하고 진행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어서 많이 방황하고 어설펐어요. 

국텐 음악을 처음 만들 때 이것만은 지키자고 했던 약속이 있었어요.

 ‘노래가 사회적이지 않게 하자. 자아를 탐험하는 듯한 주제로, 

음악적으로 우리의 세계, 정체성, 확고한 영역을 만들자.’라고. 

사회적이지 않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야기(그것이 착각일지라도),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서 

울타리 바깥에서 생성해야만 건강한 예술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한 선택이었어요. 

‘도덕’이 뭔지 네이버에서 찾아봤는데요,

 ‘사회 구성원들이 양심이나 사회적 여론, 관습에 맞춰 지켜야할 규범의 총체’라고 나오네요.

 관습이 사회적인 틀 안에서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지만, 

예술에서는 사회적인 것을 닮아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국텐 음악 안에서 밴드의 방향성에 대해서 그렇게 정했어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차라리 사랑이나 주변 사건을 선택했다면 소재도 많고 공감대도 더 형성하기 쉬울 텐데 말이에요.

 저는 국텐 팀을 제 마지막 밴드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안 됐으면 지금 도자기 만들고 있었을 거예요. 

매력적이어서 한참 배우다 왔거든요. 

아무튼 밤에는 실내포차에서 일하고 낮에는 민박집에서 노래 만들면서 데모가 나왔어요.

이때 음악은 나가수 때 했던 음악과 성격이 달라요. 

나가수는 화장을 진하게 해서 예쁜 얼굴이라면 국텐 노래는 쌩얼이라서 괴상망측한 노래가 많아요.

 가사도 그렇고. 내안을 탐험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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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구할수도없는 1집




음원을 냈을 때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제가 봐도 괴상망측하고 희한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내가 이렇게 생긴 사람이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가 노래처럼 이런 사람이구나.’같은 것이었어요. 

내 자신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자신을 파헤쳐도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보니 내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만든 음악에서 그것을 알아갔던 것 같아요.

그 음악에서 나온 불안함과 괴상망측함, 대충 보면 뭔지는 알겠는데 정작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함,

 그 불길한 요소, 이것들이 국카스텐 음악에서 최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분들한테 대중적으로 공감을 얻기 애매하거나 힘들 수 있는 요소들도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들도 아시다피시, 제가 목소리가 굉장히 시원하고 깨끗하고 맑고, 

노래 부르다보면 매력적인 부분도 살짝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실 대중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곳에서 국카스텐 음악을 할 거라고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또 가까이 다가가려 하다가도 

여기 불안한 요소들 때문에 관객들이 어려워 하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도 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불안한 요소들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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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비즘의 주도자 피카소

'피카소의 꿈'





여러분들 큐비즘이라는 미술 장르를 아세요? 피카소의 미술 장르를 입체파, 큐비즘이라고 얘기해요.

 큐비즘이라는 게 뭐냐면 ‘공공연한 인식론, 즉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탐구에 관계한다.

 관람자들의 기대를 좌절시키거나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는 것.’인데요,

 우리의 음악이랑 닮아있다는 게 이런 점 같아요. 

우리가 보통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것을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탐구해보고,

 때론 관람자들의 기대를 좌절시키기도 하는데, 

나쁘게 좌절시키기 보다는 뭔가 어리둥절하게 만듦으로써 낯선 충격을 주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서 제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인데 평생 앞을 못 보다가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눈을 딱 떴다고 쳐요.

 눈을 딱 떴을 때 보인 장미가 아름다운 것이고 하늘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바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낯섦의 충격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늘 보이는 틀 안에서 봐오던 시선들의 물체들이 있잖아요. 사람, 사상,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것도 그렇고.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낯설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오는 충격, 그래서 이것들을 다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추구를 저는 음악 안에서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추구를 하다 보니까 30대가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 국카스텐만의 견고한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것이 비록 약간은 어색하고 틈이 보이고 어설프고 아직 덜 익은 과일처럼

 그게 완벽하진 않더라도 우리만의 영역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뿌듯함과 당당함이 있었죠.

그래서 그 전에는 음악적으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어요. (물론 지금도 돈을 많이 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 상황에서 저는 행복하고 당당했었어요.

 왜냐면 나만의 세계, 나만의 언어로써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이 있었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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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공연 갔을때 찍은 사진




어릴 때 제 자신을 불량품이라고 생각했었어요. 태어나면 안 됐던. 약간 실패작 같은 것...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다가 음악을 만나면서 제가 타고난 것들 

이외에 다른 후천적인 요소들로 내 자신의 빈 곳을 메꿀 수 있고 채워갈 수 있고,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써 내 인생을 완성시켜 나갈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저는 이 음악을 통해 발견을 했고요.

 물론 이 음악에서만 그런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니죠. 소설 같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런 행위는 가능하고요,

운동선수도 운동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행위든 자기의 마음을 어디에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서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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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런던사진

키작은 전규호가 사진에서 짤렸다




그래서 저는 이 음악이 저 스스로에게 무기를 준 것 같아요. 

녹슨 칼처럼 제 기능을 못할지언정 칼이라는 기능성은 가지고 있어서 

뭔가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담대함이나 용기 정도는 이것을 통해서 얻지 않았나 생각해요.

 2집을 만들면서 느꼈던 것은, 불유여력(不遺餘力)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어요. 

불유여력(不遺餘力)이란 ‘있는 힘을 남기지 않고 다 쓰다’라는 뜻이에요.

 어떤 책에 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는데 어릴 때 지랄할 수 있는 총량을 다 쓰면 커서는 안 쓴다는 거죠. 

(‘지랄’ 때문에 사람들이 웃자)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책에 나와 있던 말이에요. 

음악을 통해 제가 살아가고 호흡하고 해석하고 대화하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 행위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음악에 쏟아 부었을 때 

가벼워진 내 몸을 보면서 적어도 제 삶을 돌아봤을 때 후회는 남지 않을 것 같아요

. 저에게 음악은, 제 남아있는 에너지를 집중하고 제 얘기를 다 쏟아 부을 수 있는 좋은 도구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음악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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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왼쪽은 구정모 매니저

그 옆은 기타세션 이청희





그리고 음악을 통해 깨어날 수 있다는 것, 나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내 스스로가 추구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사회에 낫띵(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만연하게 우리 주변에 있는 것 같아요.

 사건사고가 터질 때 사람들의 반응이 녹슬고 무뎌진 것 같은데, 어떤 가치를 두고 깨어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음악이나 예술에서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어떤 감정만 가지고

 그것이 도식화되어서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어요. 

스쳐지나가도 아무런 영향이 없는 아름다움이 과잉되어 널려있지 않나 싶어요.

 자기 자신의 해석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깨어나야 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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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 런던




제가 제 삶을 통해 얘기 하고 싶었던 것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깨어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살아있는 것과 그저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것처럼,

 그저 눈 뜨고 숨 쉬고 있다고 해서 살아있다고 착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자기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개척해나갈 필요가 있어요. 

특히 20대는 조그마한 의지, 관심과 자기를 향한 시선만으로도 자기의 삶을 멀리 바꿀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한번 살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다시 갱신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삶을 받아들이면, 좀 더 후회 없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죽을 때에도 후회 없이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 국카스텐의 하현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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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느라 뒤지는줄 알았음

Appar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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