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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MBC 취재팀이 직접 일하는 동안에도, 물류센터 안에서 '블랙'이라는 용어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부 퇴직자들은 블랙리스트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안다고 했습니다.
한 달 넘는 수소문 끝에, MBC는 쿠팡 블랙리스트로 추정되는 엑셀 문서 파일을 입수했습니다.
각종 암호로 표기된 이 파일엔, 쿠팡이 채용을 기피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빼곡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차주혁 기자가 문서의 내용을 분석해봤습니다.
◀ 리포트 ▶
MBC는 블랙리스트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쿠팡 내부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파일 제목은 ‘PNG 리스트’.
엑셀 파일로 정리돼 있습니다.
등록일자와 근무지, 요청자와 작성자에 이어, 이름과 생년월일, ‘원바코드’로 불리는 로그인 아이디, 연락처 순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등록 사유가 적혀있습니다.
사유1은 ‘대구 1센터’와 ‘대구 2센터’, 그리고 ‘두 개의 점선’.
암호같은 세 가지 이름이 붙혀져 있습니다.
사유2는 ‘폭언, 욕설 및 모욕’, ‘도난사건’, ‘허위사실 유포’, ‘고의적 업무방해’ 등 총 48종류입니다.
왜 파일 이름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PNG 리스트’일까?
취재팀이 추론한 결론은 ‘페르소나 논 그라타’.(PNG, Persona Non Grata)
외교전문용어로, 상대 국가의 특정 외교관을 거부할 때 사용하는 ‘기피인물’을 뜻합니다.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PNG 리스트’라고 기재돼 있고 이게 외교적 용어로서 '기피인물'이라고 본다고 하면 그 자체가 아마 블랙리스트하고 동일하다고 보이고, 양 자체가 굉장히 방대하네요. 근래 이런 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굉장히 좀 이 자체로 충격적이고요."
쿠팡이 거부하는 ‘기피인물’ 명단, 이런 추론은 ‘사유2’에 명확히 드러납니다.
‘정상적인 업무수행 불가능’ (4,432명)
‘건강 문제’ (542명)
‘직장 내 성희롱’ (210명)
‘반복적 무단결근’ (148명)
‘음주근무’ (17명) 등
쿠팡 입장에서는 채용을 꺼리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실제 이 명단에 오른 사람은 다시는 쿠팡에 채용되지 못했습니다.
[김00 /사유 : 정상적인 업무수행 불가능]
"작년부터 계속 일용직을 신청해도 다 떨어졌거든요. 곤지암이든, 동탄이든, 부천이든. 한 20번인가? 많이도 지원했죠."
[이00 /사유 : 비자발적 계약종료]
"안 되더라고요, 계속. 용인센터도 안 되고, 저기 광주센터도 안 되고, 이천센터도 안 되고. 대놓고 얘기를 했어요. ‘혹시 저 블랙 거셨냐고?’"
핵심적인 의문은 ‘사유1’이었습니다.
실제 근무했던 곳과 별도로, 왜 하필 ‘대구1센터’와 ‘대구2센터’로 표기했을까?
우선 ‘대구2센터’는 2023년 5월부터 리스트에 처음 등장합니다.
사유는 ‘6개월 내 웰컴데이 중복지원’으로 모두 동일합니다.
'웰컴데이'는 쿠팡 물류센터 근무 첫날 받게 되는 4시간 정도의 안내 교육 과정입니다.
얌체 지원자로 분류해, 6개월간 채용을 제한한 걸로 보입니다.
[최00 /사유 : 근무지 무단이탈]
"계속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웰컴데이’만 할 수가 있는 거죠. 오후에 딱 4시간 정도밖에 일을 안 하니까 ‘얘는 오후에 4시간만 일하려고 하는 거네.’"
문제는 ‘대구1센터’입니다.
2017년 9월 20일, PNG파일 1호 등재자로 기록된 최현숙 씨.
이날 이후 6년 넘게 한 번도 쿠팡에서 일하지 못했습니다.
등록 사유는 '폭언, 욕설 및 모욕’입니다.
[최현숙(가명)/1호 등재, 사유 : 폭언, 욕설 및 모욕]
"막 이름을 불러대더라고요. '왜 일을 안 하고 선풍기 앞에 있냐?', '지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속도가 느리대요. 제가 언제 폭언과 욕설을 했다고."
같은 날 PNG리스트에 오른 8명을 포함해, '대구1센터'로 분류된 사람은 7,791명.
이름이 등록된 순간부터 무기한 채용을 거부한 걸로 추정됩니다.
‘두 개의 점선’표시는 2021년 10월 31일부터 등장했습니다.
역시 이날 이후 최대 2년 넘게 리스트에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즉, 대구1, 2센터 등은 채용 제한 기간을 등급화한 암호로 추정됩니다.
2020년 퇴근 후 자택에서 숨진 고 장덕준 씨가 근무했던 곳, 바로 대구센터입니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누구도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문서를 만들지 못하도록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쿠팡은 이 ‘대구센터’를, 근로기준법이 금지한 ‘비밀 기호’로 활용한 걸로 보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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