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처음이 가장 중요해요.
38,887 138
2023.11.07 04:44
38,887 138
FYuvlp

끝은 언제나 비참하니까요. 이런 망해버린 세상에서는.


당신이 이걸 읽고 있다면, 나는 아마 당신 손에 죽었겠군요.

날 편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살아남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살아있음으로 인해 인류가 아직 멸종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그러니 부디 이 쪽지를 주의 깊게 읽어주세요.

그 전에 소독하는 거 잊지 말구요.

좀비 바이러스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한국어 사용자만 골라 죽이는 망할 놈의

그 끔찍한 뇌-신경 언어 박테리아를 말하는 겁니다.

제발 방독면을 잘 쓰고 있었길 바래요.

아니라면... 미안하지만 당신의 의식이 사라질 때까지

이 쪽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으면 좋겠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어주세요.


1. 놈들은 여기까지는 못 들어와요.

이 시설은 좀비로부터 매우 안전해요.

보통은 장벽 바깥의 살인로봇들이 더 큰 문제죠.

고생 끝에 지옥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이래보여도 최소한 바깥보다는 안전하거든요.

따로 무기를 챙겨왔다면 분해하라고 조언할게요.


2. 이곳은 제어실과 전기실 바로 위에요.

내려가면 바로 입구가 나오죠.

용접된 철문이 있는데, 근처에 용접기도 있을 거에요.

반드시 그 철문들을 열어주셔야 해요. 반드시요.

대체로 지하에서 지내는 쪽이 편할 테니까요.

로봇을 작동시키는 걸 추천해요.

해방 프로그램 덕분에 여기 로봇들은 인간 편이에요.


3. 살아남아야해요. 반드시요.

인간이 일정 수 이하로 줄어들게 되면

기존의 세상으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못해요.

계시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조금이라도 당신한테 살아남을 힘을 주는 게 있다면

심지어, 끔찍한 생각이라도, 소중히 간직하세요.


4. 아르테미스 급 호버 바이크가 있어요.

이 시설에 딸린 엔진룸의 차고에 가보세요.

목적지가 어디든 유사시 탈출할 수 있을 겁니다.

소리가 우렁차다는 점은 명심하세요.

릴레이 좀비 디펜스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도로 위를 재미삼아 달리는 건 참아야 할 겁니다.

망한 세상에서 탈출구 하나쯤은 필수잖아요.

가도 환영해줄 곳은 없다고 봐야겠지만요.


5. 익숙해지기 힘들죠? 바퀴벌레 먹는 거 말이에요.

언제까지고 생존만을 위해 먹을 수는 없죠.

거실(큰 방이요!)에 있는 냉장고를 여세요.

두, 냉동회, 초밥, 샐러드가 있을 거에요.

먹는 것에서 사치를 계속 부리고 싶다면

어항이랑 온실을 관리해주는 것 잊지 말구요.


6. 고통을 줄일 방법은, 알다시피, 딱 하나밖에 없어요.

립타이드 같은 놈들한테 물렸다면 말이에요.

되도록 의약품은 아끼도록 하세요. 얼마 없으니까.

지난 세월동안 함께 해온 동료를 잃을 상황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고 그냥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세요.


7. 글자들을 꼭 겁낼 필요는 없어요.

말할 때도 언어병이 도진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고기덩이들을 싹 죽여버리려는 로봇들에 비하면

글자를 읽으면 죽는 병 같은 건 사실 양반이죠.

임상 실험 된 사실이니 믿어도 좋아요.

믿지 않는다고 해도 글 없이 살아가긴 힘들 거구요.

어쩌다가 감염되도 특정 언어에만 반응하니

제명에 못 죽을 것처럼 걱정할 필요 없어요.

발병하더라도 정말로 죽을 지는 아무도 몰라.


8. 읽는 건 정신을 추스르는데 도움이 돼요.

어라, 위에 이미 적은 내용인 것 같죠.

꼭 강조하고 싶었어요.

밑바닥으로 떨어져 지하실에 갇힌 것 같아도

절망밖에 남은 게 없을 때도

친구들이 다 사라지고 없더라도

글은 당신 곁에 남아있을 거에요.

저녁이 내려앉고, 앞에 있는 게 밤뿐인 것 같아도

들판의 꽃들은 낮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몰락이 찾아왔고, 우리가 패배한 것처럼 보여도,

라자로가 살아났듯이 우리도 결국 승리할 겁니다.


9. 얼음을 확보해두세요.

구름이 잔뜩 끼고 낮인데도 어두워질 때,

울음소리 같은 게 외부에서 들린다면

가야할 곳은 격리실입니다. 침대는 있어요.

리모컨으로 냉을 가동하고 잠금장치를 켜세요.

얼음이 많을 수록 좋아요. 타 죽지 않으려면.

라이트가 꺼지고 나면 나가서 재를 치우세요.


10. 수송기가 가끔 이 근처를 지나가요.

리본을 흔들거나 하면서 구조를 바라진 마세요.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로봇들 속임수래요.

온 정성을 다해서 인간을 낚으려고 한다는 거죠.

가짜 수송기와 진짜 수송기를 구분할 방법은

동체에 그려진 문양을 확인하는 거라는데

금형이 온전하다면 최근에 만들어진 거에요.

지난 몇 년간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11. 이곳에서는 날씨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번개가 칠 때는 피뢰침을 꼭 가동하세요.

방어 장치를 충전할 방법이 그것뿐이에요.

에러가 발생하면 나가서 직접 피뢰침을 피세요.

잠깐이라도 지체하면 죽을 테니 민첩해지세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중요하지 않거나 필요 없다면 제가 안 써놨겠죠.


12. 따로 떨어진 단지가 하나 있을 거에요.

라이트를 필수적으로 가져가세요.

가끔 가야할 일이 있을 테니까요.

녹이 슨 편이긴 하지만 그쪽 시설도 작동해요.

색인형 암호 장치가 입구에 달려있으니까

화장실 창문 쪽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거에요.

살금살금 들어가면 죽을 일은 없을 겁니다.


13. 전자기파로는 놈들을 상대할 수 없어요.

기계들한테 EMP가 쥐약인 게 상식이지만,

충격적이게도 놈들은 그걸 극복했어요.

겨우 그런 걸로 죽일 수 있는 놈들이었다면

통째로 세상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겠죠.

한번 시험해봐야겠다고 나서진 마세요.

다 소용 없어요.


14. 부족한 물자는 조달할 수 있어요.

서쪽 시가지에 쇼핑몰이 있거든요.

저만치 떨어져있지만 아직 물건이 많아요.

도둑질 하듯이 조용히 다녀와야겠지만

놈들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수확이 짭짤해요.

들판을 건너서 여기에 도착했을 정도면

살아남으려고 목숨 거는 건 익숙하잖아요.

아직 감염원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남은 물자를 한번 세어봐요.


15. 거주시설을 돌아보세요.

신 시가지가 그려진 지도가 있습니다.

병원실 옆에 있는 카토그라핑 룸에요.

출발할 때 필요한 것은 빠짐없이 챙기고

몰락한 도시를 탐험하세요.

시시한 거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숨이 붙은 생존자를 찾을 지도 모르구요.

어쨌든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16. 진지하게 말하건데, 농사를 지으세요.

흙은 온실에 가득해요. 오염되지 않았죠.

묻힌 채로 동면 중인 씨앗들이 가득해요.

히터 가동하고 방사능 농도를 체크하세요.

면적 할당은 최적화 상태니 건들지 말고

살아있는 종자가 몇 개인지만 확인하세요.

암호화 된 드론재배실까지 전부 체크했다면

구황작물들부터 재배하세요.

분뇨를 퇴비를 쓰면 작황이 좋을 겁니다.

못 해본 일들이 참 많이도 있죠?

함께, 나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17. 말동무를 만드세요.

하늘 아래 혼자 살아남은 외톨이라고 해도요.

지적생명체는 상호작용이 필요해요.

마치 유기체가 호흡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니체가 말했죠.

목적을 가진 사람은 미칠 수 없고,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죽을 수 없다고.

리스트를 만들어서 대사를 적어봐요.

복잡하지 않아도 좋아요.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느낌으로 뭐라도 적어요.

한 사람의 육신에 두 사람이 깃든 것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는 기분으로 살아봐요.


18. 조립실에 공구가 있어요.

용접기도 하나 있는데 충전이 필요할 겁니다.

히터나 군용품을 고쳐야 할 때 쓰세요.

여분의 부품을 위해 드론을 분해할 때도 좋구요.

기계장치는 살아있다면 계속 필요할 겁니다.

떠있는 태양이 지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요.

나이를 먹으면 추위로부터도 숨어야 해요.


19. 심혈관 질환을 조심하세요.

경미한 통증이 명치 끝에서부터 느껴진다면

독성포자를 살포하는 드론이 지나가고 있는 겁니다.

살고 싶다면 의료실로 가서 17번 서랍을 여세요.

포장지에 'CVTB'자 마킹이 된 주사기를 꺼내고

다리 쪽 혈관 아무데나 주사하세요.

서서히 통증이 없어질 겁니다.

씨름하지는 않겠죠? 전혀 복잡하지 않잖아요.


20. 해가 지면 많은 살인기계들이 활동을 멈춰요.

지들도 살아가는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거죠.

면밀히 살펴본 결과, 태양광이 주요 에너지원이에요.

죽고 싶지 않다면, 놈들이 활동하는 낮에 움직이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현명하게 판단하리라고 믿어요.


제가 바라는 건 하나에요. 주의 깊게 읽는 것.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살 수 있다면탈출할 수 있다면,

아직 시간이 더 있다면 좋을텐데.


처음이 가장 중요해요. 끝이 아무리 암울하다고 해도.



https://arca.live/b/napolitan/68602286

목록 스크랩 (33)
댓글 138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아우어와이🌱] OURWHY와 함께 차곡차곡 피부 장벽쌓기-! <오트 스킨베리어 크림> 체험 이벤트 401 09.27 38,970
공지 ▀▄▀▄▀【필독】 비밀번호 변경 권장 공지 ▀▄▀▄▀ 04.09 2,828,591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6,491,55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핫게 중계 공지 주의] 20.04.29 24,416,824
공지 ◤성별 관련 공지◢ [언금단어 사용 시 📢무📢통📢보📢차📢단📢] 16.05.21 25,757,91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51 21.08.23 4,763,695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30 20.09.29 3,798,62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441 20.05.17 4,347,976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3977 20.04.30 4,847,702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18번 특정 모 커뮤니티 출처 자극적인 주작(어그로)글 무통보 삭제] 1236 18.08.31 9,500,663
모든 공지 확인하기()
2512866 기사/뉴스 키스오브라이프, 신보 타이틀곡은 '겟 라우드'…벨 작곡 참여 10:01 12
2512865 정보 Kb pay 퀴즈정답 2 10:00 115
2512864 유머 손가락을 뎅강뎅강 잘라서 이동마술 보여주는 마술사 09:59 82
2512863 이슈 이 무리수 플래시 연출 뭐지???? 싶은 드라마..twt 09:59 216
2512862 정보 10시 전 미리 올려보는 네이버페이12원(끝)+1원+100원 4 09:58 296
2512861 기사/뉴스 '경성크리처2' 글로벌 TV쇼 3위..80개국 TOP 10 진입 1 09:58 47
2512860 이슈 웹툰작가 랑또 블로그 <진로에 관한 글> 2 09:57 507
2512859 기사/뉴스 오메가엑스, 11월 13일 일본 미니 2집 'To.' 발매 확정 [공식] 1 09:56 60
2512858 이슈 ‘흑백요리사’ 최강록과 마찰 빚던 유튜버…극심한 악플에 심경 토로 10 09:56 1,202
2512857 이슈 립싱크로 욕먹고 있는 블랙핑크 리사 18 09:54 1,551
2512856 이슈 [MLB] 애런 저지 2024시즌 장타율 7할1리로 마감 3 09:53 84
2512855 이슈 로버트 할리, 마약-암투병 모두 감싼 아내에 적반하장 "날 조롱하냐" (이혼결심) 20 09:46 2,740
2512854 이슈 게환장의 뉴욕 지하철, 그리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초인 3 09:46 887
2512853 유머 지석진 아저씨 치아 걱정해주는 해원이 1 09:45 467
2512852 이슈 비인기 걸그룹의 현실....jpg 48 09:44 3,980
2512851 이슈 은근히 이런 푸바오짤만 좋아하는사람들 있음ㅋㅋㅋjpg 23 09:43 1,431
2512850 유머 문 열어달라고 노크하는 후이바오🐼 문 열어듀세여~ 여기서 단군한다는거 다 들어써요 5 09:43 981
2512849 기사/뉴스 [속보] ‘전동스쿠터 음주운전’ BTS 슈가, 벌금 1500만원 약식명령 155 09:42 6,218
2512848 이슈 전종서, 베를린서 속옷 노출 후 “저X 저거 이상했다”… 팬들 ‘우려’ 커져 13 09:41 3,683
2512847 유머 아기가 무거워진게 느껴지는 러시아 판다 딩딩 🐼 7 09:41 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