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방탄소년단은 뉴스에 수시로 오르내릴 만큼 유명해졌지만, 멤버 개개인이 팀만큼 잘 알려져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개별 방송 활동보다 앨범 발매와 공연 위주로 활동한 팀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제이홉(J-Hope)은 그 일곱 명 중 한 명이다. 인터뷰 때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이자, 섬세한 춤으로 방탄소년단 무대의 중심을 잡는 멤버이기도 하다.
힙합 아이돌로 출발한 방탄소년단에게는 자작 랩 가사가 중요한 정체성이었다. 랩라인 멤버 세 명이 각자의 가사를 쓴다는 원칙 아래 제이홉 역시 수많은 작사에 참여했다.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데뷔 전부터 힙합 트랙을 만들어온 슈가(Suga)나 알엠(RM)과는 달리, 제이홉은 고향인 광주에서부터 이름난 댄서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랩을 하고 가사도 써야 한다는 것은 거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었을 터.
그러나 그는 생소한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제이홉의 가사는 그 이름처럼 올곧은 희망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Ma City’ 같은 곡에서는 민주주의의 도시 광주 토박이로서의 자부심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한국 힙합 신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청명한 가사를 쓴다. 데뷔 전 힙합 신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그 신에 진 빚이 없고, 그래서 인정도 필요치 않다. 힙합 신에서 관습처럼 써온 표현을 덜 쓰기에 신선한 인상을 준다. 그의 이름으로 낸 믹스테이프(본래는 래퍼들이 가볍게 묶어 내는 샘플링 트랙을 일컫는데, 방탄소년단 안에서는 래퍼 멤버의 비매용 솔로 앨범 정도의 지위를 갖는다)는 앞서 낸 다른 멤버들 것보다 유난히 밝고 쨍하다. 그렇게 그는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그가 제 정체성을 춤꾼에서 작사가로 완전히 바꿔버린 것은 아니다. 원래 잘 추던 춤을 더욱 잘 추고 있다. 방탄소년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각 잡힌 일명 ‘칼군무’. 그는 본인의 춤만 잘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의 춤 완성도에 많은 기여를 한다. 내부에서는 ‘안무팀장’으로 불린다. ‘리더’나 ‘메인 보컬’처럼 포털사이트 프로필에 올라가는 타이틀도 아니건만, 그는 연습생 시절 안무가 선생이 붙여준 그 이름표에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인터넷에서는 백스테이지에서 다른 멤버의 안무를 봐주거나 무대 구성에 촉을 곤두세우는 제이홉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가 보는 방탄소년단의 무대에는 프런트엔드(Front-end)에 직접 서는 그의 백엔드(Back-end)적 공이 함께 스며 있다.
그런 치열한 준비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올라가면, 그는 언제나 웃는다. 함께하는 멤버들은 그런 그를 보며 마지막까지 달릴 힘을 얻는다고 한다. 리더인 알엠은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리더이지만 제이홉이야말로 리더다운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나오고 있지만, 케이팝 역시 인간이 만들어내는 노래인 만큼 그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제이홉은 무대 위 방탄소년단이 보이는 태도의 중심이다. 한 번의 무대를 위한 빈틈없는 준비, 퍼포먼스의 순간을 즐기는 태도. 그 중심에 제이홉이 있다.
랜디 서 (대중음악 평론가) webmaster@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