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Eyq-r5hDoY

조선시대의 무과출신 급제자들은 원칙적으로 서북 변경(평안도, 함경도)의 국경지대에서 1년동안 군복무를 해야 했는데, 그것을 부방이라고 한다.
부방은 선조 16년 니탕개의 난을 겪으면서 모든 무과 급제자들에게 부과된 의무였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장교들의 최전방 근무와 성격이 비슷하다.
박계숙 (1569 - 1646)
선조 27년 무과에 급제, 울산 출신 무관
선전관, 훈련원 부정의 관직을 지냄
선조 38년 1605년 10월 17일 집(울산)에서 노복들을 데리고 출발하다 (부임지는 함경도 회령)
노복들을 데리고 갔던 이유는 혼자 들기엔 잡다한 짐들이 너무 많았고
혼자서는 위험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웠으며 (당시 조선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이 허다)
갖가지 수발을 들어줄 자가 필요했기 때문
1605년 10월 21일 경상도 영천에 도착하여 점고를 받게 됨
※ 점고 : 목적지로 가기 전 거주지 도에서 정한 특정 장소에 모여 받아야 하는 것
여기서 초료장(관리에게 해당 군현이나 역에서 숙식 등에 제공을 명하는 명령서)를 나누어 주었음
당시 박계숙과 같이 경상도 지역에서 부방길에 오른 무관들은 총 17명
보통 삼삼오오 무리지어 목적지 근처까지 같이 가는 것이 상례였는데
군관들의 이동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숙식의 해결
하지만 데리고 있는 노복들의 숙식까지 해결해야 했기에 그 양이 만만치 않았음
1605년 10월 27일 문경 관아에 도착
군관들의 숙식은 보통 해당 군관들의 출신지도에서 발급해 준 초료장을 지나가는 관아에 보여주면 그 곳에서 제공해주는 식이었다.
군관 17명과 이들에게 딸린 노복, 그리고 이들을 태우는 말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기에 관아에서는 이들에게 숙식을 내어주길 꺼려했음.
당시 신분별 초료 규정
2품 이상 - 본인 외 6명, 대마 2필, 소마 1필까지 숙식 제공
3품 이하 - 본인 외 4명, 대마, 소마 각 1필까지 숙식 제공
7품 이하 - 본인 외 2명, 대마, 소마 각 1필까지 숙식 제공
무직 - 본인 외 1명, 소마 1필 숙식 제공
하지만 관아에서 규정에 명시된 것도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아 군관들과 마찰을 빚는 일이 허다했다고 함
"먹여줄 생각을 안해 역장을 불러 도리를 따지고 겁도 줘봤으나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1605년 11월 21일 부북일기 中
"가져간 양식이 다 떨어졌고 겨우 사정사정하여 조금 얻어먹었으나 노복과 말은 먹이지 못하였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1605년 11월 28일 부북일기 中
1605년 11월 24일 함경도 안변에 도착 - 37일째
짐이 줄어들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노복들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기에
노복들을 하나 둘 돌려보내다가 종착지에 도착해선 1명만 남기고 돌려보내졌다
1605년 11월 27일 문천에 도착
1606년 1월 11일 출발한지 약 80일만에 목적지인 함경도 회령에 도착

아무리 양반이라도 옛날엔 먹고살기 힘들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