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6133301?sid=001
노년층 1시간 기다려도 앱 이용 땐 10분이면 입장
원격 줄서기 확산 속 노인들에게 생긴 '맛집 장벽'
"키오스크도 겨우 익혔는데…원격 대기? 낯설어"
노인 위한 '탁구공 웨이팅' 도입한 식당도
[이데일리 염정인 기자] 최근 앱을 활용한 ‘원격 줄서기’가 보편화되면서 가게 앞에 손님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도심 번화가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주요 여행지의 식당들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는 추세다. 이는 여행지 맛집을 기다려온 노년층에게는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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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 앞에서 이데일리 취재진이 만난 60대 여성 임모씨는 “나보다 한참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서 이상했다”고 말했다. 임씨 일행은 모두 60~70대로 ‘원격 줄서기’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고 했다. 이들은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가게 문을 여는 시간에 딱 맞춰 방문했지만 1시간 가까이 기다려 겨우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반면 앱을 이용한 다른 손님들의 평균 대기 시간은 대체로 10분 남짓이었다.
이처럼 식당에 도착하지 않고도 미리 대기를 걸어둘 수 있는 원격 줄서기 앱이 보편화되면서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들이 소외되고 있다. 특히 ‘원격 줄서기’ 앱이 출시된 초기만 해도 20·30세대가 주로 가는 식당이나 카페를 중심으로 해당 서비스가 도입됐지만 최근에는 관광지 맛집부터 노포까지 범위가 넓어져서 불편함을 느끼는 노인들이 많다.
임씨는 “키오스크도 최근에 겨우 배웠는데 앱으로 먼저 줄을 설 수 있다니 상상도 못 했다”고 토로했다. 해당 식당의 점주인 안모(55)씨는 “어르신들의 불편을 알지만 질서 관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어르신들이 방문하시면 최대한 도와드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휴가철을 맞아 강원도 강릉을 다녀왔다는 최모(54)씨도 유명 맛집을 방문했다가 어르신들만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는 “젊은 사람들은 전부 식당에 오기 전 앱으로 미리 대기표를 끊어둔 것 같았다”며 “나도 딸이 해줘서 알았지 혼자 왔다면 따로 앱을 설치할 생각을 못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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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어려움을 겪은 어르신들을 배려해 아날로그 방식의 대기 시스템을 도입한 식당도 있었다. 강원도 철원에서 음식점를 운영 중인 김송이(42)씨는 2019년부터 ‘탁구공 웨이팅’을 고안해 노년층 손님을 배려하고 있다. 손님은 탁구공에 적힌 숫자 순서대로 공을 집어 기다리다 순번이 돌아오면 가게에 공을 반납하고 입장하면 된다. 탁구공 옆에는 대기 시스템이 생소할 수 있지만 양해를 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안내문에는 “기계 사용이 대한민국에 보편화 되어서 어머님, 아버님 모두가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저희가 소통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씨는 “앱을 쓰면 굉장히 편해지겠지만 어르신들 생각을 안 할 수 없다”며 “어르신들만 시간을 손해보는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지 식당만이라도 고령층을 배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점주들에게 어르신들 편의를 봐달라고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키오스크처럼 원격 줄서기 앱 사용법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