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한성현
가요를 논할 때 “팝 느낌이 난다”는 표현은 대개 칭찬으로 여겨진다. 익히 생각하는 가요의 '뽕끼'와 아이돌 음악의 맥시멀리즘적 요소를 격 낮은 것으로 생각하고 영미권 음악의 '깔끔함'을 숭상해야 할 존재로 여기는 식이다. 정국의 < Golden >은 이 편견을 부수고 고루한 담론에 새 물결을 일으킨다. 국경을 무너뜨리고 장르로 발돋움한 오늘날의 K팝 시장에서 '팝스타'가 얼마나 공허한 칭호인 지를 일깨워 주는 음반이다.
싱글 단위의 근시안적 평가라면 개성의 부재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앨범으로 넘어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D'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되는 그는 타이틀곡 'Standing next to you'에서는 마이클 잭슨을 닮은 위켄드로 분하고, 'Closer to you'에서는 저스틴 비버의 가면을 쓴다. 그렇다고 정국이 그들의 교집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라디오 차트 상위권을 갈무리하기 바쁜 구성은 주어를 지우고 공백으로 둔다. 알고리즘 기반 자동 생성 플레이리스트를 듣는 듯한 감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 Golden >은 계속해서 K팝에서 K를 떼려 하는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지향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디스코그래피에 로살리아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르세라핌, 핑크팬서리스의 캐릭터 취향까지 그대로 가져온 뉴진스의 고민 없는 직수입 관습이 더욱 심화 적용되고 있다. 작곡가의 스타일이나 참조 대상의 흔적이 지나치게 묻어나는 트랙의 행렬에서 가수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거슬림 없는 영어 가사 소화력 정도. 어쩌면 그의 경쟁상대는 동료 뮤지션이 아니라 근래 유행 중인 AI 음성 프로그램일 지도 모르겠다.
구태여 개인의 정체성 표현이나 철학 타령을 하지 않는 것만은 큰 장점이다. < Golden >은 철저하게 조직화되고 산업화된 공정 속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곡을 수급하는 초호화 A&R 시스템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에드 시런, 션 멘데스, DJ 스네이크 등 유명 작곡진에게서 공수한 '편안히 듣기 알맞은', '트렌디한', '짧은' 곡으로 꾸린 앨범은 지금의 K팝 음악에 대한 세계 각지 일반 대중의 시선을 생생하게 전시한다. 흥행하는 장르와 숏폼 형식 등 주요 상위 키워드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장바구니에 담는 무국적 음악의 표본이 필요하다면 이보다 더 좋은 예시는 없을 것이다.
K팝이라는 출신성분이 주는 혜택과 서구권 팝스타로의 신분 상승 욕망의 충돌 현장에는 굉음이 아닌 적막만이 감돈다. 늘 그랬듯 마치 채워야 하는 할당량이라도 있는 듯 쏟아내는 온갖 리믹스, 개업 행사처럼 진행하는 반값 할인은 경로 탐색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솔로 활동을 그저 차트 상위권 달성을 위한 미끼로만 보이게끔 한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음악으로 그 존재를 손수 격하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방탄소년단에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전략을 적용했다는 방시혁 의장의 최근 발언처럼 쿨한 인정일 수도 있겠다. 그저 많이 팔리는 것이 곧 좋은 것이 된 2020년대 황금만능주의 세상을 상징하는 음반이다.https://youtu.be/QU9c0053UAU?si=j0Llx9D5zxHqjSCL
https://youtu.be/uOFIcm-L0po?si=jAZxR9rXqdEcE3t4
-수록곡-
1. 3D (Feat. Jack Harlow)
2. Closer to you (Feat. Major Lazor)
3. Seven (Feat. Latto) (Explicit ver.) ✅
4. Standing next to you
5. Yes or no ✅
6. Please don't change (Feat. DJ Snake)
7. Hate you
8. Somebody
9. Too sad to dance
10. Shot glass of tears
11. Seven (Feat. Latto) (Clean ver.)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32204&bigcateidx=1&subcateidx=3&view_t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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