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왕 중에 레오폴드 2세란 놈이 있는데(1835~1909)
당시 벨기에 국왕에 막 오른 레오폴드 2세는 외국에 식민지를 많이 만들어야 부강해진다는 19세기 제국주의의 흐름을 타려고 했음.
그러나 알짜배기 땅은 이미 다른 유럽제국들이 이미 식민지화한 후였기 때문에 거의 황무지였던 콩고에 식민지를 세움.
이때 콩고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이 어땠냐면 콩고지역에 '흑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전 세계적으로 홍보를 함.
흑인들에게는 백인이 없는 너희들만을 위한 땅이 있다는 식으로 권유하고, 각국 정부에도 골치덩이인 흑인 보내주면 국가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거래를 하고 다님.
그렇게 레오폴드 2세는 황무지인 콩고를 문명화시키려는 인도주의적 지도자 이미지를 만들었고 기부금까지 받아가며 콩고는 벨기에의 식민지로 인정받게 됨.
그리고 레오폴드 2세는 콩고에 지옥을 재현시킴.
콩고를 지배하는 과정부터 개판이였는데 콩고를 순회하며 만나는 부족들의 족장들에게 선물을 주며 호감을 얻은 뒤 종이 한장을 내밀며
여기에 부족의 문장이나 글자를 적어달라고 부탁함. 족장들은 글은 몰랐지만, 이방인들이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고 호의적으로 사인을 해주었음.
그런데 그 서류라는게 부족원 전체에 대한 재산, 토지 몰수 및 주권 박탈, 상시 강제노동에 대한 동의서 이였던 것임.
이 수법으로 500명에 달하는 추장들에게 동의서를 받았고 벨기에의 75배 넓이인 콩고는 하루아침에 식민지가 되어버림.
식민지가 된 이후에 잠시 동안은 콩고에 철도건설 및 노예무역 금지 등 좋은 일을 펼쳤으나 이건 전부 수탈을 위한 것이었고
코끼리 상아 판매와 당시 상용화된 신소재인 고무 열풍에 올라타 콩고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함.
당시엔 고무 타이어가 첫 발명되어 수요가 급증했는데, 콩고에는 마침 고무나무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음.
그런데 고무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동원된 것이 주권을 빼앗긴 콩고 주민들이였고,
콩고인들은 극심한 수탈에 배를 굶주리는데 고된 일까지 얻어 죽어 나갔고 이에 벨기에는 극악무도한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함.

고무 생산량을 못 채운 자는 첫번째에 손을 잘라내고, 두번째에는 팔을 잘라냈음. 그리고 세번째로 못 채웠을때는 목을 잘랐음. 그냥 죽였다는 소리.
그리고는 그 사람이 못 채운 만큼 주변 사람에게 할당량을 전가시켰고, 그럼 자기 몫도 겨우 하던 사람들은 바로 미달돼서 손이 잘리고....
이런식으로 잘려나간 손들이 하루에 1300개가 넘었고 나중에는 하나하나 자르기 귀찮으니까 할당량을 미달낸 마을의 주민 전부를 죽여버리는 방식을 취함.
또한 벨기에인들은 심심풀이나 화풀이로 콩고인들을 고문하고 죽이거나 강간하기도 했는데 원주민들은 이에 저항할 수도 없었음.
만약 고무채취를 거절할 경우, 거절한 사람의 가족을 전부 잡아와 아이와 남자는 총살하고 여자는 강간한뒤 똑같이 총살했고
더 크게 가서 시위를 벌이면 바로 최신식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벨기에 정규군이 나타나 무자비한 학살로 반란을 진압했기에 항의도 못 했음.
이 끔찍한 식민지배는 2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3000만명에 달하던 콩고인구는 800만명으로 감소했고
지배과정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식민지에서 주민을 착취하는 걸 당연히 여기던 당시 열강들에서도 미쳤냐고 비난이 쏟아졌음.
옆나라 덴마크 국왕은 '레오폴드 저 새끼가 사람이면 나는 예수다'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고 벨기에 본국에서도 말이 커졌음.
결국 레오폴드 2세는 여론에 밀려 콩고에 대한 권리를 정부에 양도하고 얼마후 병사로 침대에서 생을 마감함.

레오폴드 2세가 침대에서 편히 뒤졌다는 것도 참 화나는 일이지만 더한건 이후 벨기에의 대처임.
콩고에 대한 착취를 팔다리만 안 자르는 수준으로 바꾸었을뿐, 그만둔 것도 아니고
정부차원에서 세계 언론에 로비와 회유로 레오폴드 2세에 대한 좋은 여론을 만드는 한편,
벨기에 본국에서는 '위대한 망각'이라는 운동을 펼쳐 레오폴드 2세에 대한 것을 묻어버리기 시작함.
때문에 현대 벨기에 인들은 레오폴드 2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어떤사람은 자국을 부강하게 하려했던 왕으로 기억하고 있음."
#2. 20세기 초반~ 중반까지 벨기에
https://theqoo.net/square/134942410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81&aid=0002988953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가 아프리카 식민지를 운영하던 시절 혼혈 어린이 2만여명을 벨기에로 납치한 것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세 나라를 식민지로 경영하던 벨기에는 자국민 정착민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메티스 어린이들을 강제로 자국으로 끌고와 카톨릭 기관이나 다른 시설에서 자라게 했다. 그 숫자는 2만여명에 달했다. 대다수 아버지들은 친권을 확인하길 거부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태어난 이들이며 1959년부터 세 식민지가 각자 독립하던 때까지 벨기에로 납치했다.
일부 어린이는 끝내 벨기에 국적을 받아들이지 않아 국적 없이 지냈다.

미셸 총리는 이제는 장성한 납치 피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회 연설을 통해 벨기에가 식민 통치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 만으로 어린이들의 기본 인권을 침해했으며 그들의 정체성을 빼앗아 낙인 찍히게 만들었으며 피붙이들과 강제로 떼어놓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돌아봤다.
그는 “많은 혼혈 어린이들이 벨기에가 더 열리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아이들을 빼앗긴 아프리카 어머니들의 상심에 공감을 보낸다고 밝혔다.
2년 전에도 벨기에 카톨릭계는 자신들의 역할에 잘못이 있다고 참회했다. 지난해 미셸 총리는 피해자들이 친부모를 찾고 이제라도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도우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miXed2020’과 ‘메티스 드 벨기에‘ 활동가들은 이들 어린이들이 깊이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출생 기록이 없는 이들도 있고 아프리카 어머니나 벨기에 아버지 어느 쪽도 찾지 못한 이들도 있다. 벨기에 아버지 가운데 꽤나 유명한 이름도 포함돼 있다고 두 단체는 밝혔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조르쥬 카마나요는 미셸 총리의 사과는 “정의롭지 못한 것을 마지막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우리는 오랫동안 3등 벨기에인으로 느껴왔다”고 일간 드 스탠다르드에 털어놓았다. 그는 “식민지에서는 백인 아이들과 떼어놓으려 했고, 벨기에에서는 우리끼리도 감추려 들었다. 어디에서도 나설 수 없었다.”며 벨기에는 늘 더 느리게 움직였다. 다른 나라들은 우리를 앞질렀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인 벨기에 콩고를 통치하며 아프리카인 1000만~1500만명을 도륙하는 등 벨기에는 악랄한 식민 통치로 악명 높았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0744046
"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벨기에는 이들 아프리카 국가 식민통치 시대 말기인 1959∼1962년 벨기에 백인 남성과 아프리카 흑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수천 명을 강제로 가족에게서 분리해 보육원이나 가톨릭교회 등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수용했다. NYT는 그 수가 1만∼2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NYT는 인종 분리 차별정책은 벨기에 식민통치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였으며, 당시 벨기에 정부에 있어 혼혈 아동들은 이 같은 분리정책을 약화하고 백인 인종의 위신에 흠집을 내는 존재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벨기에 당국은 1869∼1870년 캐나다에서 혼혈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지방 정부를 전복한 '레드강 반란'이 반복될까 우려해 콩고의 혼혈 아동들을 가족은 물론 아프리카 흑인들에게서 분리할 것을 지시한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59년. 벨기에, 흑백혼혈아동들이 반란의 씨앗이 될거라고 예상하고, 강제 납치, 수용, 입양 시작.
동시대 미국 흑인민권운동.
- 로자 파크스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 (1955~56년)

- 아칸소주 리틀록 하이스쿨, 9명의 흑인 학생들 입학.
백인들의 린치 위협. 아이젠하워 대통령 101공수사단 투입 경호. (1957년)

- 마틴 루터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이 있었던 워싱턴 행진 (1963년)
#3. 21세기 현재 진행중인 벨기에의 인종차별
https://theqoo.net/square/871812504
"인종차별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중 벨기에 인종차별은
카메라가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집단폭행을 하려 한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박준형조차
"이정도의 인종차별은 미국 7,80년대때 있었던 일같다"라고 할정도
그리 오래된 방송이 아니다.
배에 타고있는 아시아인들을 보고 눈찢는 행동을 하는 벨기에 학생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