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 동해안로의 한 카페. 두 덩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비틀어 쌓은 외관이 거의 비슷하다. 사진 이뎀건축사사무소
법원이 국내 건축계 표절 논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렸다. 4년 가까이 이어진 ‘부산 웨이브온 표절 공방’에서 “울산 A카페가 부산 웨이브온의 건축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원고 측인 곽희수 건축가의 손을 들어줬다. 피고에게는 “건물을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국내 건축 저작권 관련 소송에서 ‘건축물 철거 명령’이 내려진 것은 처음이다.
◆무엇이 문제였나=‘부산 웨이브온 표절 논란’은 지난 2019년 7월 시작됐다. 2016년 12월 부산 기장군 바닷가에 세워진 카페 웨이브온과 똑 닮은 카페가 울산 북구 동해안로에 지어지면서다. 소셜미디어에서 “짝퉁 웨이브온”으로 불릴 정도다.
두 건물은 바닷가에 접한 입지는 물론 외관도 닮은꼴이다. 두 덩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비틀어 쌓은 형태를 갖췄고 연면적(약 490㎡)과 높이(11~12m), 규모(지상 3층)가 모두 비슷하다.
내부 인테리어도 판박이다. 1~3층엔 가운데가 뻥 뚫린 ‘오픈 스페이스’ 형태의 중앙 계단이 배치됐다. 게다가 웨이브온은 ‘서울 고소영 빌딩’(테티스), ‘강원도 정선 원빈 집’(42nd 루트하우스)을 설계한 곽희수 건축가(이뎀건축사사무소 소장)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17년 세계건축상(WA),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 작품이다.
곽 소장은 2019년 12월 울산 A카페의 건축사사무소와 건축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웨이브온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동시에 건축물 철거를 요구했다.
부산 기장군 ‘웨이브온’(왼쪽)과 울산 북구 한 카페의 내부 공간. 사진 이뎀건축사사무소
◆표절 판단의 근거는=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재판장 박태일)는 18일 “피고인 A카페의 건축사사무소가 원고인 이뎀건축사사무소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고, 건물을 철거하라”고 판결했다. 원고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리우의 정경석 변호사는 “건물은 서적·음반과 달라 폐기가 쉽지 않은데, 철거 청구까지 인용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웨이브온은 어느 방향으로도 바다가 보일 수 있도록 설계된 건물로, 내·외부의 조형에서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두 건물이 ①내부 계단을 따라 형성된 콘크리트 경사벽 ②경사벽 및 돌출 공간을 떠받치는 형태의 유리 벽 ③기울어진 ‘ㄷ자’형 발코니 벽 ④상부 건물 전면 중앙통창 등이 유사하다고 봤다.
건물 철거에 대해선 “웨이브온을 무단으로 복제한 건물이 이뎀건축사의 전시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이유를 들었다. 창작성에 기여하는 내·외부의 세부 조형까지 유사해, A카페에서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 부분만 따로 떼어 폐기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곽 소장은 “건축물이 저작권법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를 다룬 첫 주요 판례”라며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 건물이라 해도 ‘표절했다간 철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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