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youtu.be/WTPi5sLv2HM?si=vx9F-CGujV1nd7Ds
2:05부터
인스타 릴스 내리다가 본건데 개슬퍼서 올려봄 ㅜ
썸네일
ㅊㅊ ㅇㅅ
엄마라고 달려갈때부터 눈물 ㅜㅜ
영상 다 봐서 부연설명 하자면 아들이 7살때 필리핀을 갔는데 그때는 자기가 그냥 미국 2주정도 놀러? 가는 줄 알았다고 함
그래서 공항에서 엄마랑 외할머니가 그렇게 많이 우는걸 이해를 못했다고ㅠ나중에 커서는 한국가게같은데 갈때마다 엄마 소식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지만
개인정보법 강화되서 알 길이 없었다구 함ㅠ
진짜 엄마 하면서 달려가는거 30대가 아니라 6,7살 애기가 엄마한테 달려가는거랑 똑같음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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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검색되길래 추가
약 1년 전 '엄마의 봄날'에 특별한 사연이 들어왔다. 바다를 건너에 있는 머나먼 나라에서 아들이 보내온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달라는 간절한 사연이었다. 신청자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줄리어스 오 마나(38세, 한국 이름: 오준영)로, 잃어버린 엄마의 이름은 오금님(59세)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난 오준영이라고 합니다. Can you please help me to find my mother(엄마를 찾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로 시작된 편지, 한 청년이 자신의 엄마를 찾아달라는 간절한 요청이 담겨있었다.
사연 신청자는 오준영 씨(38세)로 6세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의 품에서 떨어진 뒤, 필리핀 국적의 아버지를 따라 필리핀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매일의 하루 끝에서 마음에 걸리는 두 음절 '엄마', 아들은 마음속 깊이 짓누르고 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꺼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엄마의 봄날' 제작팀에 사연을 보내왔다.
지금은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가정을 이뤄 어엿한 가장이 됐지만, 그의 성장기 시절은 처절했다. 고정적인 수입 없이 베이스를 연주하던 아버지는 여섯 살의 어린 준영을 필리핀 마닐라의 빈민가에서 키웠다. 톤도 지역에 정착해 산 어린 준영은 거리를 전전하며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팔아 겨우 생계를 해결하며 버텼다.
위험한 유혹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중에 자라면 엄마에게 떳떳한 아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준영 씨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농구를 하며 이를 악물고 힘든 현실을 이겨냈고, 기적적으로 농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이후 필리핀에서도 높은 경쟁률로 되기 힘들다는 경찰에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준영 씨는 성공한 후 엄마를 찾겠다는 마음이었다. 인생 역전에 성공한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연락할 길이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
제작진은 제보를 받고 바로 취재에 돌입, 결정적인 단서를 찾기까지 1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30여 년의 헤어진 기간과 필리핀과 한국의 거리 2,630km, 시공간을 넘어 높게 쌓인 이별의 벽을 극복하기까지 아들 준상 씨와 제작진의 마음이 타들어 갔다.
다행히 준영 씨가 어릴 적 헤어질 때 엄마에게 받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동안 고이 갖고 있던 돌사진, 유치원 졸업사진과 과거 주소가 적혀 있는 출생증명서, 주민등록표 등을 제작진에게 보내왔다. 고심하던 제작진은 해당 자료를 토대로 사람 찾기에 일가견이 있는 박수림과 엄마 찾기에 돌입했다.
박수림은 준영 씨가 엄마와 살았던 당시의 행적을 따라가 봤다. 준영 씨의 고향인 경기도 지역 중에서도 다문화 인구가 많은 동두천의 외국인 관광특구부터 시작해 엄마의 성이 '오' 씨라는 점에 착안해 '오'로 시작되는 음식점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엄마가 살았던 지역의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펼쳤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이 강화돼 예전처럼 사람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https://www.starnewsk.com/news/articleView.html?idxno=4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