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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나 죽으면 얜 어떡해"…86세 할아버지가 '진돗개'를 데려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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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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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유리문을 열었다. 무더운 8월 한여름이었다. 들어선 곳은 동물책방이자 카페 '정글핌피'. 버려진 동물들을 위해 '임시보호자'를 연결해 주는 곳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곁엔 의젓한 진돗개가 있었다. 

"내가 혹시나 죽고 나면 야 혼자 남겨지면 어떡해. 그러기 전에 가족 찾아줬으면 해서 왔어요."

나이는 7살, 이름은 행운이. 행복하게 잘 살라고 지어준 단순하고 뜻깊은 이름. "행운아, 행운아"하며 단둘이 지냈을 일곱 해의 시간. 그러니 몇십 번을 고민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또 주저했을 말. 그런 게 노인의 표정에 다 있었다. 그러나 결심한 듯 말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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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행운이는 어디 아픈 데도 없이 건강해요. 병원도 한 번도 안 갔고요. 내가 혹시 좀 이상한 소리하면요. 벌떡 일어나서 와 가지고 이렇게 보고 또 핥고 그래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가, 좋아하기에 걱정돼 좋은 곳에 보내려 어필하던 말. 그게 무슨 말인지 아마 잘 몰랐을 행운이는 해맑게 내어준 간식을 냠냠 먹고 있었다. 이따금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올해 86세. 나이가 무색하게 할아버지는 무척 건강했었다. 약 하나 먹는 게 없었다. 술과 담배도 평생 안 했다.

그러나 속절없는 세월의 섭리는 정정한 노인도 무너지게 했다. 꽃이 만개하고 따스한 5월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때 일을 회상했다.

"갑자기 어지럽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그러더라고요. 금방 쓰러질 것 같아서 119 불러서 병원에 갔지요."

큰일날 뻔했다. 의사는 할아버지 심장이 약하다고 했다. 박동기를 심장에 다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사흘을 입원했다. 할아버지가 행운이와 떨어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친한 이웃집 할머니에게 행운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잘 마치고 돌아왔다. 행운이는 오랜만에 본 할아버지를 보며 좋다고 겅중겅중 뛰었다.

2016년 12월 29일. 아내도, 자식도 없이 홀로 사는 외로움에 성남 모란시장에 갔던 날. 그날 처음 만난 하얀 꼬물이. 박스에 있던 5마리 중,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 맘이 갔던 강아지. 추울까 싶어 잠바 속에 따스히 품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가족이 됐던 개. 행운이.

매년 생일이면 닭까지 삶아주며 애지중지 키우던 행운이. 그와 헤어질 생각을 처음으로 하는 거였다.

"갑자기 몸이 이상해지니 쓰러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이놈이 걱정이 되더라고요. 꼭 자식 같아가지고. 가만히 생각하니 안 되겠더라고요."

 

 

장신재 정글핌피 대표는 할아버지가 돌아간 뒤 홀로 눈물을 쏟아내었다. SNS에 할아버지 사연과 함께 입양 공고를 올렸다. 다들 많이 애달파하고 울었으나 입양 문의는 한 건도 없었다. 장 대표는 TV동물농장 팀에 제보했다. 다행히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는 작가와 인터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에게 문자가 왔다. 주름진 손으로 한 자 한 자 적었을, 길고도 긴 문자였다.

"영리한 행운이가 눈치를 챘는지 평소보다 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갈등으로 밤새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행운이가 없으면 마음의 병까지 생길 것 같습니다. 남은 인생 동안 같이 해야겠단 생각입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행운이 앞날을 생각하며 잠시나마 보내려 했던 걸 자책한다고. 할아버지는 건강을 더 잘 챙기겠다 결심하며, 행운이와 동고동락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 입양은 없던 일이 되었으나 염려가 남아 있긴 했다. 혹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행운이는 어떡할지. 다른 사람에겐 마음을 안 여는 개라 더 걱정이었다.

 

이 모든 사연을 알게 된 날, 설채현 수의사께 연락했다. 평소 동물권에 진심인 터라 그라면 도와줄 거라 믿으며. 설 수의사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도와줄 이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규상 트레이너를 소개해주었다.

계획은 이랬다. 할아버지와 행운이는 함께 잘 지낸다. 다만 할아버지 건강이 나빠질 것에 대비해, 행운이를 훈련하자는 것. 할아버지만 따르고 다른 이를 경계하는 터라, 이를 낮추고 다른 이와도 두루 잘 지내게 하는 것. 그럼 나중에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떠나셨을 때 입양 가기도 쉬울 것이므로. 훈련이 잘되면, 장 대표와 다른 이들이 틈틈이 산책을 하며 행운이의 사회성을 키워주기로 했다.

 

"저희가 목표로 해야하는 건 뭘까요?"(이규상 트레이너)

 

"행운이가 혼자 남았을 때 입양갈 기회를 늘리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성격이 무던해야지 임보든, 입양이든 잘 가잖아요. 행운이가 다른 사람 손을 전혀 안 타면, 보호소로 갈 수 있단 생각을 했어요."(장신재 대표)

관건은 이런 거였다. 예컨대 개들에게 두 가지 가치가 있다면, 더 높은 가치를 선택한다. 지금의 행운이에겐 절대적으로 할아버지다. 이 트레이너는 "할아버지와 떨어졌을 때도 나한테 좋은 일이 생긴단 걸 알아야 해요. 트레이닝으로 이걸 끌어올려서, 행운이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중략 : 훈련 과정)

 

이 트레이너는 할아버지를 위해 여러 가지를 더 일러주었다. 예를 들면, 감주(식혜)와 아이스 커피가 담긴 통을 들고 해맑게 웃더니 할아버지가 이리 말했다.

"내가 감주를 잘해 먹거든요. 식혜. 주면 기가 차게 먹어요. 나 먹을 때마다 행운이 한 모금씩 얻어먹고."(할아버지)
"주면 좋아하는데 몸에 안 좋아요. 그래서 살쪘구나."(이 트레이너)
"안 좋아요? 안 좋은 것만 시키는구만 내가, 하하. 커피도 얼마나 잘 먹는지 몰라."(할아버지)
"안 돼요, 심장 콩닥콩닥 뛰어요."(이 트레이너)
"너 커피 먹으면 안 된대. 오늘부터 이제 안 준다."(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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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를 아끼는 게 틈틈이 얼마나 많이 보이던지. "복지관에 가서도 점심 먹고 오는데, 고기 같은 거 나오면 내가 다 안 먹고 이놈 싸다 준다고"라며 헤헤 웃던 그에게서. 주면 좋아할, 자식 같은 개를 생각하며, 남몰래 챙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울컥했다.

"그냥 나하고 이렇게 살면 돼. 내가 건강할 때까지. 그 뒤로는…모르지 나도."

훈련이 끝나갈 무렵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런 뒤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게 실은, 본심이었다.

"나이 먹어가지고 남한테 가면 이제 좀 어렵잖아요. 그러니까아, 여느 사람이 이렇게 귀여워하면 가만히 있어야지. 근데 이놈은 가만히 안 있거든. 도망가든지 뿌리치든지. 그게 걱정이지 딴 건 없어요."

 

 

에필로그(epilogue).

그리고 들었던 할아버지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

사업하다가 부도가 났단다. 그의 나이 60세가 넘었을 때라 다시 서기가 어려웠다. 자식은 늦게 낳았기에 아직 어렸다. 가족들에게 피해줄까 싶어 떨어져 살았단다.

할아버지는 능력 없어 잘 못 키워준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잘못했지. 나도 할 말이 없어. 부모 노릇 못했으니 안 찾는 거겠지. 그래도요.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면…참 뿌듯할텐데."

죽을 때 어떻게 처리해달란 유서까지 품고 산다던 할아버지였건만, 자식 얘길 할 때만큼은 온갖 서운함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때 행운이가 곁에 다가와 할아버지 곁에 가만히 기대었다. 따뜻했으리라. 그러자 다시 행운이 자랑이 시작됐다.

"자식보다 낫지요. 행운이가. 어느 날엔가 자다가 신음하고 그랬었어. 그러니까 벌떡 일어나서 와서 핥고 그러는 거야. 그런다고요. 그런 놈을 누구를 주겠어요."

 

할아버지와 행운이의 배웅을 받으며 집 바깥에 나왔을 땐 짧아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림자처럼 새까매진, 나란히 선 둘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가 혹여나 떠날, 그 만약을 대비하여 하는 이 훈련이, 실은 앞으로 전혀 쓸모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어느 전래동화의 뻔한 결말처럼.

 

※ 행운이는 매주 이규상 트레이너님과 함께 훈련하기로 했습니다. 사정이 어려운 할아버지를 위해, 또 둘의 행복을 위해, 이 모든 걸 무상으로 진행해주시는 그에게 진정 감사를 전합니다. 장신재 정글핌피 대표와 저도, 행운이가 다른 이에게도 맘을 잘 열 때까지 함께할게요.

 

 https://naver.me/50eoTXz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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