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극심한 취업난에 은둔 심리
2021년 기준 53만8000명… 전체 5% 해당
코로나 거치며 3년 새 20만명이나 급증
日선 ‘화장실 혼밥’ 2009년부터 이슈로
고립 청년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 연 7조원
청년 심리적 고립 장·중년 이후로 이어져
전문가들 “별종·흔치 않은 일 취급 안돼”
사회적 관심·지원정책 마련 목소리 커져
#1. 영남권 한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A씨는 ‘혼밥’을 한다. 그런데 밥을 먹는 장소가 다른 사람과 좀 다르다. 교내 건물 화장실. A씨는 도시락을 사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먹기도 하고, 햄버거 같은 것을 변기에 앉아 먹으며 혼밥을 즐긴다. 화장실 혼밥에 대해 그는 해당 대학 진로심리상담센터에서 “코로나 시절 비대면 수업이 익숙해져서 이제는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며 “식당에서 혼자 먹자니 남들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생각해낸 게 화장실 혼밥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날 신경쓰지 않는 곳, 화장실 혼밥이 가장 맘 편하다”고 덧붙였다. 센터 상담사는 “코로나 이후 다른 사람과 관계맺기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더 늘어났다”면서 “이전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인사하는 법부터 알려줘야 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 최근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특이한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개강 첫날인데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다’는 제목이 붙은 변기 뚜껑 위에 올려진 편의점 도시락 모습이었다. ‘화장실에서 햄버거나 밥 먹은 적 있다’, ‘아무도 날 신경쓰지 않고 안 보이고 그런 게 좋았던 것 같다’, ‘비위생적이다’ 같은 댓글이 잔뜩 달린 해당 사진 작성자는 “(대학에) 복학하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 (밥을) 먹기 부끄러워서 화장실에 왔다. 이제 (화장실에서) 나가야 하는데 1학년 인싸(아웃사이더를 지칭하는 ‘아싸’의 반대말)들이 밖에서 떠들고 있다”고 적었다. 이런 ‘화장실 밥’ 풍경은 최근 인터넷 커뮤티니 게시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화장실 혼밥 즐기는 청년들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청년들에게 ‘화장실’이 심리적인 도피처가 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과 경기 침체, 청년들에게 퍼진 고립과 은둔 심리, 여기에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생긴 ‘거리두기’ 등이 화장실이라는 도피공간을 만들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을 살펴보면 2021년 기준 19∼34세 우리나라 청년 177만6000명 가운데 고립 청년은 53만8000명(5.0%)에 이른다. 고립·은둔 상태의 청년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크게 늘어났다. 직전 조사인 2019년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3.1%였다. 불과 3년 만에 20만4000명 정도 증가했다.
이런 수치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임신·출산·장애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집에만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2.4%다. 청년 인구에 적용하면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은둔 청년은 24만7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화장실이 정신적인 ‘도피처’가 됐다는 유명인의 사례도 있다. 가수 MC몽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화장실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는 “누군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이 그곳”이라면서 “대인기피증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를 둘 때쯤 늘 숨어 있거나 당시 혼자 집에서 멍 때릴 수 있는 공간이 그곳뿐이었다”고 전했다.
MC몽은 “토일렛. 누군가에게 가장 더럽고 누군가에게 가장 깨끗하게 씻을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몰래 숨어 울 수 있는 공간. 그냥 그래서 그렸고, 저 같은 사람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눈물을 닦아주고 행운을 건네고 싶은 그런 그림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와 있는 일본인들의 '벤조메시' 관련 글과 사진. 사회관계망 캡처
◆화장실 혼밥, 일본에선 이미 사회적 문제
일본에선 이미 화장실이 청년들의 도피처로 자리 잡은 상태다. 2009년쯤 ‘화장실 밥’으로 일컫어지는 ‘벤조메시(便所飯)’가 이슈가 됐다. 아사히신문 석간 1면 톱기사로 보도되면서다. 도쿄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 ‘변소밥’을 금지하는 벽보가 붙었는데, 대학 당국은 붙인 적이 없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일본인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쇼핑몰 등에 ‘화장실밥’을 금지한다는 문구가 있다는 사진, 다른 사람을 피해 벤조메시를 하고 있다는 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선 ‘화장실밥’의 이유를 친구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는 공포나 불안감, 스트레스에서 찾고 있다.
문제는 화장실을 찾는 청년들의 고립 등 심리적 문제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청년재단이 연세대 연구진과 함께 올 8월 발표한 ‘청년의 고립은 얼마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까요’ 보고서를 살펴보면, 고립 청년이 빈곤, 실업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를 통해 생계급여 등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연간 2082억원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의 고립청년 인구 34만명(3.1%)으로 추산한 수치다. 보고서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보다 일반적 상황에서의 비용을 추계하기 위해 2019년 수치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고립 청년은 고립되지 않은 청년에 비해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확률이 2.64배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를 1인당 연평균 소득 3740만원, 비출산에 따른 손실비용 등을 더해 계산하면 연간 6조7478억원의 경제적 비용 손실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비용도 발생한다. 청년이 고립되면서 앓을 수 있는 우울증, 불안장애,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의료비용을 추산하면 연간 최대 435억원, 최소 293억원이 쓰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모두 더하면 연간 6조9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보고서는 “코로나 기간 고립 청년 비율이 5% 증가했고, 이 수치가 계속 유지된다면 고립 청년으로 인해 쓰이는 비용은 11조6000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며 “청년 고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상당한 수준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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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883655?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