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코너] 고급 풀세트 불티
마포대교를 달리는 러너들. /박성원 기자
직장인 정모(29)씨는 최근 서울 한 러닝 크루(달리기 모임)에 가입해 첫 모임에 나갔다가 기가 죽었다. 상당수 회원이 유럽산 고글과 스카프, 산길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에 적합한 최고급 전문 의류와 러닝화로 ‘풀 착장’을 하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잘 포장된 한강공원을 달리면서 체력을 기를 요량으로 러닝 크루에 가입했던 정씨는 “달리기를 하는 데 이렇게 비싼 장비들이 필요할 줄은 차마 몰랐다”고 했다.
달리기는 그간 맨몸에 운동화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운동’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 달리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일부 동호인은 선수용 장비를 경쟁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인기 있는 수입 러닝화는 품귀 현상까지 빚어 50만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상·하의도 인기를 끈다. 프랑스의 한 디자이너 브랜드는 반팔이 50만원, 반바지가 35만원인데도 품절이다. 고글도 50만원 안팎이다. ‘풀 착장’을 하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장비들이다.
일부 동호인은 “비싼 장비는 그 값을 한다”고 말한다. 의류 무게가 안 입은 듯 가볍거나 통기성이 좋아 장거리 달리기 컨디션에 도움이 된다거나, 신발 쿠션에 얇은 카본 판이 함유돼 발이 지면을 디딜 때 받는 충격을 줄여준다는 식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에겐 그리 의미가 크지 않은 요소”라고 한다.
러닝 크루 특유의 ‘인증샷 문화’가 이 같은 고가 상품 구매 열풍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다. 이들은 전문 작가를 불러 달리기 장면을 찍거나 단체로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직장인 러닝 크루 소속 이모(29)씨는 “나 같은 일반인에게 사실 선수용 신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주변에서 ‘이 정도는 신어야지’ 하니까 사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등산·자전거·골프에 불었던 ‘장비 열풍’이 달리기로 옮겨 왔다는 분석이 있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한국인들의 스포츠 열풍은 ‘남들이 다 사니까 나도 산다’는 식의 집단 심리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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