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밤에 있었던 일이다.
과에서 홈커밍 행사가 있었어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막차 타야 된다고 겨우 빠져나왔다.
행사는 수서역의 한 술집에서 진행됐었고, 우리 집은 노원역 인근이었고 막차 시간이었기에 빨리 돌아가야 됐다.
수서역에서 3호선을 탄 후 고터에서 7호선 타면 딱 막차 타고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그때 내가 취해있었다는 사실.
수서역에서 3호선 막차를 탄 나는 깜빡 잠들어버렸고, 깨어보니 이미 고속터미널 역은 지나있었다.
당황해서 지하철을 막 검색해보았고, 옥수역에서 경의중앙선 막차를 타고 상봉역까지 가는게 그나마 지하철로 집까지 제일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일단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고 상봉역에서 택시를 잡던지 버스를 타던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무척 엄하셨고 이미 통금은 간당간당했기에 부모님한테 와달라는 소리는 차마 할수가 없었다.
상봉역에 일단 도착은 했는데, 그때 역 폐쇄시간이니까 빨리 나가달라고 하면서 역무원들이 막 사람들을 내보냈다.
그 때 아직 나는 술이 덜 깬 상태라서 잘 보지도 않고 그냥 사람들 나가는 출구로 나갔다.
나와보니 단독 주택들과 빌라가 많은 주택가였다.
길을 좀 걷다보니 지하철에서 나온 사람들은 하나둘씩 주택가로 들어갔다.
왼쪽은 지하철 철길? 암튼 방음벽이 세워져 있었고 오른쪽은 그냥 쭉 주택가였다.
그때 정말 노답이었던 게 핸드폰 배터리는 거의 꺼질락말락한 상태였고, 이미 데이터를 다 써서 인터넷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나가야되는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설상 가상으로 거지같았던 핸드폰 요금제 때문에 데이터를 다 쓰면 전화도 쓸 수 없었고, 오로지 문자만으로 연락이 가능했다.
(이 부분은 내가 정말 멍청했다. 뼈저리게 후회하는 부분.)
술기운을 빌린 패기로 일단 직진하다보면 큰 길이 나오고 택시 잡으면 되겠다~ 이런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하는 소리였는데, 워낙 주택가의 밤은 조용했길래 유난히 크게 들렸다. 처음에는 그냥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근데 계속 신경쓰여서 좀 빨리 걸으려고 발걸음을 빨리 했는데,
발자국 소리도 똑같이 빨라졌다.
당황한 나는 우연이겠지~하면서 더 빨리 걸었는데, 뒤의 발자국 소리도 더 빨라졌다.
슬슬 무서워졌던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볼록 거울을 보았는데, (그 거리에 있는 시야 넓혀주는 거울)
내 뒤로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내 속도에 보조를 맞추면서.
그 때 술이 완전히 깼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바로 신고를 하거나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어야 됐지만,
일단 핸드폰이 문자밖에 안됐고 그때 너무 당황했고 무서웠던 터라 그럴 정신이 정말 없었다.
그래서 일단 이 곳을 빠져나가려고 계속 빨리 걸었다.
근데 계속 걸었는데 이 길이 끝나고 큰 길이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고.
거의 울기 직전이었던 나는 걸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해보았다.
나는 잘뛰는 편도 아니고 체력도 약해서 섣불리 뛰었다간 바로 붙잡힐 것 같았다.
소리를 지를까도 생각했는데, 소리를 지른다고 해도 이미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이 나와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 길은 ㅈ같이 엄청 길었다. 계속계속 긴장감 속에 걷던 나는 기진맥진할 지경이 되었다.
그 남자는 정말 싸이코 같았던게, 내가 분명히 지친 걸 봤을 텐데도 내 속도에 보조를 맞췄다.
아마 나를 끝까지 몰아붙인 후 잡으려고 했던 거겠지.
그 때, 내 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어두운 불빛의 지하보도였다.
나에게는 그 때, 3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1. 계속 끝까지 직진한다.
2. 무엇이 있는지 모른 채 지하보도로 들어간다.
3. 오른쪽으로 꺾어서 주택가로 들어간 후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그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아 힘들다 일단 여기까지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