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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필사하기 좋은 구절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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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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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Zka



 색약인 너는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

 

 만약 불타는 숲 앞이었다면 여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겠지


 소년은 투구를 안고 있었고 그건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하고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이다


-조연호, 배교





여름을 그리려면 종이가 필요해 


종이는 물에 녹지 않아야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크거나 

훨씬 작을 수도 있다 


너무 큰 해변은 완성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은 

액자에 걸면 가져가버린다 


당신이 조금 느리고

천천히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남은 검은색 파스텔로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다를 그리자


당신의 여름이 기분이거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여행자라면 

시원한 문장을 골라서 글로 쓸 수 있는데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뒤에

당신이 나를 기다린다면 좋겠다 


파도가 치고 있다 

누군가는 고래를 보았다며 사진을 찍거나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겠지만 


고래는 너무 커서 밑그림을 그릴 수 없고 

모래는 너무 작아서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두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이 오면 여름은 지나가고 

방문을 열면 해변이 사라져서 

나는 아무것도 못 그리겠지 


그래도 당신과 

오리발을 신고 있겠지 


민구, 여름





 나는 별수없이 또 사랑이란 소리를 강조하면서 그와 나 사이엔 암만해도 딴 낱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무도 안 써본 슬프고 진한 어휘가.

 

-박완서, 나목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기 위해

 물을 더 채우고 입술을 모아 바람을 넣는다


 이제 겨우 절반을 돌았는데


 우리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

 세상을 한눈에 보는 연습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나는 아무거나 붙잡고 몸을 둥글게 만다

 천장에 매달리는 물방울처럼

 꼭 터질 것처럼


 이 한 바퀴를 무사히 다 돌면

 우리가 각자 보았던 미래가 많이 닮아있을까


-이기리, 저녁의 대관람차





 집으로 돌아가는 꿈에서 깨어버리면 이곳은 어떤 집이 되고 빈 방이 빈 방 속에서 부풀어오르면 숨어들듯 산책길로 나서지 어둠이 빠져나간 어둠 속으로 걷고 멈추고 걷다가 이곳은 작년 여름 지렁이들이 내장처럼 쏟아져 나왔던, 물총새가 죽어 누워 있던 곳 문득

 

 찾아오는 생각들을 지우며 함께 졸았어요. 큰 불행과 작은 불행을 구분할 수 없게 된지 아주 오래되었어요. 작은 다행과 큰 다행을 구분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요. 이 종이 위에 참 많은 말들이 적혔다 지워졌어요. 당신에게도 적은 말보다 지운 말들이 더 많아 다행이겠지요, 큰 불행이거나. 산책의 반환점에선 몇 걸음 더를 상상하게 해요.


-육호수, 소년 금지 영원 금지 천사 금지





 여름이라고. 청사과가 무르익어간다고. 혀를 깨문 청사과. 한알의 죽음. 한입의 무너짐. 이토록 시원하고 상쾌하여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속에서 과즙을 터뜨리며.


 망하기. 망하는 편으로 가보기.


 -여세실, 꿈에 그리던





 체리를 씹자 과육이 쏟아져 나온다 먹어 본 적 있는 맛이다 이걸 빛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그건 먹어 본 적 없는 맛이다


 -황인찬, X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천선란, 천 개의 파랑





 미끄럼틀을 거꾸로 오른다 

 내려오던 아이가 잡아준다고 손을 내밀었다 

 손과 발에 힘을 더 주어 내민 손까지 올라갔다


 단단한 껍질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출렁여도 단단한 사람이 된다


-안미옥, 선량





 가끔은 좋아하는 것을 멀리 던진다 

 던져서 떨어지면 망가지는 것을 알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곳까지 던져보려고


 어둠을 접어서 옆에 두면 잠이 잘 온다 

 나는 작게 더 작게 접는다 

 접을 수 없을 때까지 접는다


-안미옥, 공의 산책





 에라.

 그는 어째서 그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을까. 나이를 먹어 죽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사라지는 걸까. 에라, 하고. 어쩌면 그것은 개인적인 경우일 뿐이고, 다른 노인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어쩌면 그는 에라, 가 아니고 애라, 라고 했을지도 몰랐다. 애라, 하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 것일지도 몰랐다.


-황정은, 대니 드비토





 아버지는 자기를 화장하고 나면 남은 유골을 화분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평소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워낙 자주 하는 사람이었어서 나는 무심코 그럴게요 하고 대답했었고 잠깐 이거 이상해,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의 유골함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이유리, 빨간 열매





채식주의자처럼

맨발일 때가 좋지


광화문에서 내렸고

서대문까지 걸었다

이렇게 문들 사이로 걸어도

성의 윤곽은 알 수 없는 일

한 언어를 터득하기 위해

사람들이 살다가 죽을까


당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목구멍에 침묵을 걸었는데

그런 건 위로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김이강, 서울, 또는 잠시





 무언가로 물든다는 것은 무거워진다는 뜻일까. 유리컵에 담긴 저녁 해가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면 방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볼 한 쪽에 사탕을 문 채 바깥을 보는 것이 취미였다. 창밖을 바라보면 건너편에 검정색이거나 붉은색이거나 얼룩덜룩한 지붕이 있었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도무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해주, 미미





 2008년에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 군부를 휩쓸어 13만명이 넘는 인명 피해를 냈을 때 미얀마 군부는 국제기구의 구호 활동을 방해하고 원조를 거부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 내가 읽은 『재난 불편등』에서 저자인 존 머터는 군부가 무능력함을 숨기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이유로 대규모 재난에 자국민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미얀마 군부는 2021년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거리에서 총을 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무섭지도 않은가? 사람들은 기억한다.

 사람들은 온갖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기억은 망각과 연결되어 있지만 누군가가 잊은 기억은 치마 그것을 잊지 못한 누군가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잠재적 화석이다. 뼈들은 역사라는 지층에 사로잡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퇴적되는 것들의 무게에 눌려 삭아 버릴 테지만 기억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황정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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