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25년 전, ‘여’가 출발대에 섰다. 짧게 깎은 군인 머리에 긴장한 표정으로 로진이 잔뜩 묻은 손에 침을 뱉었다. 25년 뒤 또 다른 ‘여’가 출발대에 섰다. 묶어 올린 머리에 표정이 담담했다. 오른손을 들어올린 다음, 달리기 시작했다. 1996년의 ‘여’와 2021년의 ‘여’가 겹치는, 25년의 시간을 넘는 데자뷔.
36,149 398
2021.08.01 18:57
36,149 398
기계체조 도마는 올림픽 모든 종목 중 가장 짧은 순간을 겨루는 종목이다. 남자 육상 100m도 10초 가까이 걸리고, 역도도 인상과 용상이 각각 3차시기 씩이다. 도마는 도움닫기 포함 4초 안에 끝나는 승부다. 기회는 2번 뿐. 8초가 채 안되는 시간으로 순위와 메달이 갈린다. 그 8초를 위해 ‘여 이대(二代)’는 수년 동안 뛰고 또 뛰고 날아 올랐다. 여서정은 “짧지만 주변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종목”이라고 도마의 매력을 밝혔다.

운명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뒤를 이었다. 어머니 김채은씨도 아시안게임 체조 메달리스트다. 부모는 베란다에 평균대를 놓았다. 여서정은 “어릴 때부터 가만히 있는 걸 못했다”고 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여홍철은 세계최고였다. 그때 기술 ‘여2’는 앞짚고 뛰어 두바퀴 반을 비튼다. 아버지를 따라 여서정도 고유기술 ‘여서정’을 가졌다. 아버지와 똑같은데 반바퀴 덜 비틀어 내린다. 여홍철은 뒤로 돌아 착지, 여서정은 앞을 보고 착지다.

그때의 아버지는 당대 최고의 기술을 가졌다. 여서정은 “지금의 나보다 도약도, 높이도 훨씬 잘했다”고 했다. 25년전, 힘껏 날아오른 여홍철은 착지 순간 뒤로 크게 밀렸다. 메달 색깔이 바뀌는 걸 직감한 여홍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서정은 3년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아버지가 못 딴 금메달 따서 꼭 목에 걸어드리고 싶다”며 울먹였다.

여서정이 입을 꽉 다문채 달리기 시작했다. 1차시기 ‘여서정’이었다. 힘차게 구른 뒤 앞짚고, 25년전 아버지처럼, 몸을 띄워올렸다. 손을 모아 비튼 뒤 두 발로 내렸다. 25년전 그때와 달리 여서정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광판에 점수 15.333이 떴다. 마이크 앞에 선 아버지는 “아아아 서정아, 너무 잘했어요. 착지도 너무 완벽했어요” 라고 외쳤다.

2차시기에서 난도 5.4짜리 기술을 안정적으로 펼쳤고, 착지에서 외발로 두 걸음 물러섰지만 여서정은 연기를 마친 뒤 기쁜 표정으로 이정식 코치에게 달려가 안겼다. 여서정은 2차시기 14.133을 받아 합계 14.733을 기록했다. 충분히 대단한 기록이었다.

3년 전 아빠의 목에 걸겠다는 ‘금’은 아니었지만 레베카 안드라지(15.083·브라질), 미카일라 스키너(14.916·미국)에 이어 한국 체조 여자 올림픽 사상 첫 메달리스트가 됐다. 아버지는 “아아아 동메달, 하하하하. 네, 잘했습니다”라고, 목놓아 외쳤다. 자신의 은메달 때 실망했던 아버지는 딸의 동메달에 목이 메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089140?cds=news_edit
목록 스크랩 (0)
댓글 398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KREAM x 더쿠💚] 덬들의 위시는 현실이 되..🌟 봄맞이 쇼핑지원 이벤트🌺 578 04.24 49,280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601,152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055,812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3,860,536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342,135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354,58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3 21.08.23 3,430,627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7 20.09.29 2,267,986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46 20.05.17 2,979,462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3 20.04.30 3,547,58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글쓰기 권한 포인트 상향 조정) 1236 18.08.31 7,915,759
모든 공지 확인하기()
2393473 이슈 [kbo] 'ABS 형평성 논란' 먼저 시작한 퓨처스리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나 12:04 8
2393472 이슈 블라인드 대통합시킨 시부모의 배려 12:03 254
2393471 유머 카카시 말풍선 사건.jpg 12:03 166
2393470 이슈 뮤비 비하인드 포토 문신 지운 박재범 12:02 262
2393469 유머 휴대폰 이름을 심하게 잘못 말한 아이돌 12:02 230
2393468 유머 (핑계고) 박보영 임수정 내향인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잇다고.. 3 12:02 437
2393467 이슈 엑디즈 Xdinary Heroes 정규 1집 <Troubleshooting> 🎯하이라이트 필름 샘플러 12:01 21
2393466 이슈 여행유튜브 보다가 놀란 방글라데시에서 버스 내리는법.gif 1 12:01 362
2393465 이슈 자고 일어나니 나 혼자만 남아있음.jpg 2 12:01 288
2393464 이슈 박보영 인스타그램 업뎃(핑계고) 1 12:00 377
2393463 팁/유용/추천 가루쿡 : 오마쯔리 야상2 일본 축제음식 만들기 1 12:00 97
2393462 유머 엄마 밥상 차리는 툥바오 보고 당근 겟하러 내려오는 루이바오🐼 12 12:00 460
2393461 유머 고양이에게 천국인 집! 마지막 고양이스러운 행동도😅 6 11:58 288
2393460 유머 발렌시아의 24 여름 컬렉션 2 11:58 316
2393459 유머 아 진짜 음쓰 냉동실에 얼리는거 너무 싫어 27 11:56 2,112
2393458 유머 과거 미국 산부인과에서 동양인 아기 태어나면 놀라는 이유.jpg 28 11:54 3,323
2393457 기사/뉴스 "이런 짓 좀 안 했으면…" 민희진 '일침'에 뼈아픈 K팝 현실 [연계소문] 11 11:54 843
2393456 유머 다림질 끝난 따땃한 다림판을 조아하는 강아지 12 11:52 764
2393455 이슈 박명수 : 야 너 뭐 믿고 그러냐?.jpg 9 11:52 1,259
2393454 기사/뉴스 “외식 끊었습니다”…여행·투자에 지갑 연 2030 4 11:52 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