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생리대를 입는 체험을 해 달란 독자 제안.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었다.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서 '생리'를 검색했다가 이런 글이 나온 걸 보고, 늘 그랬듯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왜 생리 참아볼 생각을 못 해. 생리 마려우면 화장실 가는 게 상식인데 그거 하나 못 해서 기저귀 차는 게 충격적!"
체험 설계부터 고민이었다. 실시간으로 피가 계속 나오게 할 수 없으니까. 그걸 경험해야 난감한 상황을 제대로 알텐데. 벌써부터 한계를 느꼈다. 대신 점성이 있는 토마토 주스를 흠뻑 적셔서, 3시간마다 생리대를 갈기로 했다. 그런 방식으로 4일 내내 체험했다.
올리브영에 가서 ㄹ생리대를 샀다. 28개에 1만1000원(중형 생리대 기준)이었다. 중형, 대형은 나오는 생리량에 따라 고르는 거다(모르는 남성이 꽤 많다). 양이 많은 첫째, 둘째 날은 대형, 그다음부터는 중형, 이렇게 쓰는 식이다.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다. 이번에 나흘 체험하며 20개 정도를 썼다(약 7800원어치). 여기에 월경통증을 줄이기 위한 진통제나 핫팩 등을 포함하면 월경을 위한 비용이 훨씬 늘어난다.
회사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생리대를 꺼냈다. 팬티를 벗었다. 생리대 뒷면을 뜯고 팬티에 부착하면 되었다. 처음엔 똥꼬에 가깝게 붙였다가, 잘못 했단 걸 깨달았다. 생리혈이 나오는 곳에 넓은 부분을 붙여야 했다. 성기에서 피가 나온다고 상상하고 그쪽에 생리대를 붙였다. 생리대가 흠뻑 젖을 때까지 토마토 주스를 부었다.
팬티에 붙이고 들어 올리자, 중요 부위에 축축한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으으윽, 하고 나도 모르게 고통 섞인 탄성이 나왔다. 바로 벗어서 뜯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토마토 주스도 이리 찝찝한데 하물며 피덩어리가 나온다면 어떨까.
생리대를 바꿔줘야 한다. 피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월경 초반엔 2~4시간에 한 번은 갈아야 한단다. 체험은 토마토 주스를 부은 거라 까먹을까 싶어 알람을 맞췄다. '생리대 교체'라고 써놓은 알람이 울릴 때 뒤에 선배가 지나가서, 황급히 껐다.
알람이 울렸는데 생리대를 갈러 가기 귀찮아서 좀 더 뭉개고 있어 봤다. 그럼 안 된단 걸 금세 알게 됐다.
팬티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바지가 있어 괜찮겠다 싶었는데 웬걸, 뚫고 나왔다. 앞에, 옆에 앉은 후배에게 냄새가 배달될까 싶어 신경 쓰였다. 별수 없이 생리대를 갈게 되었다.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는 거였다. 토마토 냄새가 난다(실제론 피 냄새일 거다), 생식기쪽이 견딜 수 없이 꿉꿉하다, 생리대를 갈 타이밍이 지났다. 그리 여성들은 월경혈이 새어나올까 계속 불안할 거였다.
월경하는 사람 10%는 몸도 못 움직이는…'월경통'
"아랫배를 미친 듯이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이랄까, 밑이 빠지는 고통이야. 앉아도, 누워도, 서도 계속 아파. 학창 시절엔 양호실에 누워 있어야 했어. 비슷한 학생들이 옆 침대에 있었고."
곁에서 내내 조언해준 아내의 말이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월경통이 그렇다고 했다. 통증이 적은 여성은 '축복'이라 할 정도라고. 월경할 것 같으면 두려워하며 진통제를 미리 먹던 아내였다. 핫팩을 흔들어 건네면 아랫배에 계속 대고 있었다. 밤에 시작될 땐 잠을 거의 설치곤 했었다. 그 정도로 아파했다.
몸 안쪽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체험할 순 없겠으나, 아랫배 통증을 겉으로라도 경험하고 싶었다.
이틀째엔 생리대를 착용한 상태로, 저주파 기계를 아랫배에 부착했다. 마사지 기능을 설정하고 단계를 정하면 되었다. 총 15단계인데, 경험한 후기를 보니 7~8단계가 생리통과 그나마 비슷하다고 했다.
배를 강하게 조이는 자극에 나도 모르게 소릴 질렀다. 통증을 그리 느껴본 적 없는 연약한 부위란 걸 새삼 알았다. 아내는 바라보며 걱정하면서도 크게 웃었고, 웃으면서도 그만하라고 염려했다.
8단계로 올리니 서 있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아내가 그만하라고 했다. 고작 15분 만에 스위치를 편안히 끄면서, 스위치로 끌 수도 없는 월경통에 대해 짐작했다. 진통제로도, 핫팩으로도 도저히 끌 수 없는 통증에 대하여.
4일간 체험을 마친 지금, 그 말을 번복하고 싶다. 생각이 달라졌다. 물리적인 체험만으로도 이리 힘든데, 체험할 수도 없었던 '호르몬 변화' 같은 게 더해져 내 기분조차 어쩔 수 없게 된다면. 그 얼마나 괴로울까. 예민한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다들 이 과정을 알았으면 싶다고. 그리 힘든 거였구나, 받아들였으면 싶단 생각이었다.
에필로그(epilogue).
처음 생리대를 본 건 초등학교 때였다. 피 묻은 걸 보고 엄마가 병에 걸린 줄 알고 속앓이했던 기억. 좀 더 자라고, 그게 기저귀가 아니라 생리대란 걸 알고 나선 애써 모른 척하는 걸로 대신했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생리대 체험을 마친 뒤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번에 생리대 체험했어. 너는 별걸 다 한다.
27살에 날 낳기 위해서. 그 한 번의 임신을 위해 엄마의 자궁은 10대일 때부터 약 168달이나 월경 때문에 힘들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월경에 대해 좀 더 자주 얘기했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해 묻는 게 아주 처음이었다.
다 지나가버린 그 시절에 편히 대화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얘기가 오갔을까.
엄마 오늘 월경하니까 너희들끼리 밥 차려 먹어. 나 좀 누워 있을 거야. 엄마 진통제 사다줄까? 핫팩 뜯어놓았으니까 붙여. 엄마는 이제 월경 끝났어. 완경 축하해, 엄마. 홀가분한데 한편으론 또 헛헛하네. 그럴 거 같아, 나라도. 40년간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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