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호랑이 가죽' 쓰고 '굴'로 들어간 BTS 정국
28,777 210
2023.11.13 09:50
28,777 210

vWzAai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첫 솔로 앨범 '골든'의 타이틀 곡 '스탠딩 넥스트 유'를 처음 듣고 한 생각은 ‘작정했구나’였다. 

 

기타, 베이스, 드럼, 퍼커션, 신시사이저, 관악기 등 곡에 사용된 모든 소리를 대폭발시키며 웅장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노래는 곡의 메인 리프가 시작되는 순간 한 템포 숨을 고르며 숨겨둔 진짜 목적을 드러낸다. '스탠딩 넥스트 유'는 비트와 리듬, 멜로디 모두 뇌쇄적인 기운을 몇 번이고 덧발랐다. 그렇게 불길이라도 네 곁이면 뛰어들겠다고, 우리는 우리를 시험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살아남을 거라고 곡이 진행되는 내내 뜨거운 사랑을 토해낸다.

 

음악을 첫 단추로 한 정국의 야망은 뮤직비디오와 앨범을 통해 좀 더 구체화한다. 뮤직비디오 속 정국은 어떤 상황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바로 눈앞에 그토록 갈망하는 사람이 서 있어도 무대 앞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도 터질 듯한 에너지를 지그시 누른 채 느긋한 동작만을 유지하며 묵직한 시선과 손짓으로 화면을 제압한다.

 

숨 막히도록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요동치는 화자의 내면은 때때로 정제된 무대와 대비되는 단체 액션신이나 베이스와 드럼 소리에 맞춰 작렬하는 K팝 10년 경력에 빛나는 군무로 승화된다.

 

앨범은 좀 더 정성스럽다. 마이클 잭슨에서 위켄드까지, 아마 앨범을 듣는 사람의 연령대나 청취 이력에 따라 수많은 팝 아이콘이 번갈아 등장할 것이다. 앨범 발매 전 공개한 '세븐'과 '3D'로 크레이그 데이비드와 20세기 초 전성기를 구가하던 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소환한 것처럼 앨범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금의 팝 신을 한번쯤은 사로잡았던 다양한 요소가 고르게 분포돼 있다. 

 

레게 톤이나 아프로비트를 위시한 트렌디하고 이국적인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기타 리프를 동력으로 삼는 깔끔하게 똑떨어지는 팝, 깊은 곳에서 길어낸 절절함 어린 팝 발라드까지. 전곡을 영어로 소화한 정국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노래가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그에 맞는 창법과 목소리로 새 옷을 갈아입는다. 수록곡 가운데 '스탠딩 넥스트 유'와 '헤이트 유' 두 곡을 비교해 듣는 것만으로 정국이 이 앨범의 보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느껴질 정도다.

 

이런 행보를 모두 종합한 결과, 앨범이 가리키는 야망의 방향은 더없이 뚜렷하다. 이건 당신들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즐겨온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걸 보여 주겠다는 선언이다. 목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이상 '골든'으로 정국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취는 단순히 음악 차트 1위나 무슨 어워드 수상일 수가 없다. 정국은 이 앨범을 통해 팝 음악을 즐기는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젊은 팝 스타이자 섹스 심벌로서 자리 잡고자 한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출발 신호는 이미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전진뿐이다. 그가 몸담은 BTS가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정국의 도전은 K팝 성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에게 꽤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여러 면에서 주류 팝의 대안으로 환영받아온 K팝의 중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팝의 정수를 고스란히 계승하는 아이콘이 탄생한 셈이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처럼 정국은 거기에 호랑이 가죽까지 뒤집어쓰고 굴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기를 택했다.

 

그간 K팝은 교포로 접점을 만들었다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며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까지 배웠다. 다국적 멤버를 꾸렸다가 이제는 도전을 원하는 나라의 음악 그 자체가 되었다. 이건 지금까지 없었던 형태의 승부다. 낯선 언어와 퍼포먼스로 이방인 취급을 받던 음악 조류의 한가운데 한동안 공석으로 남아 있던 남성 솔로 팝 스타의 자리를 노리는 '젊은 피' 하나가 야심 차게 피어났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궁금할 따름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https://v.daum.net/v/20231113043217871

목록 스크랩 (10)
댓글 210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닥터웰메이드원X더쿠💙] 2025년 새해엔 좁쌀 부숴야지?🫠 좁쌀피지 순삭패치와 함께하는 새해 피부 다짐 이벤트! 113 00:06 6,261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18,12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4,591,72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8,203,031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6,720,302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61 21.08.23 5,734,824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8 20.09.29 4,712,97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65 20.05.17 5,297,52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89 20.04.30 5,740,62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0,566,919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97894 이슈 대통령 관저에 설치된 철조망 10 11:43 719
2597893 이슈 추미애: 경호처장이 몸싸움에서 밀릴 경우 공포탄 부족하면 실탄도 쏴라 지시함 33 11:42 848
2597892 유머 에이형 독감이 지금 엄청나게 유행중이니까 조심하구 5 11:41 1,016
2597891 이슈 아니 본질은 탄핵(+양곡법찬성) 시위인데 왜 그걸 차금법찬성시위 라고 생각하고 계속 말하는 건지 1도 이해안됨 21 11:38 869
2597890 이슈 의외로 영화 하얼빈에서 특수효과가 하나도 쓰이지 않은 씬들 14 11:38 1,263
2597889 이슈 나꼼수 김용민 "집회에 마이크 잡은 페미니스트들은 자제하기 바란다." 57 11:38 2,346
2597888 기사/뉴스 尹체포 시도에 코스피 올라...최상목의 선택은 4 11:37 376
2597887 이슈 지금 집회 현장에서 엄청 눈에 띄는 난방버스 48 11:36 3,021
2597886 유머 @ 샤넬 생리대말고 스포츠 생리대 쓰자 23 11:35 1,402
2597885 이슈 아 젠더리빌 다 터져서 왔다구요;; 22 11:35 1,692
2597884 유머 애기때도 뚠빵한 후이바오 🐼 9 11:34 1,189
2597883 기사/뉴스 [단독] 트럼프 출범 2주 앞으로…최상목, 6일 산업·외교수장과 머리 맞댄다 24 11:32 690
2597882 유머 후이야 뒤를 조심해 🐼👀 7 11:32 928
2597881 이슈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 의상의 비밀.jpg 17 11:30 1,885
2597880 이슈 8월에 "몰래 침투한 북한군이 공유 차랑을 이용해 도주하면 차량 위치를 추적할 수 있냐?"는 수방사의 공문을 받은 적 있다는 쏘카.jpg 41 11:28 2,326
2597879 이슈 39회 골든디스크 음원부문 본상 대상 수상자.jpg (공식) 7 11:28 1,532
2597878 이슈 보이넥스트도어 X BBNEXDO 팝업 ‘BBNEXDO in Town’ 오픈 1 11:27 309
2597877 기사/뉴스 '尹 영장' 마감 D-1…공수처장 '주말 출근' 내일 2차 시도 가능성 71 11:26 1,109
2597876 이슈 입소문타고 시청률10%로 넘은 임지연주연 옥씨부인전.jpg 12 11:25 1,793
2597875 유머 화룡점정 8 11:24 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