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당일 기권표를 돈으로 매수해서 특정 후보의 표로 둔갑시키고, 투표소에 배치된 ‘깡패’들이 참관인을 내쫓고, 특정 당원이 보는 앞에서 유권자가 투표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1960년 3월15일 대한민국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위해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이 전국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당시 당선인(?)의 득표율이 100%를 넘어 오히려 줄여서 발표했다고 하니 선거 조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만하다. 3.15부정선거 사태는 온 국민의 공분을 샀고 이는 한 달 뒤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시민들의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 첫 줄에 새겨졌다. 결국 이승만은 열흘도 지나지 않아 하야한다. 대통령직에 들어선 지 12년 만이었다.
제주도민에게 이승만은 70여년 전 제주에서 자행된 대규모 학살의 주범이다. 제주도를 ‘빨갱이섬’으로 몰아 섬 공동체를 파괴하다시피 했다. 갓난 자식이 눈앞에서 창에 찔려 죽는 모습을 봐야했던 어머니의 고통을, 밭일을 하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가 시신이 돼 집 앞마당에 버려진 모습을 봐야 했던 소년의 공포를,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기꺼이 희생시켰던 인물이다.
그렇게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이승만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기적의 시작>이 오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지상파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보수 성향 종합편성 채널도 아닌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공영방송 KBS 채널을 통해. 해당 영화는 작년 말에 개봉, 올해 초 재개봉 등을 통해 관객 수 2만여명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내부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달 성명을 내고 “<기적의 시작> 방영 결정은 <몰락의 시작>”이라며 “한국 현대사의 논쟁적 인물 이승만을 최소한의 균형 감각과 성찰 없이 오로지 칭송과 미화로 그린 영상”이라과 거세게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 대통령 한 분의 지대한 업적으로, 3·15부정선거와 4·19혁명은 아래 사람들이 잘못해서 벌어진 ‘누명’이며 하야는 ‘위대한 결단’으로 포장하고 있다”며 “지나친 기독교적 세계관도 문제다. 이승만을 ‘기적적 인물’, ‘메시아적 초인’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부서 실무진들은 △인터뷰이들이 극우 인사로 편중된 점 △이승만과 기독교가 지나치게 미화된 점 △제주4·3, 3·15부정선거, 4·19혁명 등에 대한 시각이 일방적인 점 △관객 수에 비해 지나치게 구매 가격이 높은 점 등 해당 영상 방영에 대한 우려 사항을 보고했다”며 “하지만 편성본부는 해당 국장이 직접 기안을 하고 편성책임자인 본부장이 전결하는 기이한 형태로 구매를 결정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누구를 위하여 이 다큐가 방영되어야 하는가. 시청자들인가, 윗선의 그 누군가인가”라며 “공영방송 KBS콘텐츠 경쟁력을 위해서인지, 자기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서인지 스스로 자문해 보길 바란다”고 해당 영상 방영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판권을 사들이고 전국적으로 방영하는 일을 통해 KBS가 실현하려는 시청자 수신료의 가치는 무엇인가. 시청자들이 던져볼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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