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방용국 에세이에 실린 비에이피 소송 이야기
31,132 239
2019.09.26 11:12
31,132 239
계약이 끝난 다음 날, 눈을 떴다. 세상이 대단하게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바뀌었다. 아, 오로지 나를 위해서 그 시간을 열심히 산 보람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는 거고, 나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모두가 나의 변화와 깨달음을 기쁘게 생각해주어서 고마웠다.
다들 같은 말로 새로 맞은 아침을 축하해주었다.
"얼굴 좋아졌네."

지난 8년여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보니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특별히 미운 사람도 없다. 주변에서는 왜 가진 게 없냐고 묻지만, 그걸 다 챙기느니 차라리 마음 편한 빈 지갑이 낫다. 이가 갈릴 만큼 원수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더 이상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싫어하는 사람을 보지 않고, 먹기 싫은 것을 먹지 않을 권리가 돈보다 더 귀중하다는것을 이제는 안다.




----



돈이 없다고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다. 그런데 소송에는 돈이 많이 들었다. 정산을 받은 게 없었기 때문에 일단 수집한 운동화들을 팔아서 비용을 댔다. 당시 개봉동 본가에서 지내다가, 고등학교때 신문 배달을 하던 곳을 다시 찾아갔다. 사장님은 내가 연예인이 된 걸 알고 계셨다.
"아니, 넌 왜 다시 이걸 하려고 하냐?"
"그냥 운동 삼아서요. 요즘 쉬거든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할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신문 배달을 했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창피하지 않아서 신기하다.
고마운 일이다.
괴로워하면서도 그 시간을 버틴 나 자신과,
용돈을 주면서 응원해주던 형들에게,
일도 없이 집에 있는 나의 편을 들어주던 가족들에게
모두 고맙다.





----




우리 집은 가난했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일을 해봤다. 학비를 모두 내가 벌어서 냈기 때문에 정말로 갖고 싶은 걸 가져본 적이 드물었다.

가수 활동을 하고 나서 저작권 수익이 들어왔을 때 난생 처음으로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샀다. 나이키 조던이었다. 드디어 갖고 싶은 것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새벽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남들이 기다려서 산 것을 내가 그들에게 더 비싼 값을 주고 샀다. 리셀은 나도 나만의 것을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안도와 자신감의 증거였다. 그렇게 모은 운동화들을 애지중지 아꼈고, 한 번도 신지 않은 것들이 넘쳐났다. 유일하게 내가 나를 위해 사치스러운 일을 벌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많던 운동화는 지금 나에게 없다. 발이 자랐거나, 흥미가 떨어져서는 아니고, 소송 비용이 필요해서 모두 팔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물건에 대한 욕심은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있다가도 없는 것들이다.





----




내가 나를,
조금 더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나의 몸과 마음을 좀 더 아껴주었으면 좋겠다.

항상 누군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보세요."
하지만 앞과 뒤만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




얼마나 더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어디까지 계속 가야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시간동안
다른 아이돌 그룹과는 조금 다른 일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어른들이 나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오셨고,
살고 계신다는 걸 안다.
그걸 보면 시간과 삶에 대해 잘 몰라야만
오래, 제대로 살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방용국 포토 에세이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목록 스크랩 (0)
댓글 23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영화이벤트]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예매권 증정 이벤트 345 04.24 44,937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592,946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3,052,887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3,849,33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329,632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350,73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3 21.08.23 3,422,298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7 20.09.29 2,264,061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46 20.05.17 2,976,042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3 20.04.30 3,545,55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글쓰기 권한 포인트 상향 조정) 1236 18.08.31 7,914,025
모든 공지 확인하기()
2393300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만 운영하는 치즈냥 식당입니다~ 05:33 24
2393299 유머 🐱어서오세요 오전에도 운영하는 바둑냥 식당 입니다~ 1 05:20 69
2393298 이슈 민희진이 아트디렉션 맡은 슈퍼주니어 그 앨범 9 05:14 1,251
2393297 유머 3살 아기의 성대모사 ㄷㄷㄷ.ytb 1 05:14 186
2393296 이슈 씨네21 별점 범죄도시 시리즈 중 최하점 받은 범죄도시4 5 05:10 494
2393295 이슈 진라면 매운맛 vs 진라면 순한맛 10 05:05 382
2393294 이슈 역대급 가스라이팅....jpg 15 05:02 1,059
2393293 유머 레전드 독기 가득한 아이돌ㄷㄷㄷ 3 05:00 952
2393292 이슈 결말 별로라는 얘기 1도 못 봤던 드라마.jpg 8 04:58 1,274
2393291 유머 새벽에 보면 엄청 추워지는 괴담 및 소름돋는 썰 모음 167편 3 04:44 286
2393290 기사/뉴스 기자회견 직후 완판 기록한 민희진 '초록 티셔츠'... 어떤 브랜드길래? 4 04:40 1,294
2393289 기사/뉴스 채은정 “핑클 이효리 자리로 데뷔 준비..녹음하다 욕해서 쫓겨났다”[Oh!쎈 리뷰] 13 04:33 1,195
2393288 이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jpg 2 04:20 2,137
2393287 이슈 옛날이랑 똑같이 사진찍기 챌린지 2 04:19 589
2393286 기사/뉴스 인천 송도서 루이비통 가방 들고 튄 30대 여성 잡혔다 2 04:15 1,662
2393285 이슈 게임 회사 M&A 담당자가 본 민희진-하이브 사건의 흐름 68 03:46 5,598
2393284 유머 도경수 불금취소사건.x 17 03:38 1,398
2393283 이슈 3대 기획사의 조금 특별한 아티스트들.jpg 14 03:11 5,361
2393282 이슈 뭔가 신기한 에스파 Drama 인이어 체험하기.ytb 20 03:09 2,170
2393281 이슈 아무리봐도 작곡가가 단단히 미친거 같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톡식 샘플링 103 03:01 11,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