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하면 모르고 하면 늘겠지
‘하면 는다.’ 무엇이 되었든 지레 ‘나는 못 해요’ 하기보다는 일단 해보자는 셀프 캠페인이다.
2017 . 09 . 22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두 요소가 사랑과 돈이다. 지난번 이 지면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까 오늘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일’이 아니라 ‘돈’이라고 했다. 일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 돈이 있으면 일을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일은 하는데 돈이 없다면 살 수 없으니까.
햇반을 사고 전기세를 내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부모님 집에 얹혀살아서 괜찮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조차도 부모님에게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돈을 벌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봉사 활동’이다. 돈과 상관없이 일을 하는 것은 ‘취미 활동’이다.
돈은 정말 중요하다. 돈이 있다면 시간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을 좀먹는 여러 요소들을 돈으로 없애거나 정리하면,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곳에 시간을 더 쓸 수 있다. 시간은 곧 인생이므로, 나는 좀 더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니라면. 물론 그 경우에도 돈이 많다면 병을 더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테다. 자, 그렇다면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돈에 대해 잘 생각해볼 일이다. 돈은 나에게 얼마만큼 중요한가? 당신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더라도 돈은 여전히 중요하다.
돈은 생각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일에 영향을 미친다. 좋아하는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돈으로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일에 있어 돈이 다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하다. 이것을 명심했다면, 이제 ‘일’에 대해 얘기해보자.
진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의 균형 잡기다. (일러스트레이터 김호씨는 “자아를 채워주는 일과 통장을 채워주는 일이 있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가?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잘린 듯 나뉘어 있는 게 아니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좋아하는 일은 잘하게 되기 쉽다. 또 일을 잘 해내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그 일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 다행히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적절히 조율해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다. 그 안에서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세상 어느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었는데, 처음엔 카피를 쓰는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광고회사에 소속된 카피라이터의 업무 분량 중 카피를 쓰는 일은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주로 회의, 회의, 회의다. 일을 파악하는 회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회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회의,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회의, 결과물을 보여주며 설득하는 회의…. 나는 카피 쓰는 일과 팀 내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건 무척 좋아했지만, 다른 일들은 참 싫어했다. 그래도 좋은 카피라이터가 되려면 모든 업무에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잘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합쳐져야 비로소 ‘일’이 된다.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아이디어를 내고 카피 쓰는 일만 하면 되는구나 싶어 처음엔 좋았다. 그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들이니까. 그런데 갈수록 실상을 깨닫게 되었다.

프리랜서는 일을 구하는 ‘영업’도 내가 해야 하고, ‘정산’도 내가 해야 하고 세금 업무도 내가, 심지어 일하는 공간 마련도 내가 해야 했다. 회사에 다닌다면 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출퇴근을 안 하니 일의 리듬도 내가 만들고 조절해야만 한다.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부분이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합쳐져 있다. 그래도 나는 회사에 속해 일하는 것보다는 프리랜서 생활이 훨씬 잘 맞았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점이 좋았고, 내게는 돈이 쪼들려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미리 걱정하지 않는 천성이 있으므로.
반면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월급형 인간이야.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없으면 너무 불안할 것 같아.” 이제 프리랜서 10년 차인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갈 곳이 있으면 불안하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일은 해봐야만 한다. 해보기 전에 ‘나는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일을 하면서 ‘아, 나는 이런 부분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었구나’, ‘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 해보니 어렵구나’ 하고 깨닫는 게 훨씬 정확하다.
어떤 일이라도 직접 해보기 전엔 실상을 모른다. 얼마 전 뮤지션 김윤아씨가 이런 트윗을 썼다. “며칠간 페이퍼워크가 너무 많았다. 뮤지션이 무슨 페이퍼워크냐 생각하시겠지만 의외로 그런 업무가 꽤 있습니다.” 카피라이터도 뮤지션도 택시기사도 수영선수도 영업사원도 마찬가지다. 일이란 하나의 단면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바로 그렇기에 그 어떤 일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 이름이 근사한 직업이 아니더라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일에는 다양한 면들이 합쳐져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보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배우게 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처신이라든가, 매일 비슷한 일을 할 때 오는 지루함을 떨치는 노하우라든가, 하다못해 프린터 용지걸림 해결법을 익힐 수도 있고, 심지어 ‘다른 건 다 해도 내 이 일은 다신 안 한다!’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 무엇이 되었든 일을 하기 전과 후는 뭐가 달라도 달라져 있다. 요즘 나의 모토는 이것이다.
‘하면 는다.’ 무엇이 되었든 지레 ‘나는 못 해요’ 하기보다는 일단 해보자는 셀프 캠페인이다. ‘하면 된다’는 군대식 발상과는 달리, 꼭 무엇이 되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해보면 좀 늘기는 하겠지 하는 생각이다. 전에 없던 업종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요즘이다.
뭐가 되었든 기회가 생긴다면(아니면 만들어서라도) 일단 해보면서 자신을 알아가자. 최근 나는 어느 팟캐스트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일단은 해볼 참이다. 하면 늘겠지. 만족할 만큼 늘지 않는다면 ‘이런 건 나랑 맞지 않는구나’ 하는 깨달음이라도 얻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모든 일에서 손해는 없다. 아, 돈 안 주는 일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