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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qoo

김유정의 감춰진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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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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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에서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여혐사상이 한 인간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렸는지에 대한 글을 보고서, 
나도 전부터 알고 있던 아주 끔찍한 여성학대자 한명을 고발하고 싶어서 마침내 글을 써봐. 

내가 쓰려는 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가중 하나로 손꼽히는 김유정에 대한 고발이야. 
아마 냔들도 <동백꽃>, <봄봄> 다 한번씩은 읽어봤을거야. 

나냔은 원래 근대문학가 중에서 김유정의 문장을 가장 좋아했었어. 그 해학성과 재기발랄함. 
그러다 김유정에 대해서 더 찾아보고 싶어서 작가편력을 찾아나가던 중 김유정의 첫사랑으로 꼭 묶여서 딸려다니는 이름 하나를 발견하게 돼. '박녹주'. 


20140222000013_0.jpg 



냔들은 교과서에 실리는 작가인 김유정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겠지만 박녹주에 대해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을거야. 
하지만 당대에는 등단해서 짧은 유명세를 얻은 김유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어. 당대의 가장 유명한 동편제 판소리 명창이었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호자로 지정된 국보급의 사람임. 

김유정이 일방적으로 박녹주에게 반하게 된 계기도, 우미관에서 명창대회가 열려서 점점 박녹주가 당대의 명창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이후였음. 김유정 측은 1926년 휘문고 3년생이던 김유정이, 공중목욕탕에서 비누와 수건을 들고 나오는 박녹주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하는데 사실은 그 전부터 그녀의 공연을 쭉 보던 김유정이, 녹주의 목욕탕 출입까지 따라와서 그 민낯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돼. 흔한 사생팬이 스타 집앞 기다리듯이 말야. 

그러다가 비로소 김유정이 박녹주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는 게 그로부터도 2년이 더 지난 1928년부터임. 그때 박녹주는 스물네 살의 나이로 서울 조선극장에서 열린 팔도명창대회에 참가함. 공연이 끝난 후 팬레터가 왔는데 그걸 보낸 사람이 바로 김유정. 

처음 보낸 팬레터 겉봉투에는 '박녹주 선생님'이라고 단정히 써져 있었다고 함. 어떤 편지인지 몰랐던 박녹주는 편지를 다 읽은 끝에 연서인 걸 알아차리고서는 그 편지를 되돌려 반송했음. 그런데 이 편지는 다음날 고스란히 다시 박녹주 앞으로 돌아옴. 박녹주의 회고록에 의하면, 

'돌아온 편지 안에는 레코드 재키토(재킷) 겉면에 인쇄돼있던 내 사진을 뜯어내 함께 동봉돼있었다' 함. ㄷㄷㄷ 

녹주의 사진 밑에는 '당신을 연모합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주시옵소서' 같은 구절이 적혀 있기도 했다고 함. 그때부터 김유정은 사랑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매일 편지를 보내기 시작함. 학생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걸 딱하게 여긴 녹주는 그를 불러내서 자신을 낮추는 겸양을 갖춰 김유정이 알아듣게 타이름. 

"나는 기생입니다. 학생이 좋아해서는 안되는 신분이란 말이오. 학생은 공부에 전념해야 합니다." 

녹주는 심지어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는 연인이 있음을 김유정에게 밝히기도 했음. 그런데 이런 녹주의 거절을 무시하고서 김유정은 '소리하는 기생 주제에 나를 거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계속 그녀의 거부를 무시하고 들이대는 편지를 보냄. 

녹주가 편지를 찢어버리거나 되돌려 보내며 거절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자, 김유정은 이제 박녹주에게 직접 힘을 행사하기 시작함. 녹주가 '기생'이라는 공인 신분임을 이용해서, 공연이 끝난 뒤에 집까지 쫓아가거나, 가는 길목을 막고 인력거를 덮치기도 했음. 

한번은 명월관에서 육자배기 공연을 마친 뒤에 돌아가기 위해 인력거에 오르는 녹주를 붙잡고 단 몇 시간 만이라도 자기랑 시간을 보내자면서 무작정 녹주를 끌고 가려고 한 일이 있었음. 이 때 막무가내로 끌어당기는 김유정의 팔을 뿌리치는 바람에 김유정은 엉덩방아를 찧었지. 그랬더니 다음날 이런 편지가 도착함. 

“당신이 무슨 상감이나 된 듯이 그렇게 고고한 척하는 거요. 보료 위에 버티고 앉아서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박녹주의 회고록에 의하면 '김유정이 나에게 죽이겠다고 협박편지를 보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말함. 그 뒤로 김유정은 녹주를 부르는 호칭도 달라졌음. 처음엔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편지를 보냈었지만, 그 뒤에는 당신에서, 너로.....녹주는 '자기 부인을 부르듯이 나를 불렀다'고 회고함. 

당시의 점점 심해지는 스토킹에 대한 증언은 내가 직접 쓰는 것보다도, 다른 글로 대체할게. 네이버 지식백과에 등록된 문화원형백과사전 속의 '한국최초 조선 요릿집 명월관' 편 중에서 '김유정과 박녹주' 부분에서 발췌했음. 




『... 그 날 이후, 매일 밤 그는 녹주의 집 앞을 찾아와 그녀를 기다렸다. 소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가 저 멀리 보일라치면 녹주는 뒷길로, 뒷문으로 그를 피해 다녔다. 그녀가 자신을 피해다니는 것을 알고 그는 협박 편지까지 쓰기도 했다. 그녀의 목숨을 위협하는 혈서에 녹주는 기겁을 했다. 그렇게 그녀가 한동안 그에게 시달리자 녹주는 이제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것이다. 

며칠 후, 녹주는 삼방저수지로 피서를 떠난다. 한 달여간 실컷 휴양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그의 편지. 

“당신이 없어진다고 해서 나의 사랑이 식을 리 있소. 정말 보고 싶소.” 

그리고 추석이 되자 그는 금반지, 가죽신, 털장갑 등의 선물을 보내왔다. 녹주의 성격에 그것을 받을 리 없고, 다시 돌려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 설. 이번엔 그가 직접 선물을 들고 녹주를 찾아왔다. 한동안 선생, 당신이라 지칭하던 그는 이제 대놓고, 너라고 하며 그녀를 으르는 것이다. 

“이걸 안 받으면 네가 더 불리할 거야. 알아서해!” 

“김 선생, 당신이 무슨 돈으로 이런 것을 사셨습니까. 차라리 책이라도 사보십시오. 저는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너는 너무 건방져. 네가 정히 이런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나는 자존심도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아?” 

“좋습니다. 앞으로 건방지게 굴지 않을 테니 어서 돌아가십시오.” 


녹주가 침착하게 말하자 김유정은 다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사랑엔 나이가 상관없지 않습니까.” 

녹주는 사랑이란 말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음도 났지만 이를 꾹 참고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녹주는 집을 빠져나왔다. 김유정은 그 말을 듣자 마치 그의 몸에서 혼이 빠져나간 듯, 대청 마루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한 시간 가량을 그렇게 멍하니 마당 한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져온 물건을 그냥 마루 위에 풀어놓은 채 돌아간다. 

그리고 일주일 후, 명월관에서 소리를 하고 인력거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인력거 앞을 덮치는 괴한이 있었다. 녹주는 그것이 김유정임을 금새 눈치챘다. 서지 말고 앞질러 가라 소리쳤지만 김유정은 뭔가 손에 들고 흔들었다. 인력거꾼이 칼이라고 소리치며 차를 멈췄고, 김유정은 어서 나오라며 소리쳤다. 이젠 정말 자신을 해하려 하는구나 두려움에 떨며 내린 녹주에게 들이댄 것은 하얀 몽둥이였다. 녹주가 두려워 몸을 떠는 것을 본 김유정은 자신이 더 놀라 몽둥이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떨리는 말투로 말한다. 

“너는..., 혹시 내가 돈이 없는 학생이기 때문에 나를 피하는 게냐?" 

대답을 주춤하자 그가 다시 말했다. 

“사랑에 나이는 상관없다. 그러니 네가 생각하는 것은 돈이지? 돈? 네가 돈이 필요하다면 임금님 밥상이라도 훔쳐다 주마!” 

녹주는 입을 뗀다. 

“저는 나이도 돈도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당신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것도 제 잘못입니까?” 

김유정은 놀랐다. 녹주의 솔직한 대답에 당차게 몽둥이까지 들고 나타난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예전 그 날처럼 뒤돌아 뛰어가 버렸다. 』

[네이버 지식백과] 김유정, 박녹주 편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 최초 조선 요릿집/명월관), 2008., 한국콘텐츠진흥원) 



이후에도 김유정은 계속 편지를 보내는데 특히 말기에는 혈서를 써서 보냄. 
김유정이 쓴 혈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함. 

"오늘 너는 운수가 좋았노라. 엊저녁에는 네가 천향원에 가는 걸 보고 문앞에서 기다렸으나 네가 나오지 않았다.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린게 세시간. 만일 날 만났으면 너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하지 마라. 단 며칠 목숨이 연장될 따름이니.' 


지금이라면 공권력을 통해서 접근금지를 호소할 수 있었겠지만 1930년대엔 그런 거 없었음.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한 연정이라고 포장하고 주변에서조차 박녹주를 김유정이 일방적으로 스토킹 하는 걸 '염문'이라며 입방아를 쪄댐. 박녹주는 외출도 삼가고 더러 밖에 나갈 때는 휘장을 내린 인력거를 타거나 남바위를 얼굴까지 푹 내려써서 알아보지 못하게 하면서 거동도 조심했으나 세간에서는 그 딴거 알 바 아님. 박녹주는 걍 김유정의 여인인 거임. 스캔들 좋아하는 사람들, 심지어 박녹주 주변의 친지들(훗날 김유정의 소설 <두꺼비>에서 까이는 박녹주의 남동생도 포함)까지도 김유정 편을 들면서 김유정을 가엽게 여김. 

그러다 슬그머니 줄기차게 보내던 악랄한 스토킹을 잠시 쉬게 되는데 이때는 김유정이 자신의 지병(폐결핵과 늑막염, 그리고 치질...-_-;;;) 때문에 권번 출입이 줄어들었을 때였음. 더구나 김유정은 빈털털이 신분으로 결혼한 누나 집에 얹혀 무위도식하며 눈칫밥 얻어먹던 시절이어서, 이때는 돈도 떨어진 시절이었을 것으로 보임. 

다시 아까의 문화원형대백과 사전 글을 인용해보자면, 

『그 후 녹주는 김유정의 괴롭힘 없이 자유로운 몇 년을 보냈다.』 고 함. 

『그리고 어느 날 녹주가 신문을 펴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김유정이었다. 그는 ‘소낙비’란 소설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로 중앙일보 동신 당선이 됐다. 그제서야 녹주는 그가 문학청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쩌면 서양문학에서나 나오는 기사도와 로맨스를 꿈꾸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는 녹주. 그리고 그녀는 김유정이 늑막염에 걸려 고생하면서도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마치 자신과의 일 때문일까 그녀는 신경이 쓰일 때도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유정, 박녹주 편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 최초 조선 요릿집/명월관), 2008., 한국콘텐츠진흥원) 


이 글에서는 마치 박녹주가 등단한 김유정을 그리워하는 듯한 표현을 써놓으며 미화하고 있지만, 나냔은 설마 박녹주가 자기를 죽도록 괴롭히던 남자에게 일말의 애정을 느꼈을까 싶음. 그저 짠하고 찌질한 남자에 대한 인간적 동정심 정도겠지. 

더구나 김유정은 자신의 소설 속에서 첫사랑 추억팔이나 기생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걸 주구장창 써내리는데, 그건 누가 봐도 '박녹주'에 대한 글이었음. 그런데 그 넘치는 문장력으로 써낸 것들은 졸렬하기 짝이 없는 날조에, 박녹주를 까내리는 글들이었음. 

일단 김유정은 글 속에서 박녹주를 모티브로 한게 분명한 인물에 대하여 '6살 연상의 어떤 늙은 기생과 연애하였다. 이것은 불행한 고독이었다'라고 씀. ...............연애??? 자신의 스토킹이 어느새 연애로 당당히 바뀌어있음. 

계속해서 보면, 김유정은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미화하는 이 여성에 대해서 이렇게 쓴다. 

'기생으로는 한고비를 넘은 시들은 몸이었다. 게다가 외양도 출중하게 남달리 두드러진 곳도 없었다. 이십전후의 팔팔한 남성으로는 도저히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 그런 인물이었다.' (김유정 전집 중 <생의 반려>) 


녹주는 고작 김유정의 2살 연상이었고, 김유정이 처음 스토킹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십대, 그 뒤에도 약 이십대 중반까지를 계속 스토킹 했으니 이는 악의적인 비난임. 김유정의 이같은 비난과 헐뜯기는 여러 곳에서 반복되고, 자신의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재생산 됨. 

<두꺼비>라는 소설 속에서는 '옥화'라는 기생을 등장시키는데, 여기서 이 옥화와 옥화의 남동생을 비난함. 

소설 속 주인공은 '답장 못 받은 엽서를 석달 동안' 쓰고 '화류계 사랑이란 돈이 좀 든다'는 걸 깨우치는 사람임. 주인공은 나중에 직접 옥화를 찾아가서도 옥화가 자신을 거부하는 걸 듣고도 포기할 줄을 모르는 사내임. 

'기생이 늙으면 갈 데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본 체도 안 하나 옥화도 늙는다면 내게 밖에는 갈 데가 없으려니, 하고 조금 안심하고 늙어라, 늙어라' 라고 혼잣말을 되뇌이는 것이 소설의 결말임. 


당시 김유정은 주변 문인들에게도 박녹주를 뒤에서 까내리며 함께 헐뜯었던 것으로 여겨짐. 녹주와는 한번도 사귀어본 적 없으면서, 문란하고 헤픈년 딱지를 붙이고 그녀와 연애를 했다는 말을 서슴치 않음. 한편, 주변의 문인들은 김유정과 초록은 동색이라며 편을 들어주면서 쉴드 쳐주느라 바쁨.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김유정 평전에서 박녹주를 똑같이 까내림. (*정확치 않은 부분이 있어 아래 문단 수정할게!) 


김유정은 미완성 작품<생의 반려>의 초고에서 자신의 친구였던 안필승의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함. (이 소설은 36년 8~9월 사이에 중앙일보에서 단 두회 연재되었다가 중단되는데 안필승의 감수가 일정부분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작품임. 김유정은 이 소설 개재 5개월 후 병이 심해져서 요절함) 

'그(김유정)는 애정에 굶주리었다. 다시 말하면 사랑에 굶주리었다. ....기생을 그가 생각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는 그 속에서 여러가지를 보았으리라. 즉 어머니로써 동무로써 그리고 연인으로써 그에게 필요하였다....사람같지 않은 기생이니 그(김유정)을 위하야...' 

김유정 타계 후 출판된 39년의 <겸허-김유정전>에서는 아예 박녹주를 김유정의 연인으로 쓰고 있음. 

'그가 맨처음 연애한 이는 유명한 기생이었다.' 





......연애.....얼토당토 않은 일이지. 






김유정은 서른의 나이로 급작스럽게 요절하는데, 그의 방안에는 그 당시에도 '녹주, 너를 연모한다'는 혈서가 벽에 붙어있었다고 함. 

장례식 날 친구인 안필승(위에 회고록 써준 절친)은 박녹주를 찾아가서 "당신이 박녹주냐. 내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당사자다"라고 따지고 저주했다 함. 


김유정은 박녹주의 커리어를 처참히 망가트렸고, 끔찍하고 집요하게 괴롭혔는데 지금까지도 문인계에서는 김유정의 '첫사랑' 이라는 둥, 박녹주가 김유정을 받아줬으면 김유정의 작품세계가 더 풍성했을지도 모른다는 둥, 백년 후의 지금까지도 아주 예쁜 사랑으로 미화하고 난리났음. 단 한번도 김유정과 사귀지 않았던 박녹주는 지금까지도 김유정의 '정인', 김유정의 '뮤즈'로 알려져 있음. 

더 환장할 만한 일은, 이렇게 세간이 비난하고 '유명 문학인을 잡아먹은 여자'로 비난하면서 문인계에서도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박녹주를 비난하고 나서니까, 말년에 박녹주는 회한 가득한 회고록 속에 자신의 부덕을 탓하는 내용의 글을 남김. 

"김유정에게 너무 박절하게 대하여 내가 평생 슬하에 자식 없이 살았나 보오. 손이라도 한 번 잡게 해 줄 것을…." 

1979년 5월 26일 동편제의 탁월한 명창 박녹주는 셋방을 전전하다가 면목동의 작은 단칸방에서 하직했음. 혈육은 아무도 없었고. 



가해자는 발뻗고 문학계의 보석, 요절한 천재로 드높이 칭송받고 피해자는 평생을 회한과 사죄와 죄책감 속에서 보내는,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사의 추악한 실태인거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다시는 김유정을 전처럼 좋아할 수 없게 되었고, 이런 걸 덮어놓고 당대의 문장가라며 김유정을 추켜세우는 우리나라 문학계의 후진성에 구역질이 났어. 


감춰진 이면은 더 널리 알려지고 똑바로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김유정이라는 이름 위에 덮인 신성한 권위를 치워버리고, 한 세기 전의 폭력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 그것만이, 당대에는 가장 유명한 여성 예술가였으면서도 이제는 오직 자기를 스토킹하던 남성의 '정인'으로만 이름을 남긴 여성의 오욕을 씻어줄 길이라고 생각함. 




마지막으로, 이런 사실을 알고서 김유정의 소설 면면을 다시 들여다보면 소름끼치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김유정의 소설 속 내용들은 매우 일관되게 '돈 없어서 정상적인 결혼을 못하는 남성의 비틀린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음. 

가난과 연관된 비정상적인 남녀관계를 그리는 게 김유정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음. 남편의 병이나 노름밑천, 빚, 생계 때문에 단돈 몇 푼에 몸을 팔거나 술집 작부로 나서는 아내, 그리고 아내의 매춘을 뻔히 알면서도 분노나 죄책감 없이 묵인하는 남편이 그의 소설에는 수두룩하게 나옴. 작가는 소설 속 작중인물의 세태를 건조하게 그려내며 유머, 아이러니, 풍자, 해학적 수법으로 그려내나 그 이면에 짙은 우수가 깔려 있다고 흔히 평론가들은 말하지. 


그게 우수였을까? .....나냔은 <동백꽃>을 썼던 그 김유정이 사실은 혈서를 써보내며 한 약한 여인을 몇년이나 협박하던 남자였다는 사실을 두고보면.....그건 그냥 우수가 아니라 자기연민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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