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가 “카스를 잡겠다”며 야심 차게 선보인 맥주 신제품 ‘켈리’ 성적이 신통치 않다.
출시 초반에는 판매액이 빠르게 늘었다. 4월 46억원에서 5월 133억원, 6월 262억원까지 증가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여름 성수기가 지난해 9월부터다. 전월 대비 판매액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카스, 롯데아사히 등 타 브랜드 증가폭에 못 미치며 순위가 쳐졌다. 11월에는 171억원까지 쪼그라들며 하이트진로 발포주 브랜드 필라이트에 밀린 5위까지 내려앉았다. 목표했던 ‘카스 타도’도 멀어지는 모양새다. 카스와 60억원까지 격차를 좁혔던 테라와 켈리 합계 판매액은 지난해 12월 다시 80억원으로 벌어졌다.
처음부터 제기됐던 ‘카니발라이제이션’ 우려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제품이 기존 제품 점유율을 잠식하는 현상으로, 하이트진로의 경우에는 켈리가 기존 테라 매출을 깎아 먹었다는 의견이다.
맥주업계 관계자는 “음식점이나 주점 쇼케이스에 자사 제품을 채워넣기 위한 영업팀 간 경쟁이 치열하다”며 “카니발라이제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테라가 아닌 카스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데,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 입장에서는 이를 바꾸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켈리 출시 전 15%에 육박했던 테라 소매점 매출 기준 점유율은 5월 12%대로 줄어든 데 이어 12월에는 10.4%까지 떨어졌다.
급격히 시들해진 인기를 놓고 ‘마케팅 효과가 다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가장 많다. 이른바 ‘약발이 다했다’는 평가다. 하이트진로는 4월 켈리 출시와 함께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인기 스타였던 손석구를 모델로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해 2분기 맥주 부문 영업손실폭이 급격히 커지면서 마케팅비를 대폭 줄인 모습이다. 덕분에 3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자연스럽게 그때부터 켈리도 힘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이트진로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광고선전비는 19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7% 늘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주류 담당 애널리스트는 “단순 광고 홍보는 물론 유흥 채널을 놓고 오비맥주와 펼친 영업 전쟁에서 쓴 비용도 하이트진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켈리 띄우기에 쓴 액수가 워낙 크다. 지난해 마케팅 비용이 평소 대비 500억원 이상 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초반 공격적인 마케팅 덕에 켈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본다”며 “유흥 채널에서도 수요가 꾸준하다. 이제부터는 진짜 제품력 싸움”이라며 자신감을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갸웃하는 분위기다.
켈리의 애매한 제품 콘셉트가 발목을 잡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켈리는 기존 맥스를 대체하는 ‘올몰트’ 맥주다.
하이트진로는 묵직함과 청량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며 켈리를 내놨다. ‘부드럽게 강타한다’라는 카피 문구만 봐도 그렇다. 시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애매해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수제맥주업계 관계자는 “최근 맥주는 소주·와인 등과 함께 섞어 먹는 ‘베이스’ 역할이 더 중요해졌는데 올몰트 맥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며 “올몰트 맥주답게 아예 진한 향과 특유의 묵직함으로 승부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변수는 올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 맥주 시장 경쟁이다. 업계 1위인 카스가 여전히 건재한 데다 지난해 품절 대란을 일으킨 일본 ‘아사히 생맥주캔’ 후속작 ‘아사히 쇼쿠사이’가 올봄 국내 상륙한다. 지난해 11월 롯데칠성에서 선보인 신제품 ‘크러시’가 올 들어 본격 영업 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부담이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판국에 새 경쟁자가 계속 늘어나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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