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승만의 '독립정신' 초판(1910), '독립정신' 2쇄(1917), 박은식 '한국통사'(1917),
장도빈 '대원군과 명성황후'(1927), '별건곤' 사진 부록(1932)에 각각 실린 명성황후 사진들.
- 해당 사진은 이승만의 저서 '독립정신'에 명성황후로 처음 수록됨
- 사진이 1910년 최초로 알려진 뒤, 20년 넘는 기간동안은 이렇다 할 반론이 없이 명성황후로 통용됨
(남편 고종, 아들 순종, 며느리 윤비 등이 살아있던 시기)
- 7년 뒤, 2쇄본이 나오면서 잘못 소개된 부분들을 수정했으나 해당 사진은 동일하게 게재
- 1932년 잡지 '별건곤'에서 부록으로 제작한 '근대조선의 인물화보'에서도 해당 사진을 명성황후로 수록
(40여명의 저명인사 사진을 수록한 이 부록은 전봉준이 체포될 당시 사진까지 구해 실었고, 사진을 구하지 못한 인물은 편지를 화보에 실었음)
- 명성황후를 만난 적 있는 민영찬이 자신의 회고담에서 해당 사진을 명성황후로 수록함
+ '사진 속 인물의 의상이 황후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어느 노상궁이 사진 속 인물이 황후가 아니라고 증언했다'는 반론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