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농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투쟁을 벌였습니다. 경찰에 가로막혀 밤샘 대치가 이어진 남태령 고개엔 이들을 응원하는 시민 수천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른바 ‘남태령 대첩’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2030 여성들이었습니다. 탄핵 촉구 집회에서 흔들었던 응원봉을 다시 꺼내 들고, 구호와 떼창으로 추운 겨울밤을 뜨겁게 데웠습니다.
열기는 남태령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에게도, 고공농성 중인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아프고 병든 노동자들에게도 그 뜨거운 마음이 전달됐습니다.
■ 조선소 하청 노동자에 후원금 봇물…“제 1시간을 드릴게요”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속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는 노조 활동 보장과 임금체불 문제 해결 등을 촉구하며 지난달 20일 단식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지난달 29일부터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으로 농성장을 옮겨 본격 투쟁에 나섰는데, 예상치 못한 비상계엄 사태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다시 거제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농성과 함께 시작했던 파업기금 모금도 점차 관심이 줄어들며 지난 21일엔 후원자가 하루 7명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남태령 시위를 계기로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12월 22일 70여 건으로 늘어난 후원은 X(엑스·옛 트위터)와 더쿠 등에서 모금 관련 게시글이 공유되며 23일 400건, 24일 2,000건, 25일 400건으로 폭증했습니다. 그야말로 ‘남태령의 기적’입니다.
눈에 띄는 건 입금자명이었습니다. 대부분 2030젊은 여성이나 학생들로 추정되는데, 금액도 5,000원 이하의 소액이 많았습니다.
‘남태령에서 온 소녀’, ‘남태령에 못 간 마음 여기’, ‘남태령 연대’, ‘남태령 대첩 승리의 기운’ 등 지난 주말 남태령 시위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 가장 많았습니다.
‘저의 1시간을 드릴게요’, ‘오늘치 커피 대신’, ‘밥 안 먹고 모은 돈’, ‘제 1시간 시급’, ‘아직 학생이라서 죄송합니다’, ‘용돈 받고 또 보낼게요’ 등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도 소액 응원을 보낸 이들 역시 많았습니다.
‘조선공의 딸’, ‘하청직원의 딸’, ‘노동자의 딸’, ‘아버지의 빚을 조금이나마’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고, 여성, 청년,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도 엿보였습니다.
‘언젠가 해가 뜰 것’, ‘같이 살아가요’, ‘힘내세요. 뒤에 있어요’ 등 따뜻한 마음도 읽혔습니다.
이김춘택 지회 사무장은 “어떻게든 저희 투쟁을 알리려고 지회장이 서울에 올라가서 단식을 하기도 했는데 관심을 좀 받으려던 찰나에 계엄이 터져서 아무것도 못 하고 내려왔다”며 “그러던 차에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반갑고 기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김 사무장은 “후원자분들이 그냥 후원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파업이 무슨 내용인지, 노조법 2·3조 개정이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고 올린다고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어마어마하고 역동적인 사회 운동이 2016년처럼 대통령을 바꾸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 고공농성 노동자에겐 ‘생수 연대’…“덕분에 더 나은 노동환경 당연해졌다”
뜻밖의 ‘생수 폭탄’을 받아 든 이들도 있습니다. 일본 니토덴코의 자회사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공장 옥상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1년 가까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정혜·소현숙 두 여성 노동자입니다.
농성장이 단수되면서 물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알리자, 이름 모를 이들이 보낸 생수가 줄줄이 도착했습니다.
한 시민은 생수를 보내며 “신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드시겠지만, 끝까지 투쟁하셔서 끝내 이기셨으면 좋겠다”며 “지회 여러분들이 있어 저희와 같은 ‘다만세’(다시만난세계)를 부르는 응원봉 소녀들은 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목소리 내는 것을 당연히 여길 수 있게 자랐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지영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장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응원을 받으면서 투쟁하는 것에 대해서 되게 뿌듯하고 열심히 싸워서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여성 해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내년 1월 8일이면 꼭 1년을 맞습니다.
■ ‘노동자 병원’에 나흘 동안 10억 원 모여…한때 서버 마비
‘국내 최초 노동자 병원’을 표방하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에는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 동안 10억 원 넘는 후원금이 입금됐습니다.
위원회는 영세사업장·비정규직·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나 자영업자 등 일하다 다쳐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목표액은 50억 원이었는데, 나흘 동안 모금액의 20%가 넘는 금액이 모인 겁니다. 높은 관심에 한때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건립을 추진 중인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너무 감사하고, 탄핵 이후 우리 사회가 좀 더 약자들,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하는 사회가 되겠다는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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