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 이름을 불러 준 그 목소리를 나는 문득 사랑하였다
물통 속 번져가는 물감처럼
아주 서서히 아주 우아하게
넌 나의 마음을 너의 색으로 바꿔 버렸다
다시는 무채색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심보선, 이별의 일
너의 표정은 차갑고
너의 음성은 싸늘하지만
너를 볼 때마다 화상을 입는다
박건호, 섭씨 100도의 얼음
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최승자, 기억하는가
만나면 분명
꽃인데
물러나면
그
자리에 눈물
가
득
지
네
구재기, 촛불
오래 울어본 사람은
체념할 때 터져 나오는
저 슬픔과도 닿을 수 있다
조은, 꽃
바람이 스쳐가면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파도가 지나가면
바다가 흔들리는데
하물며 당신이 스쳐갔는데
나 역시 흔들리지 않고
어찌 견디겠습니까
김종원, 한 사람을 잊는다는건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너의 추억을 나는 이렇게 쓸고 있다
유치환, 낙엽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한명씩 있다
너무 쉽게 잊기엔 아쉽고
다시 다가가기엔 멀어져 있는 그런 사람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너에게 빠지는 일,
천년을 거듭해도 온도를 잊는 일, 그런일
허연, 얼음의 온도
잠시 훔쳐온 불꽃이였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듯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최영미, 옛날의 불꽃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류시화, 소금인형
내 귀는 네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 어찌 네가 편할 것인가
그리고 내게
네 마음밖에 그 무엇이 들리겠는가
황인숙, 응시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이정하, 눈이 멀었다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에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름을 부르면
이름을 부를 수록
너는 멀리 있고
내 울음은 깊어져 간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건 아니지만
신달자, 너의 이름을 부르면
당신의 부재가 나를 관통하였다
마치 바늘을 관통한 실처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그 실 색깔로 꿰매어진다
윌리엄 스탠리 머윈, 이별
아, 저 발자국
저렇게 푹푹 파이는 발자국을 남기며
나를 지나간 사람이 있었지
도종환, 발자국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류시화, 물안개
이별보다 더 큰 슬픔은
이별을 예감하는 순간이며
당신의 부재보다 더 큰 슬픔은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당신의 마음은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같이 있으면서도 늘 내 것이지 못한 사람아
너를 보면 눈물이 난다
박성철, 너를 보면 눈물이 난다
먹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서안나, 모과
그리운 날엔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엔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는 날엔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나태주, 사는 법
이 몸과 영혼을 갈갈이 찢어
당신을 위해 쓰게 하시고
제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하소서
시몬느베이유, 헌신의 기도
출처 :*여성시대* 글쓴이 : 봄 맞으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