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페미니즘의 비밀 상징 / 한승훈
[세상읽기] 한승훈 ㅣ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현재까지도 “숨은 페미” 색출 작업이 한창이다. 지에스 계열사들의 과거 광고 이미지들은 물론, 여타 기업 광고물과 공공기관 홍보물에 이르기까지 조그맣게 벌어진 손가락 두 개가 보이는 모든 영역들이 **이 암약하는 근거지들로 지목되었다. 이 걷잡을 수 없이 과열된 현상을 비판하는 이들도 국내외 유명인사들의 사진과 해외 광고 이미지에서 해당 손 모양을 찾아내 “전세계의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란 말이냐”고 되물었다. 사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단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 손짓이 '****’의 표상으로 지목된 것은 그것이 한국 남성의 ‘작은 성기’를 조롱하는 맥락에서 이용된 전력 때문이다. 단기간에 구축된 이 전지구적인 데이터베이스가 오직 특정 국가 남성의 성기 크기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 잘 믿기지는 않는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그간 몇 차례 논란이 되었던 ‘일베 인증’ 사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대표적인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의 참여자들은 자신들을 상징하는 고유한 손짓을 공공 매체에 노출하고 이를 온라인상에 과시하면서 관심을 유도하는 행위를 해왔다. 그러나 두 사안은 몇 가지 지점에서 명백하게 다르다. ‘작음’을 뜻하는 두 손가락 손짓에 비하면, 일베 상징은 우연히 만들기에는 다소 복잡하다. 20세기 이후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는 마음먹고 그리지 않는 한 나타나기 어렵게 되었지만, 구 일본군의 욱일기와 닮은 무늬는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비교적 쉽게 발견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행위가 뭔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오직 위험을 감수하고 단행한 그 ‘성취’를 동료들에게 자랑하는 맥락에서뿐인데, 이른바 ‘미러링’ 사례 중에서마저도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속해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 인증’에 성공했다고 과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빈약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 숨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상징을 은밀히 노출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이렇게까지 쉽게 유포되는 것과 같은 현상은 종교사적으로 낯설지 않다. 그것은 각종 음모론에 등장하는 비밀결사들에 대한 상상과 대단히 닮았기 때문이다. 에릭 홉스봄에 의하면, 실제로 전근대의 반체제 조직들은 자신들의 강령과 야망을 표현하는 상징을 공유하며 서로를 확인하고 정서적 결집을 이끌어내었다. 여기에는 기호나 도상만이 아니라 인사 방법, 음성 구호, 암호, 손짓 등이 포함된다. 이런 이미지는 대중문화 속(“하일 하이드라!”)이나 ‘그림자 정부’에 관한 음모론(일루미나티의 눈동자 문양) 등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운동에서 이런 방식으로 상징을 사용하는 사례는 대개 배지나 깃발과 같은 ‘흔적’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은밀한 상징은 전문화되고 공개적인 근현대의 운동 환경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으며, 정말로 비밀을 유지해야 할 활동일 경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비밀 상징에 대한 도상학은 현실 속 반사회적 세력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되지 않지만, 강박적으로 그것을 색출해내려는 사람들의 집단적인 심성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전근대의 비밀결사들이 사용하였다고 믿어진 기호들은 흔히 주류 종교의 핵심 상징을 모독하고 있다는 혐의 때문에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작은 성기를 놀리는 손짓을 적대적인 비밀 세력의 상징이라 믿는 이들은 성기야말로 스스로의 존재와 권위를 증명하는 신성한 근거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남성들의 시민적 역량이 고작 자신들의 ‘그것’이 그렇게까지 작지는 않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데 집중되어서야 쓰겠는가.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45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