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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아나운서의 '해맑음', 이젠 다르게 보인다

무명의 더쿠 | 03-04 | 조회 수 89133
지난 2월 23일,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아래 <나혼산>)는 김대호 아나운서 일가친척이 설 명절을 보내는 풍경을 방송했다. 

김대호 아나운서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친척들의 박수세례가 이어졌다. 예능 신인상 수상 축하박수였다. 일가 친척이 잡힌 첫 화면이었는데 성인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잠깐씩 성인 여자들이 카메라에 잡힐 때도 있었다. 그들은 주방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누가봐도 종일 일한 몰골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넓은 마루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남자들과 대조적이었다. 

어른 할아버지가 몇 대손을 기억하라며 강조할 동안 상차림이 시작됐다. 상차림이 시작되는 순간 그 말 많은 <나혼산> 패널들은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고 얼굴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모든 식구들이 일을 '분담'하기에 상차림이 빠르다고 해맑게 말했다.  

말문이 막힌 패널들
 

얼핏 봐도 성인만 30명이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남자들이 접시 옮기는 화면을 보고 '분담'이 잘된다고 했다. 30인분 식사 준비를 하면서 고작 접시를 나르는 일을 '분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많은 음식 중 한 가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분담'했던 남자가 과연 있을까.

패널들이 입을 딱 벌린 채 다른 멘트를 못 찾고 있는데 김대호 아나운서는 또 해맑게 '가족들끼리 사이가 좋아서 명절을 기다린다'고 한 술 더 뜬다. 명절 당일 오후까지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들의 의견도 들어봤냐고 묻고 싶었다. 


 
김대호 아나운서는 직장 내 회식 문화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다른 사람들과 눈도 안 마주치고 회사를 빠져나와 본인만의 여가생활을 즐겼다. 대중들은 그 당당한 모습을 '바람직한 K-직장인'이라며 부러워했다. 건강한 개인주의로 보였던 그의 행보가 '나만 아니면 돼'의 이기주의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다. 딱히 힘들 일 없는 명절 모임에서는 모두와 눈맞춤하는 해맑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패널로 나온 코쿤이 며느리들을 보며 '진짜 영웅들'이라고 할 때 김대호 아나운서는 말이 없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 하는 역지사지를 정작 당사자는 못한다.     

해맑음이 다르게 보일 때

'그런 명절문화를 김대호 아나운서 혼자 만들지도 않았을 텐데 뭐 그리 예민하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연하다. 아직 그는 중간 서열이라 집안 문화를 주도할 힘이 없다. 서열도 안 되는데 무조건 바꾸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에게 문제 의식이 없었다는 게 아쉽다.

2024년에 남의 집 제사를 위해 내 집에 못가고 종일 일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이게 이상하다는 문제 의식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해맑은 모습으로 방송을 할 수 있었을까. 해맑음은 보통 긍정의 의미로 쓰이지만 이번 <나혼산>의 해맑음은 '문제의식 없음'을 증명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대한민국 문화에 역행하는 김대호 아나운서의 행보를 나도 한때는 응원했다. 남들이 부르짖는 - 아파트, 좋은 차, 명품 등 - 좋은 것들이 굳이 내게 필요하지 않다며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던 그가 멋있었기 때문이다. 김대호 아나운서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해 주관적인 행복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많아져야 이 사회의 소모적 경쟁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서 그의 영상 조회수 올리는데 나도 보탬이 됐다.

그런데 이제 그의 영상을 볼라치면 내 부모님도 못 만난 채 모르는 남의 조상 제사상을 차리던 여자들 생각이 먼저 날 것 같다. 혼밥 할 때 볼 다른 영상을 찾아야겠다. 그런 해맑음은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47/000242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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