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394608
당 외곽 지지 세력서 전대와 경선 구도에 실질적 영향력 확대
영향력 이용하려다 신성불가침 영역 돼…민주당 강경론 증폭

지난 8월 5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대표 당선 후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유튜브 캡처
[주간경향] 구독자 수 223만명.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채널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앞다퉈 출연하는 민주당 핵심 미디어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들도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출연하고, 김어준이 주최한 대규모 콘서트에는 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 총리 후보자 등이 참석했다. 한때 당 외곽 지지 세력으로 분류됐던 그의 영향력은 전당대회와 경선 구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당내에서는 “프레임 설정에 취약했던 민주당이 그의 플랫폼을 통해 보수 진영에 맞설 수 있는 프레임을 형성했다”는 분석과 함께, “비판이나 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됐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김어준을 “민주당의 고정 상수”로 지칭하며, “당의 일부 기능이 그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6월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김어준의 ‘더 파워풀’ 콘서트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우원식 국회의장, 당시 당대표 후보였던 정청래 의원 등 민주당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1만5000석 규모의 객석이 매진된 가운데 3일간 공연이 이어지며 수만명이 현장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공개된 영상에서 문 전 대통령이 “형님이라고 불러봐”라 말하고, 김씨가 “형님”이라 답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화려한 무대 연출과 유력 인사의 메시지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의 장면을 연상시켰다”고 했다. 당의 공식 행사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공식 행사보다 더 큰 상징성과 영향력을 가졌다는 평가다.
정치권에서는 이제 ‘김어준’이 민주당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영향력은 분명하다. 의원들 대부분이 방송에 출연하려 한다. 어떤 의원은 20분 출연으로 후원금 4000만원을 모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실제로 방송을 듣지 않아도 들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당내 생존의 조건이 됐다. 그의 의견은 주류이며, 과장을 보태면 당내 교리처럼 통한다”고 했다. 주간경향이 최근 1년간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을 분석한 결과, 민주당 의원의 3분의 2에 가까운106명이 한 번 이상 출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영향력은 단순한 담론 형성을 넘어 전당대회와 당내 경선 구도에까지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저서 <정치 무당 김어준>에서 2021년 5·2 전당대회를 “팬덤 정치의 승리이자 김어준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당시 김용민 의원은 대의원 득표율 12.42%로 최하위를 기록했으나 권리당원 득표율 21.59%로 1위를 차지해 최고위원에 올랐다. 전당대회 직후 김 의원은 김씨의 방송에 출연해 “수석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고, 김씨는 “보궐선거 직후 무작정 반성론이 지배할 때 검찰·언론 개혁을 주장한 것이 당원들의 마음에 닿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도는 지난 8월 2일 당대표를 선출한 전국당원대회(전당대회)에서도 반복됐다. 정청래 후보는 61.74%를 득표해 박찬대 후보(38.26%)에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대의원 투표에서는 박 후보가 다소 앞섰지만,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정 후보가 크게 앞섰다. 민주당 전직 의원은 “김씨는 팬덤을 이끄는 인물이기에 어젠다를 설정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은 “김씨가 정청래 후보를 밀었고, 그게 당선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김씨가 다른 방식으로 정 후보를 설명했다면 정 후보가 그렇게 쉽게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과거 정청래 의원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비판했던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김씨는 ‘더 파워풀’ 콘서트에서 정 의원에게 ‘이재명 대통령을 칭찬해보라’고 요구했고, 정 후보는 “콘텐츠가 있다, 똑똑하다”고 답한 후, 본인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는 “이 대통령과 정치 방향과 속도가 일치한다”라고 답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 국면에서도 김씨는 정 후보를 뒷받침했다. 정 후보가 “강선우는 따뜻한 엄마이자 훌륭한 국회의원”이라며 지지 메시지를 낸 반면, 박 후보는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며 공개 사퇴를 촉구했다. 강 후보자가 결국 사퇴하자 김씨는 유튜브 방송에서 “사퇴시킬 만큼의 사건은 없었다. 실제로 엄청난 갑질이 있다고 믿는 기자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정 후보가 보여준 태도를 정당화하며 결과적으로 그의 당선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소속의 한 광역의원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도 당내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차단된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마치 신성불가침 영역처럼 굳어진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1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계엄 상황에서 체포조가 아닌 암살조가 가동된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제보에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체포해 이송 중 사살하고 이를 북한 소행으로 발표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정보위 소속 박선원 의원 측은 김씨 주장이 대체로 사실이 아니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이재명 대표 등에게 보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김씨 지지자들이 반발했고, 박 의원은 첫 보고서가 유출돼 김씨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됐다며 김씨 유튜브에 출연해 사과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은 김씨 방송에 대해 뒤에서는 우려를 하지만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 방송에서 이 대통령의 방향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지지층이 워낙 열광해 정면 대응이 어렵다. 맞서기보다 눈치를 보며 대응하는 분위기가 오래전부터 일반화돼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어준 방송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던 일부 비명계 의원들이 있었지만, 총선과 12·3 불법계엄 등을 거치며 다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송인 김어준씨가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가 당내에서 사실상 비판이 어려운 영향력을 갖게 되고 이에 호응하는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더욱 부상하면서 당 전체의 강경론이 증폭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김씨는 자신과 견해가 유사한 패널들을 반복적으로 초대하고 강성 당원들이 핵심 청취층을 형성한다. 그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시절인 2021년 4월 민주당의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당내에서 강경 노선에 대한 반성이 나오자 “이럴 때 튀어나와 발언하는 분들이 꼭 있다”며 “대체로 소신파라고 띄워주지만, 이분들 말대로 하면 망한다”라고 했다. “원래 선거를 지는 쪽에서는 대체로 그 선거에 가장 도움이 안 됐던 분들이 가장 도움이 안 될 말을 가장 먼저 나서서 한다. 소신파가 아니라 공감대가 없어서 혼자가 된 것”이라고도 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와 관련해서도 김씨는 국회의원들이 보다 선명한 입장을 선호하는 유권자 정서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월 4일 방송에서 김씨는 “많은 국회의원이 박찬대 의원 지지 선언을 했다. 이걸(대중의 요구) 못 읽는 것이다”라며 “정청래 의원은 잘 읽는 편에 속했고, 박찬대 의원 캠프는 그걸 못 읽은 채로 경선을 치렀다. 얼마나 못 읽었는지 복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경 담론의 확산에는 청취자의 기대와 반응을 민감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는 유튜브 플랫폼의 구조적 성격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레거시 미디어보다 김씨의 방송이 수용자 요구에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레거시 미디어는 독자가 빠져도 기업의 광고가 유지되는 완충장치가 있지만, 유튜브는 구독자로만 유지되는 모델이라 수용자 의견이 더 반영될 수밖에 없고 강경한 메시지를 원하는 청취자층의 요구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강경 노선의 확대는 정부의 전략적 유연성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국정 운영을 위한 어젠다와 강경 지지층이 선호하는 어젠다는 다르다”라고 말했다. 특히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지지층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여권 내부의 선명성 경쟁만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 실장은 “집권 초기 3개월은 대통령 권력이 정점에 있는 시기지만, 야당이 약세인 상황이다 보니 지지층 내부의 이탈된 목소리들이 제약 없이 표출되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정부와 다른 목소리가 보수 진영과의 대립 구도를 의식해 억제됐지만 지금은 그 억제 장치가 느슨해졌다”며 “강경한 메시지를 원하는 지지층의 수요와 강경파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정치인들의 경쟁이 생겼다. 유튜브는 이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며 강경 메시지의 확산 통로가 되고 있다”라고 했다.
정당 고유의 기능이 김어준에게 실질적으로 이전된 상태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이 메시지 발신과 의제 설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그의 플랫폼에 의존하면서, 당의 주도권이 외부로 넘어갔다는 지적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정당이 해야 할 메시지 발신과 의제 설정을 김어준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당은 스스로 이슈를 만들지 못하고 그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가 됐다. 이는 당과 김어준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지구당이 폐지되며 정당의 지역 기반 조직이 약화됐고, 이후 정당이 일상적 의제 설정과 조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공백을 팟캐스트와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이 채워왔다는 분석이다. 윤왕희 성균관대 미래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당이 본래 정치인을 육성·양성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하지만 현재는 사실상 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그나마 가능한 경로는 자원봉사나 의원실 보좌진으로 활동하는 정도인데 그러다보니 정치가 개인화됐다”라며 “정당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정당인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흐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정당은 특정 목적을 가진 고관여층 중심으로 운영되며 유튜브와 SNS 등 온라인 담론 구조에 깊이 동조화돼 있다. 지난 20년간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정치인들이 국회를 구성하고 있어 구조적 변화 또한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민주당 정치인들이 자신의 기능과 권한을 김씨에게 넘긴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 관계자는 “김어준보다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의원들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전직 민주당 의원은 “문제는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다. 정치인들이 분별없이 김씨의 영향력을 키웠고, 의사 결정에 참여시키며 후원금 모집 등으로 그에게 의존하게 됐다. 새로운 정치 문법이라며 편승하면서 모두가 그 흐름에 끌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귀동 실장은 “김어준 개인보다 민주당이 김어준을 대체할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며 “정당은 상황을 해석하고 문제를 짚으며 당원이 일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과 토론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 정당은 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고 그 역할을 김씨를 비롯한 유튜버가 대신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