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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혐오 시대의 기자들

무명의 더쿠 | 08-27 | 조회 수 56146
장슬기 기자가 쓴 지난 20일자 기사 <질문 조롱하는 유튜버, 위축되는 대통령실 기자들>을 읽었다. 이재명 정부 들어 대통령실 브리핑을 생중계하면서 예견됐던 부작용들이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대통령실 VS 기자'라는 대결 구도가 부각되고, '기레기 참교육' 하는 식의 기자를 향한 멸칭이 난무하는 쇼츠가 제작된다. 댓글로는 기자의 '수준'을 의심하거나, 기자의 질문을 두고 '내로남불'이라며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는 식의 조소가 넘실댄다. 여기에 여성 기자들에게는 성희롱성 '얼평'(얼굴 평가)까지 추가된다.

[관련기사 : 미디어오늘) 질문 조롱하는 유튜버, 위축되는 대통령실 기자들 (8월20일)]

대통령실과 기자는 대결 구도일 때도 있지만, 보통 기자는 여론을 대리해서 질문하는 것이지 기자의 질문이 곧 기자의 의견은 아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에 답하자면 당연히 기자와 소속 언론사에게도 요구되는 윤리가 있지만 공직자, 그 중에서도 대통령실에 요구되는 윤리와는 같을 수 없다. '자격 없는 기레기'라는 프레이밍은 진영 논리에 따라 무한정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맥락이 거세되는 짧은 쇼츠는 오직 한 가지, '기자 내려치기'를 향해 달려간다.


사이버 불링이 횡행하는 세상에 자기 이름과 얼굴을 내걸고 일하는 기자라는 직업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최근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61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기자 10명 중 1명은 최근 1년 새 사이버 불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괴롭힘 형태(중복응답)로는 인신공격(84.1%)과 욕설(72.4%) 순이었다. 여성 기자들의 경우 '성희롱'이라는 응답도 43.7%였다(반면 남성 기자들의 성희롱 피해 경험은 4% 수준이었다).

논문 '젠더 기반 온라인 폭력으로서 여성기자 괴롭힘의 양상과 대처 전략'(김창욱·신우열)을 보면 반언론 시대에 여성 기자가 겪는 고충이 여실히 드러난다. 논문에서 한 여성 기자는 자신이 겪는 온라인 폭력을 '기자혐오+여성혐오'라는 이중의 혐오로 명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여성 기자들은 악성 댓글과 이메일, 전화 등의 여성혐오성 메시지 수신, '좌표찍기' 형식의 온라인상 신상 공개 및 조리돌림, 실제 대면 상황에서의 폭언 같은 오프라인 공격 등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괴롭힘들은 당연히 피해를 낳는다. 가장 먼저는 두려움으로 인한 무력감이다. 나의 취재 행태와 행동 거지를 스스로 단속하는 한편, 기사 작성 시에도 자기 검열을 거듭하게 된다. 여자라는 이유로 더 발설하지 못하는 고충들도 있다. 회사에 괜히 말했다가 나를 포함한 여성 기자들의 취재 범위가 제한될까봐 더욱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언론사 내에는 사이버 불링이나 취재원의 부당한 이의제기 등을 되레 훈장처럼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문화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은 훈장이 아니다. 괴롭힘은 상처가 될 뿐이며, 환부는 어떻게든 곪아서 터지게 마련이다.

브리핑 생중계 영상에 대한 왜곡된 짜깁기 등을 두고 대통령실에서는 뒤늦게 조치에 나섰다. KTV에서 제공하는 영상에 "브리핑 영상을 자의적으로 편집, 왜곡하여 유포하는 행위는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라는 자막을 넣기로 한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나 기자협회 등에서도 사이버 불링 피해를 겪는 기자들을 위한 나름의 지원책을 갖추고 있다. 언론진흥재단에서는 보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분쟁이나 온라인 괴롭힘에 대응한 법률상담과 자문을 실시하고 있다. 기자협회와 공동으로 1인당 연간 40만 원 한도 내에서 언론인 심리치료 지원 사업도 시행 중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나는 개별 언론사들에 묻고 싶다. 자사의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을 향한 사이버 불링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고. 대통령실 뿐 아니라 기자들을 향한 전방위적인 온라인 괴롭힘과 여성 기자들을 향한 이중 혐오에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느냐고. 앞서 언급한 기자협회 설문조사에서 소속 언론사가 괴롭힘 피해에 적절한 대응을 했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응답은 8.8%에 불과했다. '대응 없음'이 61.2%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앞선 논문 인터뷰에서도 언론사들의 가장 흔한 대처는 '방임'이었다. '방임'이란 '괴롭힘의 존재 여부는 알고 있으나 문제 발생 시 적극적으로 돕지 않고 피해자 스스로 대처하도록 방임 또는 방치하는 유형'이라고 논문에는 적혀 있다.

일차적으로는 언론사서부터 자사 기자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방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렇게 고통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여야 피해 현황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이후에는 회사 차원의 매뉴얼 마련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내가 몸 담은 회사가 나의 피해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곳이어야 기자들이 현장에서 소신껏 취재하고 성역 없이 물을 수 있다. 이는 노동자의 노동권 확립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언론사 내부의 분위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언론진흥재단이나 기자협회, 언론노조의 조력은 개별 기자에게 가닿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한 가지, 선배들께 드리는 당부다. 피해를 호소하는 후배들에게 '나때는'은 안하셨으면 좋겠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고, 당시의 '선배'와 지금의 '후배'도 다르다. (그렇게 얘기하는 선배들조차 기자 생활하며 겪은 크고 작은 상처들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사는 경우를 많이들 봤다.) 대통령실 브리핑 생중계에 부쳐 "취재와 기사는 공격적으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언론사가, 정작 구성원들의 피해에는 수세적이지 않았는지 자문할 때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31507?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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