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만 놀러갔다 올게."
전남 진도에 살던 A씨(24·여)는 지난 6월12일, 경남 창원으로 놀러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A씨는 6개월 후 전북 전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A씨의 삐쩍 마른 몸 곳곳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오랫동안 심하게 맞은 흔적이었다.
경찰은 A씨와 함께 살았던 B씨(28)를 살해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에는 B씨가 쓰러져 있는 A씨를 방치한 채 자리를 뜨는 장면이 포착됐다. 또 A씨를 폭행하는 장면들도 담겨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드러난 B씨의 악행은 끔찍했다.
A씨와 B씨의 첫 만남은 지난해 5월이었다. 두 사람은 라이브 방송 앱을 통해 알게 됐다. 둘은 매일 같이 채팅을 하면서 친해졌다. 이후 한 달 뒤 직접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B씨는 실제 만난 A씨가 일반인에 비해 지적 수준이 낮고 말하는 것이 다소 어눌하다는 것을 느꼈다. B씨는 A씨의 이런 점을 이용해 범행을 계획했다. 그는 우선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며 함께 살 것을 제안했다. 이른바 가스라이팅(심리적으로 지배·조종하는 행위)을 하며 A씨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기로 한 것이다.
시작은 거짓말이었다. B씨는 A씨에게 자신으로부터 돈을 빌린 '채무자'라고 세뇌시켰다. 그는 A씨에게 대출을 받게 하고, 차용증도 쓰게 했다. 차용증에는 △차용 금액 3400만원 △이자 연 15% 매월 15일에 지급 △변제기한 2027년 7월 등의 내용이 담겼다.
B씨는 A씨에게 "저번에 은행가서 돈 빌려준 거 빨리 갚아라"라고 독촉했다. 있지도 않은 빚이 있다고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결국 A씨는 여러 경로를 통해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B씨의 악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A씨에게 성매매를 하라고 강요했다. 그는 성매매 대금을 받으면 곧바로 자신에게 가져오도록 했다.
B씨는 성매매를 하러 간 A씨에게 "시간 버리면 또 패러간다", "20분 단위로 (문자) 안 보내면 죽는다", "거짓말해도 죽는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수시로 보내며 협박했다. 일거수일투족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했다.
폭행도 일삼았다. B씨는 A씨가 자신이 정한 성매매 횟수를 채우지 못하면 심하게 때렸다. 인터넷에서 57㎝ 길이의 금속 재질로 된 삼단봉까지 구입해 A씨를 모텔에서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B씨의 심한 폭행에 A씨의 건강은 날로 악화했다. A씨는 B씨에게 "춥고 어지럽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B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A씨에게 여느 때와 같이 성매매하러 갈 것을 요구했다.
그러던 지난해 12월4일 오후 1시28분, B씨 계속된 폭행에 못 이긴 A씨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B씨는 A씨를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양팔을 잡고 질질 끌고 나가 건물 밖 담벼락 앞에 내버렸다. B씨는 40분이 흘러서야 119에 신고했다. 그러나 B씨는 "사람이 쓰러져 있다"며 단순 목격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뒤늦게 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외상성 뇌출혈과 전신의 근육 간 출혈에 따른 다발성 손상으로 결국 숨을 거뒀다.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B씨는 법정에서 내내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 5월23일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김도형)는 1심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피해자를 성적, 경제적 착취 및 물리적 폭력 대상으로 삼았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형이 너무 낮다"고 항소했다. B씨는 사실오인과 법리오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장을 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1심보다 감형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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