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A(여성·29)는 시내를 거닐 때마다 챙이 일자형인 모자, 스투시 티셔츠, 통이 넓은 바지,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 등을 입은 40대가 자주 보인다고 했다. 이런 패션을 소위 ‘영포티룩’이라 부른다. “옆에 있는 친구한테 ‘야 저기 영포티 지나간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낄낄’대는 거죠. 나이 많은 거 티가 나는데, 어울리지도 않는데 젊은 척하는 아저씨들이요. 되게 부담스럽게 느껴져요.” A에게 “젊어 보이는 게 뭐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기자님도 ‘긁?’(약점이나 콤플렉스를 건드려 삐졌냐는 뜻).”
10여 년 전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소비 주체인 40대’를 뜻하던 조어 ‘영포티’는 이제 조롱의 단어가 됐다. 2022년 중반 ‘디시인사이드’ 같은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쓰이던 이 조롱의 언어는 지난해 2030세대 전반에 퍼졌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신문과 방송에서까지 언급되는 대중적인 ‘멸칭어’가 됐다. 주간경향은 대학교 1학년인 2006년생(19세)부터 직장인인 1990년생(35세)까지 남녀 19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에게 영포티란 무엇인가. 이들은 왜 영포티를 말할까.
2030이 말하는 영포티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B(남성·28)는 “영포티룩에 ‘우영미’나 ‘준지’ 같은 브랜드가 있다. 20대들이 입는 옷과 비교해 금액대가 3~4배 차이 난다. 40대는 그런 브랜드를 걸치면서 자신이 젊고 트랜디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 같다. 근데 그게 어울리지 않고 괴상하게 느껴진다. 그 괴상함을 ‘영포티’라고 부른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20대는 돈은 없고 젊음만 있거든요. 40대는 젊음은 없는데 돈이 있잖아요. 근데 20대의 젊음을 돈으로 사려는 게 꼴불견이죠.”
C(남성·22)는 “‘스투시’나 ‘슈프림’ 같은 영포티 브랜드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유행하다 이제는 한물간 느낌이다. 그래도 잘 매치해 입는 20대도 많다. 근데 영포티들은 스타일에 맞게 매치할 생각은 안 하고 너무 과하게 입고 다닌다”고 했다.
A는 “지금도 자기가 20대 여자한테 어필한다고 믿는 자의식 과잉의 중년 남성”이라고 했고, D(남성·25)도 “젊게 입고 홍대 클럽에서 여성을 꼬시려는 아저씨 이미지”라고 했다. ‘영포티’를 주제로 한 유튜브 영상 중에는 젊게 입고 헌팅을 시도하는 40대를 재현한 영상들이 있다. 보수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에 관대한 척, 여성들에게 자상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음흉한 중년을 ‘영포티’로도 소비한다.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성비위, 성범죄 등으로 문제가 된 정치인 중에서 범여권 정치인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년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로도 쓴다.
인터뷰에 응한 2030 중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이는 D와 E(남성·23)였는데, D는 “정치 성향을 뜻하는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고 했고, E는 “그런 뜻이 있다는 건 알지만 나는 그렇게 쓰진 않는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F(여성·34) 같은 직장인들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 젊은 ‘꼰대’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고 답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_밈과 혐오의 세계 생존 전략> 책을 쓴 곽주열 작가(28)는 “커뮤니티에서는 소위 타격감이 좋은 상대를 찾는다. 긁히는 반응을 즐긴다는 뜻이다. 40대들은 디시인사이드 초창기부터 활동한 이가 많고, 그렇다 보니 2030이 이들을 공격하면 바로 반응한다. 반면 50대나 60대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2030이 보기에는 타격감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40대 민주당 성향의 커뮤니티로 꼽히는 ‘클리앙’이나 ‘오늘의유머’ 등에서는 영포티에 ‘긁힌’ 이들의 글이 상당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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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 같은 남을 조롱하는 단어가 등장한 것에 대해 “2030 남성을 중심으로 강한 패배주의적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곽주열 작가)이라는 분석도 있다.
“2030세대가 10대, 20대일 때 유행했던 담론이 ‘수저계급론’이었어요. 이들은 세대 내, 세대 간 계급 차이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느껴요. 흙수저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들은 흙수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죠. 2030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패배주의가 가득해요. 예컨대 ‘찐’이나 ‘찐따’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많이 쓰죠. ‘나는 내가 찐따라는 걸 아는데, 너는 자신이 찐따라는 걸 모르는 찐따야’라는 식으로 상대를 비하하거든요. 결국 약자가 약자와 싸우는 형국이에요. 서로의 약자성을 파고들어 공격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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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영포티’에 대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40대가 “젊게 입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면, 2030은 “그러니까 영포티”라고 답한다. “‘영포티’는 세대 갈등을 일으키는 말”이라고 지적하면, “너희야말로 ‘MZ는 이렇다’는 세대론을 퍼뜨리는 당사자”라는 답이 돌아온다. 조롱과 혐오의 밈을 일종의 ‘놀이문화’로 받아들이는 2030은 그냥 한 글자로 답한다. “긁?”
곽주열 작가는 “20대에게 어떤 얘기를 하든, 상대가 그런 식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한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피해의식이 있고 방어기제가 생겨서 진심 어린 반응에도 ‘혹시 날 공격하려는 건 아닌가’ 하며 오히려 자기가 먼저 공격성을 보인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그라운드에서 젊은 세대는 그런 감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인터뷰에 응한 2030에게 ‘40대에게 어떤 모습을 원하냐’라고 물었다. A는 “40대는 팀장들이거든요.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찐어른이네’ 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F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귀감이 되고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외적인 것 말고 행실에서 성숙함과 품격이 드러나고 그게 자신의 색깔이 되는 사람” 등의 답변이 나왔다. 키워드만 뽑아보면 ‘어른’, ‘책임’, ‘존경’, ‘귀감’, ‘성숙’, ‘품격’, ‘경청’, ‘협력’ 등이다. 이들의 답변은 40대만이 아닌, 그 윗세대까지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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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덕, 이혜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