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취재파일] "너네 나라로 꺼지라고…" 까칠했던 13살 리아가 울었다
68,644 866
2022.01.28 03:42
68,644 866

미등록 이주 아동, 너무 일찍 '혐오'를 깨닫다



곱창밴드에 작은 귀걸이. BTS 사진이 있는 휴대전화 케이스.

한창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나이 13살 리아(가명). 리아는 몽골에서 태어나 6살 때 몽골 국적의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입국 당시에는 2살 터울의 동생 1명이 있었는데 한국에 체류하면서 동생 2명이 더 생겼습니다. 리아 포함 4명이 모두 행정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미등록 이주 아동' 신분입니다. 리아의 셋째·넷째 동생은 '미등록 이주 아동' 가운데서도 '국내 출생' 사례인 반면, 리아와 둘째 동생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른바 '중도 입국' 사례라고도 불립니다.
 


"안녕하세요."

사춘기 어딘가에 있을 법한 말투. 엄마와 함께 만난 리아의 첫 인상은 약간은 '까칠'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듯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것에는 이미 동의했기 때문에 기자를 경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속마음을 말해주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질문을 하다가 실수하게 될까 조심스러운 마음 반, 인터뷰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 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대화는 가벼운 소재들로 시작됐습니다. 한국말과 몽골말 중 어느 쪽이 편하냐는 질문에 리아는 "둘 다 비슷 비슷해요"라고 '시크하게' 답했습니다. 리아의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리아와 달리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말하는 것 뿐 아니라 듣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시크한' 리아는 익숙한 듯 엄마의 통역 역할을 했습니다.
 
 

원래 이 인터뷰는 미등록 이주 아동의 치료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인터뷰는 서울 중랑구에 있는 민간형 공공병원 녹색병원에서 진행됐습니다. 이들 모녀는 병원의 미등록 이주 아동 의료비 지원 사업을 통해 병원비를 일부 지원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들, 자녀들이 심하게 아픈 경험이 있었는지, 또 아팠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리아는 기자의 질문을 엄마에게 전달했고, 엄마의 답변을 다시 기자에게 전달했습니다.

이번엔 리아에게 물었습니다. 학생들에게 흔히 하는 질문, 이를테면 학교생활은 재미있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말입니다. 리아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솔직히 한국 학교에는 친구가 없어요"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친구가 많지 않아도 크게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국 친구들과 다른 점이 있고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고 넘긴다는 겁니다. 그럼 몽골 출신이라서 불이익을 받거나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리아는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뗐습니다.

"한 아줌마가, 외국인이면… 지네 나라로… 꺼지라고."

리아의 말을 듣다가 잠시 멈칫했습니다.

까칠한 사춘기 소녀가 갑자기 울먹였기 때문입니다. 엄마 옆에서 내내 '쿨하게' 아팠던 경험을 말하고, 통역하던 모습을 본 터라 울먹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3학년 때요."

4년 전, 아직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았을 땝니다. 여느 날처럼 놀이터에서 몽골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아주머니는 리아와 친구들을 향해 몽골인이면 너희 나라로 꺼지라고 하며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리아는 이날 친구들과 함께 울면서 "굳이 우리한테 이렇게 심한 말을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리아 엄마는 리아의 인터뷰 중에도 옆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기자 질문에 답을 하던 딸이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자 어머니는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몽골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리아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울먹이던 리아는 엄마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잠시 뒤, 그저 덤덤하게 짧은 몇 마디의 몽골말을 했을 뿐입니다.

"엄마, 아빠한테는 말 못했어요. 엄마 아빠가 상처받으니까…."

4년 전 일을 꺼내기만 해도 여전히 눈물이 터지는 어린 소녀이지만, 동시에 부모님께 전할 말과 전하지 않을 말을 가리느라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그런 리아를 지긋이 바라봤습니다. 굳이 말로 전하지 않아도 모녀간에 공유되는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리아는 차별당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면서도 당차게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인데 차별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리아의 '까칠함'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리아가, 또 리아의 가족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련한 작은 방패가 아닐까. 리아는 이미 부모님보다 한국을 더 깊이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언어를 잘한다는 것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진 '혐오'의 민낯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리아는 또래 친구들처럼 BTS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떡볶이를 잘 먹지만 특히 매운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자세히 읽으면 이해가 되고 그래서 문제도 답이 바로 나오는 국어'입니다.



리아를 비롯해 미등록 이주 아동들이 겪는 일상의 차별과 혐오는 SBS 8뉴스에서도 보도하였습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944724

목록 스크랩 (0)
댓글 866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에스쁘아 x 더쿠] 바르면 기분 좋은 도파민 컬러 블러립 에스쁘아 <노웨어 립스틱 볼륨매트> 체험 이벤트 836 04.20 65,764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496,807
공지 공지접기 기능 개선안내 [📢4월 1일 부로 공지 접힘 기능의 공지 읽음 여부 저장방식이 변경되어서 새로 읽어줘야 접힙니다.📢] 23.11.01 2,952,623
공지 비밀번호 초기화 관련 안내 23.06.25 3,755,113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0.04.29 20,241,513
공지 성별관련 공지 (언급금지단어 필수!! 확인) 16.05.21 21,229,693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43 21.08.23 3,399,76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16 20.09.29 2,216,033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339 20.05.17 2,945,54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53 20.04.30 3,498,55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글쓰기 권한 포인트 상향 조정) 1236 18.08.31 7,864,72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390416 이슈 오늘도 K뷰티 즐긴 린가드.jpg 23:02 48
2390415 이슈 중국 칭따오 맥주에 이은 프랑스 1664 블랑 맥주 근황 8 23:01 523
2390414 이슈 트위터에서 알티 탄 적나라한 출산 장면 4 23:00 1,015
2390413 이슈 헬스 트레이너한테 개큰수작부리는 회원.jpg 29 22:57 2,256
2390412 이슈 15년 전 오늘 발매된_ "Boo" 22:55 118
2390411 기사/뉴스 이광수, 스타쉽에서 '끼워팔기' 했나…유재석 "요즘 이런 거 절대 안 돼"('틈만 나면') 11 22:55 1,267
2390410 이슈 조회수 500만회 돌파한 데이식스 킬링보이스 14 22:55 382
2390409 기사/뉴스 서울대병원 '소아 투석' 의사 전원 사직서…환자들에 "병원 옮기세요" 8 22:54 730
2390408 이슈 방탄소년단 지민과 콜라보 해보고 싶다는 박정현 8 22:54 262
2390407 이슈 세븐틴 아낀다 지금으로 치면 05년생이 작사작곡해서 데뷔곡으로 들고나온거라는 사실에 기함...twt 13 22:52 1,105
2390406 이슈 [선재업고튀어] 19살 류선재vs34살 류선재 65 22:50 3,719
2390405 이슈 엘즈업 KCON JAPAN 2024 불참 공지 12 22:50 1,804
2390404 이슈 눈물의여왕 그레이스 과거 스카이캐슬과 오징어게임 출연 시절 21 22:49 1,795
2390403 이슈 펜타곤 우석한테 아버지께서 직접 만들어주셨다는 선물 11 22:49 1,009
2390402 이슈 집에 오자마자 샤워하는 습관 들이려고 했는데... 30 22:49 4,537
2390401 정보 삼성서울병원에서 내놓은 한국인 건강한 체중 8 22:49 1,745
2390400 유머 밀레니엄 감성 대미친 선업튀 상상씬.mp4 12 22:49 862
2390399 이슈 사놓으면 만족도 90퍼 이상이라는 가전.jpg 27 22:46 3,466
2390398 기사/뉴스 시베리아호랑이 ‘태백’ 숨져…서울대공원서 2년 새 4마리 사망 25 22:46 1,376
2390397 유머 쌍둥바오🐼🐼 죽순 처음 선물받은 날 5 22:44 1,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