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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미스테리 내 연인이 사는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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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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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인이 사는 화분


 

나오는 사람

남자 29, 여자와는 연인 관계. 살아있는 그녀의 살아있는 목과 동거중이다.

여자 27, 토막살인 당해 목만 남은 상태. 남자친구의 자취방에서 동거생활 중. 죽은 지 내일이면 꼭 49일이 된다.

 

현재. 1231일 저녁 ~ 110:00

장소 남자의 자취방

무대 남자의 자취방이지만, 생각보다 깔끔하다. 여자가 같이 사는 방이라는 느낌이 강했으면 좋겠다. 가습기가 계속 틀어져 있고, 수은 온도계가 벽에 붙어있다. 정면의 벽에 숫자만 크게 적힌 달력이 붙어있고, 숫자들엔 빨간 사선들이 그어져 있다. 방의 가운데에 데스크가 있고, 그 위에 사람 머리만한 무언가가 검은 천에 싸여있다. 그 옆에는 노란 화초 영양제 박스가 쌓여있다. 또한 무대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 보인다.

 

 

1

 

(남자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옴)

 

남자 조사 받고 왔어.

 

( 남자는 문을 조심스레 닫으며 데스크에 다가가 검은 천을 걷는다. 검은 천 안에는 여자의 머리가 화분에 심어져있다. 마네킹의 목으로 설정해서 일 인극으로 만들 수도 있다. 데스크에 구멍을 뚫어서 그 안에 배우가 목을 집어넣어도 좋다.)

 

여자 (천이 걷히면, 크게 숨을 뱉으며) 콩나물이 된 기분이야!

 

남자 클래식이라도 틀 걸 그랬나? 하루 종일 잘 참았어. 배고프지?

 

여자 오빠가 더 고생했지. 범인은 윤곽이 잡힌대?

 

남자 아직도 진척된 게 없나봐. 목이 결정적인 단서이니. (데스크에 놓인 노란 영양제를 꺼내 여자의 목이 있는 화분에 꽂으며) 너희 부모님, 내일이 사십 구제인데 아직 목도 못 찾으셨으니...

 

(약간의 침묵)

 

여자 내일이면 벌써. 이제 나 가도 되는 건가?

 

남자 (뒤를 힐끔거리며 사선이 그어진 달력을 바라보다 농담을 던지듯) 청승맞은 불치병 드라마는 넣어둬. 내일 설에 먹을 떡국 떡이나 불려놔야겠다.

 

여자 (영양제를 소화중인 듯 꿀꺽대며) 부모님도 봤겠구나.

 

남자 많이 덤덤해 지신 거 같았어. 나를 보고 웃으시는 모습이 꼭 지하철에 있는 즉석 사진기로 증명사진을 찍는 모습 같이 어색했지만.

여자 (중얼거리며) ...그래도 잘 참아서 다행이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여주긴 싫어.

 

남자 몇 번이나 물으시더라. 너랑 원수진 사람 있냐고. (머뭇거리며) 몇 번째 묻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너, 범인 얼굴 기억 안나?

 

여자 . 무섭고 아파서 눈을 한 번도 못 떴어. 정신을 차렸을 땐 오빠네 집 앞이었고.

 

남자 우리 집 앞에다가 너를 데려다 놓은 걸 보면, 측근이겠지?

 

여자 경찰에게 말하진 마. 괜히 범인으로 지목 될 지도 몰라. 얼굴과 목엔 이제 오빠의 지문만 잔뜩 남아있어.

 

남자 (뒤돌아 쓰레기통에 영양제 박스를 구겨 넣으며) 범인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여자 괜찮아. 오빠가 원하는 만큼 나도 범인이 붙잡히지 않길 바라고 있어. 잡혀서 목이 있는 위치를 말하게 되면, 모든 게 끝장이야.

 

남자 지켜주지 못한 사람과 범인은 다를 게 없지.

 

여자 바보 같은 소리 마. 죽인 사람보다 괴로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남자 (여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무대 뒤쪽으로 걸어가 달력을 뜯곤 1월 달력의 숫자 1에 빨간 동그라미를 치며) 모르지.

 

여자 (코를 훌쩍이며) 뭐라고? 오빠! 흙이 축축해지고 있어. 저번처럼 애벌레가 생기지 않게 가습기 좀 꺼 줘.

 

남자 (가습기의 전원 차단버튼을 찾아 천천히 누르며, 수증기가 멈추면) 습도랑 온도 조절이 쉽지 않네. ? 뒤에서 보니 머리가 많이 자랐다.

 

여자 오빠가 잘 먹인 탓이지. 영양분이 다 뿌리로 가나봐.

 

남자 머리 잘라줄까?

 

여자 실연당한 여자처럼 울면서 머리 자르고 싶진 않아. 아니... 머리는 이제 그만 잘리고 싶어.

 

(암전)

 

2

 

( 라이트가 중앙의 데스크에 집중. 데스크 위에는 가위와 물뿌리개가 올려 있다. 남자는 물뿌리개를 화초에 물을 주듯 여자의 머리에 칙칙 뿌린다. 노란색계통이지만 음산한 느낌의 조명)

 

남자 장미를 기르는 어린 왕자가 된 기분이야.

 

여자 (무표정한 얼굴로) 언제나 그래왔잖아.

 

남자 (못 들은 듯) 넌 단발이 어울려.

(그러다 못 참겠다는 듯 남자는 관객을 등지고 여자의 목에 다가가 키스한다, 여자는 눈을 뜬 채로, 미동하나 없는 표정. 키스가 끝난 뒤 남자는 만족한 듯 콧노래를 부르며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머리를 자른다.)

 

여자 (눈을 깜빡이지 않은 채로) 좋았어?

 

 

남자 대답할 필요도 없지.

 

(싹둑싹둑 머리 자르는 소리가 괘종시계 소리처럼 과장되어 들리다가 멈춘다)

! 미안! 많이 아프지?

 

여자 ?

 

남자 목에 가위가 스쳐 피가 흐르잖아.

 

여자 정말?

 

남자 연고 가지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

 

여자 괜찮아. 그보다 십분 후면 자정이야.

 

남자 (가위를 무심결에 다시 들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여자 뭐 하나 물어도 되?

 

남자 뭐든 물어봐. (가위를 내려놓고 연고를 서랍에서 꺼내며) 왜 이런 실수를 했냐고 물어도 면목 없어.

 

여자 (눈을 감으며) 왜 날 죽였어?

 

(약간의 침묵)

 

남자 (검지 위에 연고를 짜며) 거짓말쟁이. (목에다가 연고를 꼼꼼히 바르며) 눈을 감고 있었다 했잖아.

 

여자 따지고 싶은 건 아냐. 그저 알고 싶어.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감각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

 

남자 (서랍에서 대일 밴드를 찾아 꺼내며) 너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이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적어도 나에겐 네 목과 살았던 사 십 구일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어.

 

여자 정말 그렇다면 하나만 부탁할게. 난 몇 분 후면 죽어. 하지만 자수하지는 마. 평생 동안 날 죽인 걸 숨긴 채 살아줘. 사람들이 느낄 배신감은 내 몫이면 족해.

 

남자 (밴드를 목에다가 붙이곤 그곳에 가볍게 키스하며) 그거 알아? 이래서 좋아했단 걸. 넌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지. 애인인 나에게도 물론이야. 똑같이. 너희 부모님들이 말하시더라. 네가 죽은 후, 자신들도 알지 못할 정도의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와 울고 갔다고. 하지만 넌 알아야했어.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 다른 것들에는 차별을 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이게 내가 널 미워했던 이유기도 하고.

 

여자 사랑을 한다는 건 결국 차별이란 얘기야?

 

남자 넌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게 더 옳았을지도 몰라. (화분을 들어보려는 시늉을 하며) 내일 경찰에서 이 화분을 들고 자수하러 갈 생각이야.

여자 (격앙된 어조로) 너야 말로 거짓말쟁이 아냐? 장미처럼 날 대하겠다고 했지만, 사지를 잘라놓은 해바라기를 기른거야.

 

남자 (화분에 손을 떼곤, 흙을 털며) 하지만 사기꾼은 아니지. 나만 사랑한다고 했지만, 결국 남들에게 평강공주라는 닉네임을 받기위해 계산적으로 행동한 건 아니야. 난 너를 죽인 후, 직장까지 포기했어. 가족들도 만나지 않아. 모든 걸 포기했다구.

 

여자 동정한 건 아니었어. 하지만 이젠 아니야. 왜 나 같은 애한테 인생을 걸어? 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못 되.

 

남자 착한 척 그만해. 나같이 구질구질한 놈, 아니 살인자랑 살 정도면 더한 호칭이 욕심나나?

 

여자 아니. 모두에게 착한 사람들은 결국 자신한테는 제일 소홀한 법이야. 나에겐 사 십 구일이 그걸 깨닫는 과정이었어. 나에게도 행복한 시간이었지. 죽은 뒤 비로소 오빠를 이해하게 되었어.

 

남자 니가 뭔데 나를 용서해? 내가 너를..!

 

여자 (눈을 파르르 떨며)...할게.

 

남자 (고개를 저으며) 아니! 난 아직 용서 못했어. 그러니 제발!

 

(여자가 눈을 채 감지 못한 채, 미동이 없음. 남자는 우두커니 있다, 관객석을 바라보며 그녀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려 감겨준다. 그리곤 1막에 썼던 검은 천을 덮어준다. 암전. )

 

3

 

(방의 가운데에 있던 데스크가 빈 상태로 구석에 밀려나있다. 이제 냉장고가 가운데에 위치. 냉장고와 가운데에 서 있는 남자에게로 쌍 라이트, 남자의 독백)

 

모든 게 끝났다 구요? 아니요. 11. 남들이 똑같이 시작을 말하는 만큼, 나조차 마찬가지일겁니다.

 

(냉장고에서 사람 머리만한 사이즈로 묶여있는 검은 봉다리를 집어넣으며)

그녀의 머리는 이제 이 안에서 영원히 함께 하겠지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녀는 언제까지, 나와 함께할 거니까요.

(냉장고에서 작은 검정 봉투를 풀러 화분에 심는다. 삽으로 정성껏 묻는 남자. 화분에는 피가 묻은 손목이 심어지게 된다.)

아직까지 내게는 남은 그녀들이 많아요. ...이제 녹이기 위해 온도를 높여야겠죠?

(벽에 붙은 보일러 버튼을 길게 누르며)

조금 있다가 봐! 달링!

(남자가 문을 닫고 나가고, 남자 쪽 조명은 꺼진다. 데스크에 조명 집중. 손목이 심어진 화분의 손목이 파르르 움직이면서 엔딩.)











-

무묭이가 쓴 짧은 극본이야. 읽어줘서 고마워! -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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