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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이 애인과 만주로 야반도주한 동생 옥희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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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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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썼던 글인데 오늘 이상 시인 생신(9월 23일)에다 슼에 이상 시인 글이 많이 올라와서 감탄하다가 생각나서 다시 올림!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에게는 김옥희라는 여동생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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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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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김운경, 어머니 박세창 여사, 여동생 김옥희)






어느날, 동생 옥희는 애인과 만주로 야만도주를 하게 되고 이상은 동생 옥희에게 산문글 형식으로 편지글을 써 기고하게 됨.


『중앙』 1936년 9월호에 발표된 이 글의 제목은 <동생 옥희 보아라>인데, 부제는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임. 


당시에는 애인과 야반도주를 하는 것이 집안의 수치라고 생각되었을 시절인데, 이상 시인은 그와 같은 태도를 비판하고 세상의 오빠들에게 여동생에게 취해야 할 태도를 말하려 하는듯함.








다음은 이상시인이 동생 옥희에게 쓴 편지글임.





<동생 옥희 보아라 - 세상 오빠들도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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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초하룻날 밤차로 너와 네 연인은 떠나는 것처럼 나한테는 그래놓고 기실은 이튿날 아침차로 가 버렸다. 내가 아무리 이 사회에서 또 우리 가정에서 어른 노릇을 못하는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기로서니 그래도 너희들보다야 어른이다.


'우리 둘이 떨어지기 어렵소이다.' 하고 내게 그야말로 '강담판(强談判)'을 했다면 낸들 또 어쩌랴. 암만 '못한다'고 딱 거절했던 일이라도 어머니나 아버지 몰래 너희 둘 안동시켜서 쾌히 전송(餞送)할 내 딴은 이해도 아량도 있다. 그것을, 나까지 속이고 그랬다는 것을 네 장래의 행복 이외의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네 큰오빠 나로서 꽤 서운히 생각한다.



(중략)



옥희야! 내게만은 아무런 불안한 생각도 가지지 마라!


다만 청천벽력처럼 너를 잃어버리신 어머니 아버지께는 마음으로 잘못했습니다고 사죄하여라.


나 역(亦) 집을 나가야겠다. 열두 해 전 중학을 나오던 열여섯 살 때부터 오늘까지 이 허망한 욕심은 변함이 없다.


작은오빠는 어디로 또 갔는지 들어오지 않는다.


너는 국경을 넘어 지금은 이역(異域)의 인(人)이다.


우리 삼 남매는 모조리 어버이 공경할 줄 모르는 불효자식들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갔다 와야 한다. 갔다 비록 못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


너는 네 자신을 위하여서도 또 네 애인을 위하여서도 옳은 일을 하였다. 열두 해를 두고 벼르나 남의 맞자식 된 은애(恩愛)의 정에 이끌려선지 내 위인(爲人)이 변변치 못해 그랬든지 지금껏 이 땅에 머물러 굴욕의 조석(朝夕)을 송영(送迎)하는 내가 지금 차라리 부끄럽기 짝이 없다.


(중략)



삼 남매의 막내둥이로 내가 너무 조숙(早熟)인 데 비해서 너는 응석으로 자라느라고 말하자면 '만숙(晩熟)'이었다. 학교 시대에 인천이나 개성을 선생님께 이끌려가 본 이외에 너는 집 밖으로 십 리를 모른다. 그런 네가 지금 국경을 넘어서 가 있구나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난다.


어린애로만 생각하던 네가 어느 틈에 그런 엄청난 어른이 되었누.


부모들도 제 따님들을 옛날 당신네들이 자라나던 시절 따님 대접하듯 했다가는 엉뚱하게 혼이 나실 시대가 왔다. 오빠들이 어림없이 동생을 허명무실(虛名無實)하게 '취급'했다가는 코 떼일 시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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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기왕 나갔다. 나갔으니 집의 일에 연연하지 말고 너희들이 부끄럽지 않은 성공을 향하여 전심(專心)을 써라. 삼 년 아니라 십 년이라도 좋다. 패잔한 꼴이거든 그 벌판에서 개밥이 되더라도 다시 고토(故土)를 밟을 생각을 마라.


나도 한 번은 나가야겠다. 이 흙을 굳게 지켜야 할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직책과 나가야 할 직책과는 스스로 다를 줄 안다. 네가 나갔고 작은오빠가 나가고 또 내가 나가버린다면 늙으신 부모는 누가 지키느냐고? 염려 마라. 그것은 맏자식 된 내 일이니 내가 어떻게라도 하마. 해서 안 되면―. 혁혁한 장래를 위하여 불행한 과거가 희생되었달 뿐이겠다.



(중략)


이런 것 저런 것을 비판 못하시는 부모는 그저 별안간 네가 없어졌대서 눈물이 비 오듯 하시더라. 그것을 내가 "아 왜들 이리 야단이십니까. 아 죽어 나갔단 말입니까." 이렇게 큰소리를 해 가면서 무마시켜 드리기는 했으나 나 역 한 삼 년 너를 못 보겠구나 생각을 하니 갑자기 네가 그리웠다. 형제의 우애는 떨어져봐야 아는 것이던가.



한 삼 년 나도 공부하마. 그래서 이 '노말'하지 못한 생활의 굴욕에서 탈출해야겠다. 그때 서로 활발한 낯으로 만나자꾸나.


너도 아무쪼록 성공해서 하루라도 속히 고향으로 돌아오너라.


그야 너는 여자니까 아무 때 나가도 우리 집안에서 나가기는 해야 할 사람이지만 일이 너무 그렇게 급하게 되어 놓아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놀라셨다 뿐이지, 나야 어떻겠니.


하여간 이번 너의 일 때문에 내가 깨달은 바 많다. 나도 정신 차리마.



원래가 포유지질(蒲柳之質)로 대륙의 혹독한 기후에 족히 견뎌낼는지 근심스럽구나. 특히 몸조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같은 가난한 계급은 이 몸뚱이 하나가 유일 최후의 자산이니라.


편지하여라.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이 글이 실리거든 『중앙』 한 권 사 보내 주마. K와 같이 읽고 이 큰오빠 이야기를 더 잘하여 두어라.


축복한다.


내가 화가를 꿈꾸던 시절 하루 오 전 받고 '모델' 노릇 하여 준 옥희, 방탕불효(放蕩不孝)한 이 큰오빠의 단 하나 이해자(理解者)인 옥희, 이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서 그 애인과 함께 만리 이역 사람이 된 옥희, 네 장래를 축복한다.



이틀이나 걸렸다. 쓴 이 글이 두서를 잡기가 어려울 줄 아나 세상의 너 같은 동생을 가진 여러 오빠들에게도 이 글을 읽히고 싶은 마음에 감히 발표한다. 내 충정(衷情)만을 사다오.



닷새 날 아침


너를 사랑하는 큰오빠 쓴다.









무묭이가 가장 감명깊었던 문장은 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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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세상은 넓다. 너를 놀라게 할 일도 많겠거니와 또 배울 것도 많으리라








이후 여동생 옥희님의 인터뷰를 보면, 이상은 다정한 오빠였고, 버릇처럼 부모님을 생각한 효자였다고 함.

전문은 <동생 옥희 보아라> (클릭하면 이동)에서 볼 수 있음.




출처: 서울신문 '사람들은 몰랐다… 든든한 장남, 우리 오빠 ‘이상’'

연합뉴스 '천재 작가 이상' 아닌 인간 김해경을 회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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