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정보 좋아하는 사람한테 의연하고 싶어 가슴속 꽃밭 대신 오늘도 달린다.txt
3,081 96
2018.10.04 23:51
3,081 96

[연애인의 기쁨과 슬픔]좋아하는 사람한테 의연하고 싶어 가슴속 꽃밭 대신 오늘도 달린다 

2646155058F78CC91700BE


연애가 끝나서 자꾸 눈물이 났던 작년 어느 날에 남동생이 내게 말했다.

누나, 슬플 땐 많이 걸어. 그럼 길 여기저기에 슬픔을 두고 올 수 있거든.

나는 원래 많이 걷는 사람이었지만 그날 이후 더 많이 걸었다. 많이 슬픈 날엔 뛰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러 나갔다. 장마철에도 쉬기 싫어서 방수 재질의 러닝복을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수압이 너무 센 샤워기 밑에서 달리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몸살을 앓으며 비 오는 날엔 뛰지 않기로 다짐했다.

누구나 스스로에게 다른 방식으로 엄격할 텐데 나는 이 부분에서 나를 잘 봐주지 않는다. 게으르게 보낸 하루일수록, 연재하는 글과 만화가 창피할수록, 연애가 어렵고 외로울수록 더욱더 열심히 뛰고 온다. 내가 사는 서교동에서 출발해 망원동을 지나 합정동을 지나 상수동을 지나 서강대교를 찍고 돌아오는 코스다. 

대체로 아무 생각 없이 뛰지만 길 어디쯤 물웅덩이가 있는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언제 끝나는지 내 다리가 외우고 있어서 넘어지지도 삐끗하지도 않는다. 집에 와서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손빨래를 하고 나면 체력이 기분 좋게 소진되어 있다. 그 상태에서는 애인에게 괜히 투정을 부리거나 과민하게 질투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청승을 떨다가 싸울 확률이 줄어든다. 내가 ‘혼자를기르는 방법'이다. 엄마는 가슴속에 꽃밭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 나는 꽃밭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서 우선 다리 근육부터 길렀다. 오래 달리는 호흡도 익혔다. 입을 다물고 가볍게 숨을 쉬며 뛰는 법 말이다.

이렇게 애쓰는 이유는 우아해지고 싶어서다. 나는 애인이 바빠서 나에게 무심한 날에도 꼬이지 않은 마음으로 그 애가 하는 일을 응원하고 싶다. 그 애 주변에 있는 매력적인 애들에 대해 조바심을 느끼지 않은 채 연애를 이어가고 싶다. 별다른 연락이 없는 밤에도 기분 좋게 내 할 일을 잘했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누구를 너무 좋아하는 동안 그 사람에 대해 의연해지는 법을 모른다. 누군가와 같이 잘 지내는 것에도 실패하고 혼자 잘 지내는 것에도 실패하는 날이 있다. 그런 실패뿐인 날에는 열심히 뛰어서 땀을 내고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오는 수밖에 없다. 

내가 혼자 걷고 있단 걸 믿을 수 없어서 괜히 뒤를 돌아볼 때도 있다. 그럴 땐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는 것만 같다. 나는 그 애를 모르고도 잘 살았던 시간을 상기해본다. 나의 근사한 친구들과 스승들의 얼굴도 떠올려본다. 연애 말고도 중요한 일이 세상에는 너무 많고 내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서 일해야 하며 월세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 그 애를 그리워하느라, 더 사랑받길 원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흘려보내는 건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다가 전화가 걸려온다. 근처에 있다고 그 애가 말한다. 그럼 나는 방금 막 뛰기 시작한 사람처럼 빠르게 그 애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규칙적으로 달려온 덕분에 뱃살이 줄고 다리 근육이 늘어서 예전보다 더욱 빠르게 그 애한테 갈 수 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자주 실패할 게 분명하다. 

-이슬아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레진코믹스 만화 ‘숏컷’ 연재

995DCD335A18EE20344FF4

목록 스크랩 (76)
댓글 96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Mnet Plus Original X 더쿠] 봄바람과 함께 다시 돌아온 <워너원고 : 백투베이스> 퀴즈 이벤트💙 901 04.22 63,957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098,273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282,22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078,541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577,384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03,918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5 21.08.23 8,552,805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0 20.09.29 7,461,903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17 20.05.17 8,673,731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0 20.04.30 8,564,503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497,360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55237 이슈 스페셜 버스킹으로 약 2년 만에 완전체 오프라인 공연한 루시 16:53 1
3055236 유머 아이돌덕후가 그 덕질하던 그룹에 가입하면...? 16:53 50
3055235 유머 시청률 보장하는 궁 리메이크 가상캐스팅 16:52 124
3055234 기사/뉴스 소유, 1300만원 월세살이 부인 “그 돈 못 내‥사생 트라우마로 이사” (두데) 1 16:52 99
3055233 이슈 사우디 젊은이들 사이 데이팅앱 유행 16:52 134
3055232 이슈 서강준 인스타 업데이트 1 16:52 89
3055231 이슈 @: 플러팅 맨날 하는 애가 당하는 거에 면역이 없네 1 16:52 131
3055230 이슈 [KBO] "던질 투수가 이들밖에 없나?" 들끓는 커뮤니티, 한화 벤치 향한 팬심도 폭발했다 4 16:49 197
3055229 기사/뉴스 차태현, “김종국 결혼 가짜 같아…신혼집 못 가봤다” ('미우새') 9 16:49 650
3055228 이슈 발레 신동 9세 아이의 에스메랄다 ㅡ애기가 넘 잘 해!!! 3 16:47 411
3055227 유머 영화 와일드씽 당신의 최애에게 투표하세요(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 11 16:47 418
3055226 이슈 본인 도수코 유행어로 신현지 결혼 축하한 장윤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jpg 1 16:47 1,001
3055225 정치 [속보] '원조 찐윤' 김영환 충북지사, 국힘 공천 확정 10 16:46 324
3055224 이슈 실시간 금발 반응 난리난 투어스 신유 쇼케이스 사진 32 16:45 1,080
3055223 이슈 언~발란스 주우재버전 7 16:45 345
3055222 이슈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인들에게 붐업되고 있는 미역국 레시피 31 16:43 1,830
3055221 정보 스테이씨 소속사 신인 여돌 데뷔곡 멜론 일간 추이 상황...jpg 4 16:43 472
3055220 유머 요즘 개웃겨서 소소하게 알고리즘 타고있는 친모아 실황.ytb 1 16:41 377
3055219 기사/뉴스 야구 없는 월요일, '엘린이 피크닉' 열린다...잠실구장 마지막 어린이날 기념 5 16:41 360
3055218 유머 뿌링클이 맛있어야 영혼이 젊은 것임.twt 25 16:41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