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상반기, '파묘' 최민식·'범죄도시4' 마동석만 웃었다. '잘생김 대명사' 강동원·박보검도, '최연소 1억 관객 달성' 하정우도, '명품보다 구씨' 손석구도 안 통했다.
이쯤 되면 스크린이 한국 영화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연말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천만 돌파 후 새해부터 '파묘'(감독/각본 장재현), 5월엔 '범죄도시4'(감독 허명행)까지 '쌍천만' 흥행이 터졌으나 스타들을 내세워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상업 영화 대다수가 맥을 못 췄다.
충무로 기둥들마저 흥행 쓴맛을 봤으니, 말 다 했다. 1월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야심작 '외계+인' 2부는 2022년 1부(154만 명) 이후 설욕전을 노렸지만 143만 명 동원에 그쳤다. 이는 두 편 합쳐 총 제작비 약 700억 원이 투입된 거대 프로젝트로 류준열·김태리·김우빈·이하늬·염정아·조우진·김의성·진선규 등 초호화 캐스팅 라인업을 자랑한 바. 그럼에도 처참한 흥행 실패로 퇴장, 여러모로 영화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에 빛나는 '월드 스타' 윤여정 또한 흥행 부진의 늪을 피해 가지 못했다. 2월 7일 선보인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가 손익분기점 약 200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36만 명을 기록한 것. 이 역시 윤제균 감독의 JK필름 제작에 윤여정, 유해진, 김윤진, 정성화, 김서형, 다니엘 헤니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대작이었음에도 씁쓸한 성적을 냈다.
같은 날 개봉한 조진웅과 김희애 주연의 '데드맨'(감독/각본 하준원)도 흥행은 물론, 작품성 면에서 울상을 지은 건 마찬가지. 손익분기점 약 180만 명에 턱없이 부족한 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3월엔 '대세' 손석구가 '댓글부대'(감독/각본 안국진)로 출격했지만 손익분기점(약 195만 명) 절반 수준인 97만 명을 모으며 퇴장했다.
더욱이 강동원과 하정우는 '믿고 보는 배우' 명성에 걸맞지 않게, 충무로 흥행 가뭄을 부추기고 있어 안타까운 노릇이다. 각각 5월 '설계자'(감독/각본 이요섭), 6월 '하이재킹'(감독 김성한)으로 컴백했으나 예년과 달리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다. 특히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열일' 행보를 펼치고 있지만, 매 작품 스코어가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
강동원은 코로나19 시국 이전인 지난 2018년 '골든슬럼버'(감독 노동석) '인랑'(감독 김지운)부터 2022년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년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 이번 신작 '설계자'까지 줄줄이 흥행에 참패해 긴 침체기를 겪고 있다. 지난 6년간 6편의 영화를 선보인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연상호 감독의 '반도'(2020) 단 한 작품에 불과하다.
하정우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2018년 '신과 함께-인과 연'(감독/각본 김용화), 2019년 '백두산'(공동 감독/각본 이해준·김병서)을 제외하면 그간 개봉작들 성적이 모두 아쉽기 그지 없다. 2018년 'PMC: 더 벙커'(감독 김병우), 2020년 '클로젯'(감독/각본 김광빈), 지난해 '비공식작전'(감독 김성훈)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 등이 손익분기점 고지를 못 넘긴 채 퇴장했다. 6월 21일 개봉한 '하이재킹' 또한 외화 '인사이드 아웃2'에 밀린 만큼, 손익분기점 약 300만 명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충무로 젊은 피', 대세 스타 박보검의 복귀작이라 한들 별다른 후광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게 냉정한 극장가의 현실이다. 앞서 5일 개봉한 '원더랜드'는 박보검이 지난 2022년 만기 전역한 뒤 처음 선보인 작품이자 김태용 감독-탕웨이 부부의 두 번째 협업작으로 일찌감치 큰 주목을 이끈 바. 게다가 박보검과 '국민 첫사랑' 수지의 커플 연기, 정유미·최우식·공유의 열연까지 화려한 볼거리를 예고했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원더랜드'는 '요란한 빈 수레'에 지나지 않아, 62만 명 수준에서 만족해야 했다. 손익분기점은 290만 명으로, 100만은커녕 60만 명대를 겨우 넘기고 안방극장(VOD)으로 직행하는 굴욕을 맛봤다.
이처럼 2024년 상반기 상업 영화들 성적을 살펴보면, '톱배우=흥행 보증 수표' 공식은 이제 옛 말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흥행은 차치하더라도 작품성만 두고 따져봐도 관객들에게 진정성 있게 닿은 영화가 많지 않다는 거다. 스타성에만 기댄 안일한 만듦새로 관객들의 발길을 뚝 끊게 만든 셈이다.
대세는 '안방 1열', OTT·유튜브 등 플랫폼이라고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영화가 고프다. 한국 영화 위기론마저 뚫은 마니아 장르인 오컬트물 '파묘'의 천만 달성이 말해주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1월 '시민덕희'(감독/각본 박영주), 2월 '소풍'(감독 김용균), 5월 '그녀가 죽었다'(감독/각본 김세휘)가 대작들 틈바구니 사이에서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작품의 힘을 발휘, 잔잔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시사함은 물론, 영화인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기임을 나타낸 상반기 영화계다.
김나라 기자 (kimcountr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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