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좀 있는 덬인데
아주 어릴 때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때는 보일러가 연탄 보일러였음
어무니 아부지 두분 다 대학 시간 강사 일하실 때였는데 엄마는 아침 일찍 보일러 때놓고 나가시고
아빠는 쉬는 날인지 늦잠을 주무시고 계셨고 나도 자고 있었던 거 같음
아마 유치원도 안가던 때였는지 다섯살쯤 됐으려나 아무튼
보일러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거야 뭔가 드드드드하는?
너무 어리니까 보일러실 가볼 용기도 안나고 아빠는 너무 깊게 주무시고
근데 또 아빠를 깨울 용기가 없었음 어릴 때 아빠가 좀 무서운 분이셔서
괜히 깨웠다고 야단맞을 거 같아서 이불 속에 들어가서
그냥 그 드드드 소리 들으면서 어떡하지 아빠 왜 안깨지 하며 아빠 얼굴만 보고 있었던 거 같음
근데 그 소리가 좀 더커졌고 어린 상상력에 금방이라도 터지는거 아닌가 싶었고 정말 큰일 날거 같았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빠를 깨우기로 맘먹고 소심하게 흔들면서 아빠를 불렀음
간신히 눈뜬 아빠가 왜그러냐고 물어서 '보일러가 이상해요...'라고 말했고 아빠도 그와 동시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나봄
보일러실로 아빠가 가서 문을 여니까 연기 같은게 흘러나왔고 아빠도 놀랐는지 허둥지둥하면서 어케어케 보일러를 껐나봐
나는 그냥 방에 누워서 노심초사 그걸 보고 있었고
그와중에도 나는 주무시는거 깨웠다고 혼나는거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지만
간신히 상황 수습하고 나서 아빠도 넋나간 표정으로 너 아니면 큰일날뻔했다~뭐 이런 식으로 말하셨던 거 같음
결과적으로 큰일은 없었지만 그대로 놔뒀으면 연탄 가스가 흘러나왔거나 불이 붙거나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좀 무서워
돌이켜보면 그당시엔 그런 사고들이 되게 흔하게 뉴스에 나왔던 것도 같고
몇십년 흘렀는데도 가끔 생각난다 굉음이 나는 보일러실 문과 곤히 주무시는 아빠 얼굴을 번갈아보며 고민했던 그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