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어 저렇듯 민폐를 끼치고 싶을까?"
젊은 연인들끼리 마주 보며 나누는 말이었지만, 줄 선 이들 모두에게 들릴 만큼 큰소리였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부부가 카페 입구에서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 멀찍이 뒤에 서 있던 한 중년의 신사가 도와주겠노라며 다가섰다. 대화하며 버튼을 눌러 화면을 넘기는데, 두 어르신은 마냥 신기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막상 결제를 위해 건네받은 카드가 먹통인 모양이었다. 연신 다시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두 어르신도, 중년의 신사도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어르신은 현금으론 결제가 안 되는지 물었고, 결국 그 신사는 현금을 건네받은 뒤 자신의 카드로 대신 결제했다. 수호천사를 자임했던 그 신사의 목소리에도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기껏해야 5분 남짓이었을 뿐인데, 순서를 기다리던 손님들 사이에선 비난인지 욕설인지 모를 뒷담화가 이어졌다. 어떻든 두 어르신은 천신만고 끝에 커피를 주문하는 데 성공했다.
내 순서가 되자, 무언가에 쫓기듯 자꾸만 시선이 뒤를 향했다. 그 어르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손님들이 주문 속도가 느리다고 눈치를 줄까 싶어 괜히 신경이 쓰였다. 키오스크 앞에서 어떤 메뉴가 있고, 가격은 어떤지 찬찬히 살펴보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 욕먹지 않으려면, 주문 전에 미리 정하고 버튼을 재빠르게 눌러야 한다.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당장 두 어르신의 '카페 나들이'를 민폐라며 손가락질하는 젊은이들의 각박한 심성이 안타까웠다. 언뜻 무심히 내뱉는 그들의 말속엔 '노인 혐오'의 정서가 배어 있었다. SNS에선 요즘 노인들은 '○리단 길'로 불리는 젊은이들의 거리까지 기웃거린다고 조롱하며, 그들을 향해 '물을 흐린다'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마치 자신들은 영원히 나이 들지 않은 채 젊은이로만 살 것처럼 위세를 부리고 있다. 언젠가 수업 중 뜬금없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표현을 두고 아이들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노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뇌 교육의 일환'이라는 한 아이의 되바라진 대꾸가 화근이 됐다. 여태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겐 문화적 충격이었다.
나이가 들면 행동이 굼떠지고 눈이 침침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하고,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노안 시술을 하고, 피부 노화를 개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보지만, 생로병사의 엄연한 노정 앞에 '회춘'이란 그저 입에 발린 칭찬에 불과하다. '노인 혐오'는 결국 '자기 혐오'의 미래형일 뿐이다.
5분도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 내며 안달
한편, 채 5분도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 내며 안달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정서도 당혹스럽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자주 듣는 이야기가 '빨리빨리'라는데, 조급함을 우리 국민 공통의 'DNA'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그들에게 '빠름'은 '편리함', 나아가 '좋음'과 동의어다. 뭐든 늦거나 더딘 건, 불편하고 개선해야 할 나쁜 거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정작 분초를 다투는 일을 앞두고 있느냐면 딱히 그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게 신호 대기 중인 자동차에서 울리는 요란한 경적이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는데 곧장 출발하지 않으면 대번 경적이 울린다. 단 1초의 기다림도 없다.
한 동료 교사는 학교에 설치된 와이파이의 속도에 연연하는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두고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단언했다.
키오스크 주문에 서툰 노인을 향해 손가락질할 뿐, 정작 키오스크로만 주문하는 시스템을 문제 삼는 손님은 없는 듯했다. 모두가 사람을 향해 화를 내면서도 기계를 향해 화내는 이가 없다는 게 서글펐다.
어떤 기술이 추가되고 보완되든 키오스크는 노인들에게 친화적일 수 없는 도구다. 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결국엔 노인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들이 현재의 시스템을 배워 익숙해질 때쯤이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키오스크가 등장해 있을 것이고, 또다시 젊은 세대로부터 '민폐'를 끼친다고 손가락질당한 게 불 보듯 환하다.
나이를 떠나 빨리 가는 사람들과 더디 가는 사람들을 함께 배려하는 사회라야 건강한 공동체다. 키오스크로만 주문이 가능한 시스템은 첨단 기술의 발전이 노인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과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라고 여겨 이 경험담을 아이들과 공유했더니, 한 아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이를 듣고 솔깃해하는 아이들의 맞장구에 더는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배제와 차별, 혐오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게 교육의 본령일진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주장인즉슨 이랬다.
"그냥 '노인 전용 카페'를 만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 아닌가요?"
https://naver.me/x6x5TWRL
기사 쓴 분은 현직 교사임
중간중간 생략한 부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