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인터넷 공간에서 해외 여론조작 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 1일 열린 한국과 중국의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 당시 포털사이트 '다음' 응원 페이지에서 중국 응원 클릭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상 현상이 나타나 논란이 일었는데, 카카오의 자체 조사결과 해외 특정 IP를 중심으로 매크로(자동입력반복)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여론조작 시도가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일이다.
8강전 당시 클릭 응원 건수 약 3천130만건 중 중국 클릭 응원은 93.2%(2천919만 건)로 한국 클릭 응원(6.8%.211만 건)을 압도했다. 카카오는 경기 당시 다음 스포츠 '클릭 응원'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 해외 IP 2개가 전체 해외 IP 클릭(1천993만 건)의 99.8%인 1천989만 건을 차지했다고 4일 밝혔다. 2개 IP의 클릭 비중은 네덜란드 79.4%(1천539만 건), 일본 20.6%(449만 건)이었다. 이용자가 적은 심야 시간대 이들 2개 IP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어낸 이상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의혹과 관련해 카카오는 경찰에 수사의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중 남자축구 외에 여자축구에서 한국이 5-0으로 대승한 홍콩전에서 홍콩을 응원하는 비율이 91%에 달한 점, 남북대결에서 북한 응원 비율이 75%에 달한 점도 외부 세력의 개입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번 의혹과 관련, 방송통신위원회는 "해외 세력이 가상사설망(VPN)을 악용해 우회 접속하거나 매크로 조작으로 중국 응원 댓글을 대량 생성하는 수법이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철저히 실체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번 의혹을 '응원 클릭' 조작 문제로 단순히 넘길 일은 아니다. 국내 여론 형성 과정에 불순한 의도를 가진 해외 세력의 개입 여지가 있고 이를 방치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가 이번 의혹을 '건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공론장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정부는 방통위 긴급 조사 직후 유관부처와 함께 '여론 왜곡조작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정확한 조사를 바탕으로 이번과 같은 일들이 재발할 여지를 차단하는 일이 시급하다.
정부가 과거 '드루킹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여론 왜곡과 조작 실태를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결국 입법 사항인 만큼 여야 합의, 특히 원내 과반인 민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현재 소관 국회 상임위인 과방위에는 주요 웹사이트에 댓글을 단 곳의 국적과 VPN 우회 접속 여부를 표시토록 하는 법안이 10개월째 계류돼 있다. 이와 같은 인터넷 실명제 강화 대책이 국민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 침해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논의조차 막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부작용이나 우려를 줄이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총선이 반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책임감을 갖고 인터넷 여론조작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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