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침 저녁으로 부는 차가워지는 바람에
아 이제 가을이구나 느끼기에는
낮이 너무 덥지 않나 싶은 요즘.
감나무에 주렁주렁 맺힌 감다발을 보고서야
아 가을이군 하는
그런 요즘이야.
내게 9월은 사랑초의 계절이었어.
깜빡 잊고 있던 구근보관함을 열어보니
잠자고 있던 구근이 심지 않으면 이대로 자라겠다고
협박 하는 것처럼 뿌리를 내고 있었어.
올해는 대여섯 가지의 사랑초를 심었고 모두 깨어나서
하나둘 꽃피는 중.
늦은 여름의 기억은 칼라디움이겠지.
작년 구근을 대부분 잃어버려서
보이는 것만 심었는데 잘 커줘서 다행이야.
늦게 심었으니 다른 때보다는 조금 늦게 수확할 예정.
예년보다 올해가 유난히 덥기도 하니까.
여름동안 녹지 않고 많이 큰 제라늄 엑스칼리버.
정말 느리지만... 그래도 예쁘니까.
가을볕에 물들라고 창가에 더 바짝 붙여줬어.
6개월을 기다린 앵초 꽃이 드디어 피는 걸까.
드물게 가을에도 꽃이 핀다고는 들었는데 과연 어찌될까
매일 들여다보는 무늬앵초.
다육이 못 키우는 내게도
잘 커주는 홍미인도 벌크업했지.
다육이 분갈이는 어쩐지 무서워서 보류 중인데
조만간 해주긴 해야할 거 같아.
물 한 번 말렸던 에버로즈 가든에버스케이프는
2주동안 케어해줬더니 다시 컨디션 회복 중.
얼른 모체처럼 예쁜 꽃 보여주길.
하루 하루 기다리는 중이야.
실습 적응 완벽히 한 베고니아 차요.
이제 서서히 벌크업하려고 준비 중,
언제봐도 비현실적인 베고니아 룩킹글라스.
은빛의 잎사귀가 빛을 반사할 때마다
이게 왜 현실에 있지... 로판이나 이런 데 나와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제 한 손으로 찍기 버거운
베고니아 스노우캡.
순백색의 눈이 쌓인 잎사귀 같지.
가을부터 더 잘 자라는 종이라
이번 계절에는 또 얼마나 자랄지 기대 중.
양쪽으로 눈이 터서 풍성하게 자라는
베고니아 마큘라타도 있지.
크게 벌크하는 베고니아들과 달리
작게 시작하고 싶어서 자른
베고니아 코랄리나 드 루체나.
잎장이 워낙 커서 작은 화분에 가둬두니
엔젤윙이라는 애칭하고 더 잘 어울려.
분갈이 몸살과 폭염에 한참 녹더니 다시 자리잡은
칼라데아 퓨전화이트.
까탈 맞아도 예쁘고 그냥 두면... 순해...
바빠서 죽일 뻔 했다가
다시 살리는 중인 러브체인.
창가에 걸어두고 케어 중.
키 맞춰 잘라주고 감상 중인 퍼플프린스.
가을볕에 찐보라색으로 잘 익는 중.
식물이 좋은 이유는
쌓인 시간만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때문이야.
오래 키운 필로덴드론 버럴막스 바리에가타가
요즘 그렇게 예쁠 수 없어.
한동안 얼음이다가 다시 잎내는 알보도.
(근데 너 구멍 수 하나 줄었더라)
이제 들기 힘들지경으로 자란
호마로메나 매기도 그래.
한참 작은 잎만 내더니
적응 끝내고 사이즈 큰 잎들 내기 시작하는
싱고니움 마크로필럼.
실습 적응은 역시 존버가 답이야...
존버 1년 반째...
언젠간 마크로필럼처럼 자라길 기도하는
필로덴드론 플로리다뷰티 바리에가타.
자르길 두려워하던 내게 용기를 줬던 무늬 싱고니움.
고스트에서 수채화같은 산반으로 고르게 돌아오는 중.
흐린 어느 날
약속은 취소하고 집에서 분갈이를 했지.
아끼던 팟에 심은 무늬마란타가 너무 예뻐서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어.
물주기를 늘리니 잎이 부쩍 커진
칼라데아 오르비폴리아.
오르비폴리아라는 우아하다는 말 외에 설명할 길이 없어.
물결치는 잎매와 곡선을 그리는 잎맥과 무늬.
흔둥이 중에 제일 예쁜 건 역시 오르비폴리아라고 생각해.
친구에게 선물 받은 필로덴드론 파라이소베르디.
전에 위시였던 걸 말한 적이 있는데
새심하게 기억하고 있다가 선물해준 거라 감동.
잘 키워서 보답해야지 :)
핑크싱고니움도 예쁘게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어.
가끔 식재해놓고 혼자서 좋아할 때가 있는데
제주애기모람이 자랄 수록 그래.
영롱한 팟에 담아서 나날이 예뻐져.
식물은 안 늘리지만
팟은 늘리는 이상한 식덕질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까먹고 있다가 오픈 1분 전에 친구가 알려줘서
부랴부랴 주문했는데 대충 원하는 건 다 산 듯.
화분을 샀으니 식재를 해봐야지?
만-족
봄의 기쁨을 준비하는 구근의 계절.
창문을 닫을 쯤 심을 요량으로 튤립을 주문했어.
내년에는 어떤 튤립이 창가를 빛내줄지
기대가 커.
9월엔 기력이 없어서 뭐 많이 안 한 줄 알았는데
모아놓고 보니 그래도 식물들이 많은 걸 했네.
고맙고 기특해.
생각해보면 죽을만큼 괴로워도 꽃은 폈어.
긴 겨울 지나고 죽었나 싶을만큼 앙상한 때에
거짓말처럼 싹이 트고 풍성해져.
자기 때를 알고 기다리는 꽃들을 보면
나도 잘 살아있어야지 라는 생각이 퍼뜩 들곤해.
뭘 하든 뭘 하지 않든 말이야.
지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고 여겨져도
저마다의 속도로 움트는 걸꺼야.
그러니 다음에 또 만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